이어지는 주총 '표대결'... 캐스팅보트 역할 커지는 국민연금

머니투데이 김은령 기자 2024.03.2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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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주총 '표대결'... 캐스팅보트 역할 커지는 국민연금


정기 주주총회 시즌 경영권 분쟁이나 주주 행동으로 표 대결이 늘면서 국민연금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국내 주식투자 규모가 148조원에 달하는 '큰 손'으로 국민연금의 결정에 주총 결과가 영향을 받는 사례가 많아서다. 기업 밸류업이 활성화되면 국민연금의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27일 국민연금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한 84개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고 내역을 공지했다. 국민연금은 기금의 보유 지분율과 보유 비중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데 기금운용본부 내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판단될 경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거쳐 의결권 행사방향을 결정한다. 주총 개최 이후 14일 이내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시하지만 보유 지분율이 높거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주요한 안건의 경우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 공개한다.



올해는 한미사이언스, 고려아연 등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는 기업들과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연대가 주주제안을 내 놓은 삼성물산, DB하이텍, 그리고 주인 없는 기업으로 불리는 소유 분산기업 가운데 대표이사가 바뀌는 KT&G, 포스코홀딩스 등의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관심의 초점이 됐다.

오는 28일 주총을 개최하는 한미사이언스의 경우 창업주인 고 임성기 회장의 아내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을 상대로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사장이 OCI그룹 통합을 두고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양측의 지분율이 21.86%와 20.47%로 팽팽한 가운데 7.6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송 회장과 임 실장 즉, 모녀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승리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19일 열린 고려아연 주총에서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형진 영풍 고문 측의 표대결에서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측의 안건에 '찬성'을 하며 고려아연이 판정승을 거두는 모양새가 됐다.

15일 열린 삼성물산 주총과 22일 금호석유화학 주총에서는 행동주의 펀드 측의 주주제안에 반대표를 던지면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했고 28일 열릴 DB하이텍 주총 안건 가운데 주주제안 안건에도 모두 반대 표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물론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기업들의 주총 결과에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인 이사회가 올린 안건에 대한 반대 결정을 하며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지난 2020년 15.8%에 불과했던 반대 결정 비중은 2022년 23.4%까지 높아졌다.


올해도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건에 대해 '주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의무가 소홀하다'며 반대했다. 또 효성 조현준 회장, 조현상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도 기업가치 훼손 등의 이력을 문제삼아 반대했다. 오는 28일 열리는 LS, 삼양식품 주총에서도 구자은 회장, 김정수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건에 반대할 예정이다. 이들 기업의 경우 국민연금의 반대표가 주총 결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낮지만 감시자 역할로 의미가 없진 않다.

국민연금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주주행동주의가 부각되면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경우가 늘었고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으로 국민연금이 기업 가치 제고 노력을 점검하고 투자 결정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국민연금 등 연기금, 기관투자자 등에게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에 발맞춰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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