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세시간 반 버스타고 왔어요"…황사도 꺾지 못한 중국 교민 투표의지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4.03.2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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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 교민 단체 원정투표로 '소중한 한 표' 행사..
전체 투표율은 매년 낮아지는 추세

재외국민 투표가 시작된 27일 오전 톈진을 출발해 세 시간 반 만에 베이징 소재 대사관 투표소에 도착한 톈진 교민들이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우경희 기자 재외국민 투표가 시작된 27일 오전 톈진을 출발해 세 시간 반 만에 베이징 소재 대사관 투표소에 도착한 톈진 교민들이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우경희 기자


22대 총선 재외국민 투표가 시작된 27일 베이징 하늘은 미세먼지와 황사로 뿌옇게 뒤덮였다. 재외선거관리위원회에서 대절한 버스가 베이징 시내 교민 밀집지역인 왕징을 순회해 투표에 참여하는 교민들을 싣고 투표소가 차려진 베이징 주중한국대사관으로 향했다.

버스에 동승한 한 선거관리위원은 "선관위 차원에서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여건은 매 선거마다 나빠지고 있다"며 "전체적인 교민 숫자가 줄어드는게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교민들의 투표 참여 의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체감이 된다"고 말했다.



대사관 초입에서는 교민들에 대한 간단한 신분확인 절차가 진행됐다. 버스를 이용한 교민들 외에도 몇몇 교민들이 투표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6일 간 투표가 진행되는 만큼 유권자들이 분산돼 투표소가 북새통을 이루진 않았다. 그럼에도 현장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한 교민들이 시나브로 찾아왔다. 유권자들을 취재하기 위해 몰린 취재진도 적잖았다.

정재호 주중국한국대사 내외와 김병권 총영사 등을 필두로 투표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정오가 넘어서며 다소 한산해졌던 투표소 현장은 교민 밀집지역인 톈진(天津)에서 선관위 대절 버스를 타고 수십명의 교민들이 도착하면서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베이징으로 진입하는 검문소에서 신분확인 등의 절차에 한 시간 이상 시간이 걸리는 등 말 그대로 투표를 위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왔다.
[베이징(중국)=뉴시스] 박정규 특파원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재외국민 투표 첫날인 27일 유권자들이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주중한국대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로 들어서고 있다. 2024.03.27. pjk76@newsis.com /사진=류현주[베이징(중국)=뉴시스] 박정규 특파원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재외국민 투표 첫날인 27일 유권자들이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주중한국대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로 들어서고 있다. 2024.03.27. [email protected] /사진=류현주
톈진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자영업자 박인헌 씨는 "중국에 30년 간 살았는데 재외국민 선거가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데 3시간은 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오늘 오신 분들보다 더 많은 분들이 주말을 이용해 투표소를 찾으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투표소 내 풍경은 국내 부재자투표 현장과 흡사했다. 유권자명부를 확인한 후 각자 지역구 상황이 인쇄된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고 등기용 봉투에 담아 투표함에 넣으면 끝이다. 본선거에서 투표인원과 투표용지 매수를 확인하기 위해 장치한 '번호지'는 재외국민 선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재외국민 투표는 당일 투표가 오후 5시(현지시간) 마감되면 곧바로 당일 투표함을 개표한다. 선거관리위원장과 위원들이 동석한 가운데 투표함을 열어 전체 투표인원과 봉투 숫자를 확인한다. 이후 당일 날짜가 명시된 파우치에 넣어 밀봉한다. 6일 간 같은 절차가 진행된다.

투표가 모두 끝나면 전체 투표용지 봉투는 별도로 마련된 행낭에 담겨 외교부 루트를 따라 국내로 운송된다. 역시 선관위원들이 배석한 가운데 항공편에 실려 한국으로 향하는데 한국에서 다시 선관위원들이 인도받는다. 도착한 봉투들은 즉각 등기우편으로 각 선거인들의 지역구로 배송된다.
[베이징(중국)=뉴시스] 박정규 특파원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재외국민 투표 첫날인 27일 정재호 주중국한국대사가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주중한국대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 들어서고 있다. 재외국민 투표는 오는 4월 1일까지 해외 115개국 220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재외 유권자는 14만7000여 명이다. 2024.03.27. pjk76@newsis.com /사진=류현주[베이징(중국)=뉴시스] 박정규 특파원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재외국민 투표 첫날인 27일 정재호 주중국한국대사가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주중한국대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 들어서고 있다. 재외국민 투표는 오는 4월 1일까지 해외 115개국 220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재외 유권자는 14만7000여 명이다. 2024.03.27. [email protected] /사진=류현주
안정수 재중한국대사관 재외선거관리위원장은 "재외국민 선거가 시작된 이후 16여년 간 중국 선거를 관리감독 해 왔지만 올해 선거는 투표참여율 면에서 가장 여건이 어려운 선거인듯 하다"고 말했다. 한때 중국 전역에 100만명, 베이징에만 18만여명의 교민이 산다고 했다. 올해 베이징에서 부재자 투표를 한 교민 숫자는 2583명. 이 중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 비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적은 투표인원은 결국 냉각된 양국 관계를 의미한다. 양국 교류 자체가 축소되면서 중국에 머무는 교민의 절대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 달라지는 교민 구성비율도 투표율에 영향을 준다. 경제활동에 적극적이던 기업 주재원들은 귀국 시점이 예정돼 있는 만큼 지역구 문제에 민감한 경우가 많다. 이들의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전체 투표율을 끌어내리는 효과로 작용했다.

안 위원장은 "근본적으로 교민 수가 늘어야 투표독려 활동도 의미가 있다"며 "재외국민 투표에 참여하는 국민 숫자가 곧 양국 관계의 현주소를 증명하는 기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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