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형위원회 제130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양형위는 이날 △스토킹 △지식재산·기술침해 △마약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최종 의결했다. /사진=뉴스1
26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양형위)에 따르면 앞으로 반도체·자동차·무선통신 등 '국가 핵심 기술'을 국외로 유출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최대 징역 18년까지 처벌된다. 핵심 기술 유출 사범에 대한 형량 범위와 양형인자는 이번에 새롭게 설정됐다.
기술 유출 피해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한 전체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 사건은 최근 5년(2019년~2023년)간 96건으로 집계됐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반도체가 38건으로 가장 많고 △디스플레이 16건 △전기전자 9건 △자동차 9건 등이다. 이 기간 피해 규모만 약 26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적발 건수는 2019년 14건에서 지난해 2023년 23건으로 해마다 증가세다.
하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8년~2022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은 총 155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9명은 무죄, 36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실형을 받은 이는 단 9명으로 5.8%에 불과했다. 2018년부터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을 중국 반도체 경쟁업체로 유출한 혐의를 받는 SK하이닉스 협력 업체 부사장은 지난해 9월 1심에서 고작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진원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양형기준은 말 그대로 판결 선고시 형량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양형기준이 강화된 것은 법정형을 높게 만드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의미가 클 수 있다"며 "양형 기준이 최대 징역 18년이면 징역형으로는 거의 최고형이 선고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기술유출을 그만큼 중한 범죄로 본 걸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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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양형 기준에서는 폭증한 마약 범죄에 걸맞게 마약범죄에 대한 권고형량이 상향됐다. 양형위는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팔거나 가액 10억 원 이상의 마약을 유통한 사범에 대해서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권고했다. 또 비교적 약한 약물로 분류되는 대마를 단순 소지하거나 투약하는 범행도 더 무겁게 처벌할 것을 권고하기로 했다.
마약 범죄를 엄단하는 게 절실하다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마약 사범은 2만7611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도 1만8395명에서 50%가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마약사범은 1999년 처음으로 연간 1만명을 돌파한 뒤 크게 늘지 않았다가 2015년에 다시 1만명을 넘어선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젊은 마약사범이 대폭 증가했다. 19세 이하 미성년자 사범의 숫자는 1477명으로 전년도 481명이 비해 3배 넘게 늘어 처음으로 1000명대를 기록했다. 이들 중 92명은 15세 미만이었다. 20대 사범도 5804명에서 8368명으로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스토킹 범죄의 경우 양형기준이 신설됐다. 양형위는 흉기 등을 휴대한 스토킹 범죄에 대해 최대 징역 5년까지, 일반 스토킹 범죄 최대 징역 3년을 권고했다. 특히 흉기를 휴대하고 죄질이 안 좋은 경우 원칙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를 위반한 경우도 최대 징역 2년을 권고했다. 법정형은 낮지만 강력범죄로 발전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고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보호조치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은 공탁으로 형을 감경받는 것을 막기 위해 피해 회복에 대한 감경인자에서 '공탁 포함'이라는 문구도 삭제했다. 양형위원회는 "공탁은 피해회복 수단에 불과한데, 마치 공탁만 하면 당연히 감경인자가 되는 것처럼 오인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