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앱 설치, 따님도 도와주세요"…모녀 속인 경찰관의 정체[영상]

머니투데이 김지은 기자, 정세진 기자, 방진주 PD 2024.03.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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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다시 울리는 그놈목소리④]"보안 앱 설치해드릴게요"… 드라마 뺨치는 보이스피싱 시나리오

편집자주 한동안 감소 추세였던 보이스피싱 범죄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달 피해액이 500억원을 돌파하고 1인당 피해액은 3000만원을 넘어섰다. 정부의 서민 지원용 금융 상품까지 악용하는 등 신종 기법이 활개를 친다.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와 진화하는 범죄 행태를 살펴본다.



# "지금부터 보안 강화 프로그램을 제가 다 설치를 해드릴게요. 휴대폰 아래에 네모로 된 거 클릭하시고요. OOO를 검색해주세요."

한 여성에게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서 연락이 왔다. 최근 사기 범죄가 늘어나는데 보안 강화 프로그램 어플리케이션(앱) 설치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평범한 목소리였다. 더듬거나 긴장하지도 않았다. "팀장할 때 팀, 뷰리풀할 때 뷰, 어머니할 때 어"라고 말하며 친절하게 앱 설치법도 알려줬다. 여성 옆에 있던 딸이 의심을 했지만 "경찰이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히려 앱 설치하는 것을 도와주라고 했다.

영상 속 이 남성, 알고보니 보이스피싱범이었다. 스마트폰 사용이 미숙한 이들을 상대로 경찰관으로 사칭해 악성앱 설치를 유도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 뜯어보면 어설픈 지점들이 있다. '플레이스토어'를 '플레이스토커'라고 하기도 했고 전화가 끊기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겁을 준다.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입니다"… 수사기관 사칭하는 '기관사칭형'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가 고도화되면서 경찰청은 보이스피싱 범죄 유형을 5가지로 정리했다. △기관사칭형 △대출사기형 △납치빙자형 △메신저피싱형 △몸캠피싱형이 대표적이다.

기관사칭형은 수사 기관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다. 피싱범은 자신을 검사, 수사관이라고 소개하며 "당신의 휴대전화가 도용돼 대포통장이 만들어졌다" "악성 프로그램이 설치됐는지 확인해야 하니 지금 보내준 앱을 설치해달라"고 말한다.

피해자가 의심하면 허위 형사사법 포털 사이트에서 만든 공소장, 구속영장을 보내준다. 피해자가 지시를 따르면 계좌 이력 조회를 위해 주거래은행과 계좌번호, 메일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확인 절차가 끝나면 채팅 내용과 통화 기록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다.


피해자가 구제 받도록 금융감독원 민원실 담당자와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속이는 수법도 있다. 검찰과 금감원 모두를 사칭해 양 기관에서 번갈아 전화하며 속이는 셈이다.

이 때 금감원 담당자를 사칭한 범인은 "명의가 도용됐으니 다른 사람이 몰래 대출을 받기 전 미리 대출을 받아 옮겨놔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자산을 현금화하고 국가에 귀속시키면 조사가 마무리되고 돌려주겠다고 회유한다.

신청한 적 없는 대출 상품이 승인이 됐다는 '대출사칭형' 미끼 문자. /사진=독자제공신청한 적 없는 대출 상품이 승인이 됐다는 '대출사칭형' 미끼 문자. /사진=독자제공
"저금리 대출, 지금 신청하세요"… 대출사칭형 미끼
대출사기형은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는 미끼 문자를 발송해 피해자 연락을 유도한 뒤 악성앱 설치를 유도하는 수법이다. 금융기관을 사칭해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며 피해자에게 직접 전화하는 것도 포함된다.

피싱범들은 가짜 대출 신청서가 담긴 압축파일을 전송한 뒤 앱을 설치하게 한다. 기존에 있던 정상적인 은행 앱, 보안 백신 앱과 호환이 안돼 충돌이 발생한다며 기존의 앱들을 삭제하도록 지시한다.

기존의 대출금을 갚기 위해 금융 기관에서 또 다른 대출을 받는 '대환대출'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가 신규로 대환대출을 신청하면 기존에 대출 신청을 했던 기관에서 사칭 전화가 온다.

구체적으로 "이중으로 대출을 하면 금융거래법·여신금융거래법·대출약관 위반이다" "지금 금융질서문란 행위를 했다"며 피해자에게 겁을 준다. 기존 대출금을 24시간 이내에 현금으로 상환하라며 돈을 보낼 것을 유도하기도 한다.

가족을 사칭해 돈을 보내달라는 '메신저피싱형' 보이스피싱 사기. /사진=독자제공가족을 사칭해 돈을 보내달라는 '메신저피싱형' 보이스피싱 사기. /사진=독자제공
"믿었던 사람인데"… 신뢰 이용하는 납치빙자, 메신저, 몸캠피싱형

납치빙자형은 지인·가족을 납치했다며 돈을 빼앗는 수법이다. 스스로 지인·가족인 척 행동하며 납치를 당한 것처럼 꾸미기도 한다. "자녀를 납치 중인데 칼에 맞고 위험하다. 살리고 싶으면 계좌로 돈을 보내라" "엄마 나 성폭행 당했어. 골드바를 구매해서 전달하래" 등이 대표적이다.

메신저피싱형은 지인·가족을 사칭해 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엄마, 휴대전화 액정이 깨졌어. 이 번호로 연락 줘" "인터넷으로 결제할 게 있는데 휴대전화가 고장나서 인증이 안된다" 등이 있다. 피싱범은 신분증, 계좌번호, 공인인증서를 대신 보내달라고 요청한 뒤 피해자 정보로 휴대전화를 새로 개통해 소액결제를 한다.

몸캠피싱형은 타인 나체 사진을 도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한 뒤 돈을 빼앗는 수법이다. 익명의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 화상 채팅을 요구하고 미리 준비한 나체 영상을 보여준다. 상대방도 함께 음란행위를 할 것을 유도하며 피해자 얼굴과 중요 부위가 나오게 한다.

화상 채팅 도중에는 상대방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음성 지원용 앱을 설치해달라고 한다. 이는 원격 조정이 가능한 앱으로, 이를 이용해 피해자 휴대폰 연락처, 사진 등을 알아내 돈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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