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이정후.
이정후. /AFPBBNews=뉴스1
미국 매체 CBS 스포츠는 26일(한국시간) 자사 기자 6명에게 2024년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 신인왕, 사이영상, 감독상, 재기상 후보를 뽑게 했다.
이들 중 이정후를 선택한 사람 또는 언급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기사 말미에 한 스포츠 베팅 업체의 3월 22일자 예상 순위에 이정후의 이름이 배당률 +500으로 +250의 야마모토에 이어 두 번째로 적혀 있을 뿐이었다. +500은 100달러를 걸어 맞히면 500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이정후. /AFPBBNews=뉴스1
이정후.
유망주 평가에서 공신력 높은 미국 야구 전문 매체 베이스볼 아메리카(BA)는 선수 평가 척도 중 하나인 20-80 스케일에서 이정후의 콘택트를 60, 파워를 45로 평가했다. 50이 메이저리그 평균으로 60은 올스타 레벨, 45는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탓에 지난해 12월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 1300만 달러(약 1515억 원) 계약을 체결했을 때 오버페이 논란이 현지에서 나온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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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정후는 시범경기 시작과 함께 자신에 대한 우려를 날려버렸다. 지난달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와 시범경기 데뷔전부터 안타를 신고하더니 그 다음 경기인 3월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는 홈런과 2루타를 때려내며 장타에 대한 우려를 씻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안타를 생산, 26일 현재까지 12경기 타율 0.375(32타수 12안타), 1홈런 5타점 5볼넷 3삼진 2도루, 출루율 0.459 장타율 0.531 OPS(출루율+장타율) 0.990을 기록 중이다.
또한 약점을 지적받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줘 발전 가능성을 보였다. 몇 년간 KBO리그에서 많은 도루를 기록하지 않은 것을 염려해 주력에 의문을 품는 시선이 있었지만, 5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 후속 타자의 병살타를 방지하는 센스 있는 주루로 찬사를 받았다. 콜로라도전 후 미국 매체 디 애슬레틱은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가 올 시즌 상대팀을 성가시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는 키움 히어로즈에서 한 시즌 13개 이상 도루를 한 적이 없지만, 샌프란시스코 코치진은 득점권 상황에서 충분히 점수를 낼 수 있는 선수로 보고 있다"고 눈여겨봤다.
지난 10일 오클랜드전에서 좌완 투수 카일 뮬러와 프란시스코 페레즈를 만나 시범경기 첫 무안타 경기(3타수 0안타)를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11일 시애틀전에서 곧장 좌완 테일러 소세이도를 상대로 가볍게 중전 안타를 때려내며 자신을 향한 섣부른 판단을 자제시켰다.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콜리세움 스타디움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시범경기에서도 3타수 무안타 1볼넷으로 출루 능력을 보여줬다. 이렇듯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 경쟁력을 입증하는 가운데서도 단 한 명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야마모토에게 밀린 건 아쉬움이 남는다.
21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미국 메이저리그(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공식 개막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LA 다저스의 2차전 경기 1회초 다저스 선발 야마모토 요시노부(오른쪽)가 실점 후 아쉬워 하고 있다. /사진=뉴스1
21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미국 메이저리그(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공식 개막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LA 다저스의 2차전 경기 1회초 다저스 선발 야마모토 요시노부(왼쪽)가 실점 후 아쉬워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최근 기량도 최고 수준이어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눈앞에 둔 지난해에는 23경기 모두 선발로 출전해 16승 6패 평균자책점 1.21, 164이닝 34사사구(28볼넷 6몸에 맞는 볼) 169탈삼진을 마크했다. 자연스레 퍼시픽리그 다승과 평균자책점, 최다 탈삼진, 승률 부문 1위를 차지하면서 NPB 역사상 최초로 3시즌 연속 투수 4관왕을 달성하고 사와무라상도 3년 연속 수상했다. 또한 3년 연속 퍼시픽리그 MVP를 수상했는데 NPB 역사상 3연속 MVP는 단 3명뿐으로 1994~1996년 오릭스 블루웨이브(현 오릭스 버펄로스)의 스즈키 이치로가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막상 까보니 헛점이 보였다. 시속 95마일 이상의 빠른 공과 낙차 큰 스플리터의 위력은 여전했지만,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쉽게 커트 당하고 맞아 나갔다. 라이브 피칭부터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으로부터 "조금 더 정교함을 늘리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받았다. 시범경기에서는 3경기 9⅔이닝 동안 15피안타 4볼넷 14탈삼진 9실점(9자책)을 기록, 평균자책점 8.38로 좋지 않았다. 대부분 직구를 집중적으로 공략당해 피안타율 0.357,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1.97로 세부 지표도 최악이었다. 이 탓에 '티핑(투구 습관이나 동작에 따라 구종이 구별되는 것)'이 들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언론으로부터 나왔다.
이 문제는 지난 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샌디에이고와 2024년 메이저리그 개막전에서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1회를 버티는 데 급급했다. 총 투구 수 43개 중 스트라이크가 23개에 그치며, 1이닝 4피안타 2사사구(1볼넷 1몸에 맞는 볼) 2탈삼진 5실점(5자책)을 기록, 평균자책점은 45.00으로 치솟았다. 결국 야마모토는 2회 시작 전 마이클 그로브와 교체돼 충격적인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럼에도 CBS 스포츠 기자들의 반응은 우호적이었다. 마이크 악시사 기자는 "지난주 야마모토가 매우 힘든 데뷔전을 치렀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매우 재능이 있는 선수고, 빠르게 빅리그에 적응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야마모토는 일본에서의 성공적인 경력에도 신인왕 후보 자격을 갖췄고, 힘든 첫 경기(개막전)를 치르기 전에는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후보로도 고려했다"고 높은 평가를 내렸다.
케이트 펠드먼 기자는 "야마모토의 데뷔전은 형편없어 보였지만, 우리 중 직장에서 나쁜 날이 없던 사람이 어디 있겠나. 특별히 획기적인 선택은 아니지만, 여전히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