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목마른 韓 축구, 황인범·이재성 '워터 캐리어' 활약에 달렸다

스타뉴스 신화섭 기자 2024.03.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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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범(오른쪽)이 지난 21일 태국과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볼을 다투고 있다. /사진=OSEN황인범(오른쪽)이 지난 21일 태국과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볼을 다투고 있다. /사진=OSEN


지난 1월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전에서 한국은 요르단에 0-2로 패했다. 요르단은 경기 초반부터 공격 1선에 위치한 선수들이 한국 수비 진영에서부터 공격적인 수비를 펼쳤다. 한국의 불안 요소였던 후방 빌드 업을 집요하게 공략한 요르단 전술의 승리였다.

지난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 태국과의 홈 경기에서도 한국은 후방 빌드 업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태국은 과거의 태국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전과 달리 체격과 몸싸움이라는 측면에서 적어도 전반 초반에는 한국과 대등한 상황을 연출했다. 선취 골은 한국이 넣었지만 빠른 역습에 능한 태국에 동점골을 내줘 1-1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했다.



26일 열리는 경기에서도 태국은 한국에 맞서 비슷한 전법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이 경기는 태국의 홈 경기라 한층 더 '공격적인 수비'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또다시 후방 빌드 업이 불안한 모습을 보일 경우에는 뜻하지 않게 어려운 경기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워터 캐리어(Water Carrier)'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축구에서 '워터 캐리어'란 표현은 중원에서 상대와 치열한 볼 다툼을 하면서 공을 가로챘을 때 동료 선수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할 수 있는 선수를 지칭한다. 외관상으로는 크게 빛나지 않지만 목 마른 팀에 소중한 '물'을 공급해 주는 선수들이다.



지난 아시안컵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워터 캐리어'들은 나름 좋은 활약을 했다. 엄청난 활동량으로 주변 선수들에게 끊임없는 '실탄 공급'을 해줬던 이재성(31·마인츠)과, 늘 그렇듯 대표팀에서 공수 연결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황인범(28·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이재성(왼쪽).  /사진=OSEN이재성(왼쪽). /사진=OSEN
하지만 이들과 중원에서 호흡을 맞춰야 할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제 역할을 못했다. 아시안컵 때 박용우(31·알아인)와 태국전에 선발로 나선 백승호(27·버밍엄시티)가 그랬다. 물론 후방이나 중원에서 패스를 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이들의 패스 미스는 전적으로 두 선수만의 책임은 아니다. 전체적인 빌드 업 과정에서 다른 선수들과 협력 플레이에 어디에선가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클린스만 당시 감독의 전술 부재와 대표팀 내분 사태 등을 겪으면서도 손흥민(32·토트넘)의 환상적인 프리킥 골 등에 힘입어 4강에 오를 수 있었다. 만약 2년 전 카타르 월드컵 때 보여준 안정된 빌드 업과 투쟁적인 의지가 가미됐다면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훨씬 더 편안한 경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중원은 톱니바퀴처럼 연결돼 있다는 느낌보다 중간 중간에 공백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그 빈틈을 다른 팀들이 철저하게 공략하고 있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상으로 한국보다 뒤처져 있는 아시아 팀이라고 해도 최근 한국이 손쉽게 상대할 수 있는 팀의 숫자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우리가 월드컵 등에서 한 수 위의 팀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는 것처럼 이들도 한국과 경기에서 이변을 만들 수 있다. 축구 경기에서 공은 그 어떤 팀에도 둥글기 때문이다.

디디에 데상 프랑스 축구 대표팀 감독.   /AFPBBNews=뉴스1디디에 데상 프랑스 축구 대표팀 감독. /AFPBBNews=뉴스1
1990년과 1994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도 못했던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에서 사상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 프랑스 축구 대표팀에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월드 클래스의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공격의 중심이었던 지네딘 지단(52) 이상으로 월드컵 우승에 결정적 기여를 한 선수는 현 프랑스 축구 대표팀 감독인 디디에 데샹(56)이었다.

팀을 위한 엄청난 헌신과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던 데샹의 별명은 '워터 캐리어'였다. 한때 프랑스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에릭 칸토나(58)가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골은 거의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그라운드 위에서 팀의 공격과 수비에 윤활유 역할을 했던 부지런한 수비형 미드필더 데샹의 별명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26일 태국 원정경기는 물론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어쩌면 한국 축구의 명운을 쥐고 있는 선수들은 '워터 캐리어'가 될 가능성이 짙다. 중원에서 이들이 얼마나 안정된 패스 게임을 전개하면서 상대와의 치열한 볼 다툼을 이겨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이 경기가 펼쳐지는 밤에도 현지 기온이 섭씨 26도를 넘나드는 태국의 더운 날씨 속에서 한국의 '워터 캐리어'들이 승리에 목마른 한국 축구의 갈증을 해소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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