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진료 30~50%까지 줄 수도" 대학병원 '주 52시간 선언' 후폭풍은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2024.03.2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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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전공의 집단 이탈에 이어 병원을 지키던 교수들마저 자발적인 집단 사직과 진료 시간 단축을 선언하고 나섰다. 전국 의과대학 40개 중 39개가 소속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21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재 남아있는 의료진은 사직서를 내기 전에 순직할 판"이라며 오는 25일부터 자발적 사직과 함께 주 52시간 이내로 외래·수술·입원 진료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창수 전의교협 비대위원장(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2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앞서 전의교협 회의를 통해 자발적 사직서 제출을 결의했는데 상당수의 의사가 사직서를 제출할 것으로 예상됐다"며 "그러면 병원에 남는 의사에게 업무가 쏠리게 될 텐데 이를 막을 방안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은 의사의 번아웃(소진)을 막고, 환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근로기준법(제53조)의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을 준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 의료를 지키기 위해선 외래 환자 조절이 불가피하다. 진료과마다 다르겠지만 외과의 경우 기존의 30% 수준까지 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의교협은 '당직 근무 후 외래'처럼 연속 근무를 포함해 교수의 부당한 처우에 대응하기 위해 조만간 신고센터(가칭)를 개설, 법적 지원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배장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22일 자신의 SNS에 공개한 사직원./사진=페이스북 캡쳐 배장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22일 자신의 SNS에 공개한 사직원./사진=페이스북 캡쳐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의대 증원을 결정한 이후 의사의 자발적 사직은 계속되고 있다. 배장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22일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해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을 SNS를 통해 공유했다. 충북대 의대는 의대 정원이 49명에서 20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이다.



그는 "제 꿈은 심근경색증부터 협심증까지 우리 병원에서 서울로 가시는 분이 없도록 하고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을 훌륭한 의사로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며 "이런 꿈이 의대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로 산산조각이 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같은 병원, 같은 진료과의 배대환 교수도 지난 4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부교수도 앞서 자신의 SNS에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사직서 제출 사실을 알렸다.

현재로서 얼마나 많은 교수가 자발적 사직이나 주 52간 근무에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전의교협 비대위는 참여 인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당장 진료 현장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지역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가 당장 다음 주로 예고됐지만, 전체 환자에게 해당 사실을 공지할 만큼 예약 취소·지연이 이뤄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도 "전의교협에 소속된 의사가 누군지, 근로 시간 제한에 참여하는 교수가 몇 명인지 알 수 없다"며 "아직 병원 차원에서 이를 집계할 수준은 아니다"고 밝혔다. 서울지역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근무하는 A교수는 "주변에서 실제 사직서를 내거나 주 52시간 근무에 참여한다는 교수는 아직 보지 못했다"며 "아직은 최대한 환자 치료에 나서자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과대학 교수가 연구동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과대학 교수가 연구동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일각에서는 전의교협이 주 52시간 근무를 '선언'한 것은 당장 정부와의 '협상 카드'라기 보다는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는 점을 감안한 결정으로 해석한다. 길게는 내년까지 '전공의 없는' 병원이 운영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남아 있는 교수들이 지금처럼 주당 100시간 이상 중환자실과 응급실 당직을 서며 외래, 수술, 입원 진료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외과 B교수는 "의사가 너무 부족하다"며 "대학병원이 외래를 줄이고 중증·응급 환자에 집중하는 건 불가피한 결정이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없어 수술이 줄고 외과 외래 진료가 축소됐는데, 내과 역시 지금보다 외래 진료량이 50%가량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A교수는 "당장은 아니라도 몇 달 내로 사직, 근무 시간 조정 등으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가 감소하면 대학병원이 꼭 봐야 하는 중증 환자마저 제때 진료를 못 보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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