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에 끌려가 강제노역" 탈출 후 폭로…'연 20억' 보조금 꿀꺽한 그놈들[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전형주 기자 2024.03.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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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75년 주례동 산 18번지에 위치한 형제복지원.  /사진제공=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1975년 주례동 산 18번지에 위치한 형제복지원. /사진제공=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1987년 3월22일. 부랑인 쉼터 형제복지원에서 원생 36명이 탈출을 시도하다 1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탈출에 성공한 원생 35명은 입을 모아 형제복지원의 비극을 증언했다. 폭행과 성폭행,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며 참혹했던 인권 유린의 실상을 알렸다.



형제복지원은 그해 수용된 원생만 3975명, 연인원 4만여명에 이르는 전국 최대 규모의 부랑인 쉼터였다. 이곳의 참상이 12년 만에 세간에 알려지면서 한국판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라는 오명이 따라붙었다.

멀쩡한 시민 끌고가 폭행·강제노역
부산 북구 주례동에 있던 형제복지원의 모습. /사진제공=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부산 북구 주례동에 있던 형제복지원의 모습. /사진제공=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형제복지원은 1960년 7월20일 육아원으로 설립됐지만 1971년 부랑인 쉼터로 바뀌었다. 1975년 12월부터는 박정희 정부가 부랑인을 단속·수용할 것을 내무부 훈령으로 정하면서 강제 수용소로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운영됐다.

정부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부랑인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형제복지원은 수용자가 많을수록 보조금이 더 나오는 점을 악용해 멀쩡하게 거리를 지나던 어린이까지 마구잡이로 끌고 와 강제로 수용했다. 심지어 기차역에서 혼자 TV를 보다가 끌려온 시민도 있었다. 당시 형제복지원이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은 매년 10억~20억원에 달했다.

육군 상사로 예편한 박인근이 원장으로 있던 형제복지원은 모든 게 군대식이었다. 명령 체계는 중대장과 소대장으로 이어졌다.


원생들은 입소와 함께 일련번호를 달고 소대로 불리는 숙소에 배정됐다. 머리를 짧게 깎고 흰색 속옷, 트레이닝복, 검정 고무신 등 보급품으로만 사계절을 버텨야 했다.

새벽 4시 기상해 30분 안에 세면을 끝내야 했고, 아침 식사를 시작하는 6시까지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했다. 식단은 늘 똑같았다. 꽁보리밥에 시래기 된장국, 전어젓과 소금간이 된 배추김치가 전부였다. 잘못이 있든 없든 매를 맞았고, 뼈가 부러져 장애인이 된 원생도 많았다.

원생들은 하루 10시간이 넘는 중노역에 시달렸다. 여자들은 성폭행을 당하다 정신을 놓아 정신병동에 수감되기도 했다.

숨진 원생 657명…시체는 해부실습용으로 거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한 피해자가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한 피해자가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 동안 3만8000여명을 수용했다. 이 가운데 657명이 질병과 폭행 등으로 숨졌고, 시신 모두 암매장됐다. 일부 시신은 의과대학 해부 실습용으로 한 구당 300만~500만원에 판매된 것으로 전해진다.

더구나 숨진 원생의 70%는 부랑인이 아니었다. 대부분 가족과 직장이 있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아홉살에 세살 터울 누나와 함께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는 한종선씨는 저서 '살아남은 아이'에서 "아버지가 새 신발과 옷을 사주고 이소룡이 나오는 영화도 본 날 파출소 앞에 나타난 검은색 차를 타고 끌려갔다"고 회상했다.

'솜방망이 처벌' 박인근 원장…140억대 재산 보유
박인근 원장은 전두환 정권에서 부랑인을 퇴치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과 1984년 각각 국민포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형제복지원에서 만행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불법 감금 등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은 1989년 7월 "내무부 훈령에 따른 부랑인 수용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 원장은 건축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박 원장에 대한 훈포장은 2018년 7월에야 박탈됐다.

박 원장은 이후 형제복지원 부지를 매각해 막대한 부를 챙겼다. 2022년 호주 일간 오스트레일리안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시드니에 약 140억원 규모의 골프 연습장과 스포츠 센터를 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범' 국가, 35년만 책임 인정했지만…

지난 1월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지난 1월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DB
비극의 '공범'인 국가는 책임을 회피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사건 35년 만인 2022년 8월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피해자 70명은 2022년 12월 정부와 부산시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부산지법 민사11부(전우석 부장판사)는 지난 2월7일 국가와 부산시가 형제복지원 피해자 70명에게 위자료 약 16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합계 청구액 283억여원 가운데 약 58%가 인정됐다. 이 판결로 피해자는 인당 최소 1000만원에서 최대 7억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재판부는 "당시 내무부 훈령 410호 '부랑인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은 위헌·위법해 무효"라며 "훈령 발령에 따라 영장에 의하지 않은 강제수용 등으로 국민 기본권이 침해됐고, 공무원은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들은 적법한 법령에 근거하지 않고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사실이 증거로 증명됐으므로 국가는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부산시와 법무부는 "배상 금액 등에 대해 상급심의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항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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