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안산이 쏘아올린 '내로남불' 매국노 논쟁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2024.03.1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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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의 열화일기] '매국노' 발언 뒤 묵묵부답…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너무 경솔한 언사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대한민국 안산 선수가 활시위를 놓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대한민국 안산 선수가 활시위를 놓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가 일본풍 주점을 향해 "매국노"라고 언급한 것은 아무리 봐도 생뚱맞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정도로 '반일 정서'가 지금 직간접으로 작용하는 상황도 아닌 데다, 딱히 그럴 만한 계기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이후 한일 관계가 안 좋을 때 일본을 오가는 항공편의 약 60%가 운항을 중단했고, 그해 하반기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전년 동기보다 50% 이상 줄었다. 그해 양국의 수입·수출액도 760억달러(약 109조원)로 전년 대비 10.7% 감소했다.



이런 경색 국면에 가수 성시경이 그해 12월 일본 음식 사진을 올렸다가 바로 '친일파' '매국노' 같은 거센 비판을 받고 사과까지 해야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한일 양국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이 순조롭게 '순환'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은 맥주 수입국 1위에 올랐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일본 맥주 수입량은 3만6천573t(톤)으로 전체 맥주 수입량의 21.9%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올해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1000만명에 이른다. 지난 1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많은 관광객 수를 기록한 나라는 한국으로, 85만 7000명이 방문해 지난해 같은 달보다 79.5% 증가했다.



이런 상황만 봐도 안산의 매국노 '저격'은 그 의도나 맥락, 심지어 계기조차 파악할 길이 없다. 그는 광주 광산구의 한 쇼핑몰에서 그것도 '일본 테마'의 거리 입구에 줄지어 선 가게에 쓰인 한자를 두고 "한국에 매국노 왜 이렇게 많냐"고 적었다.

어떤 설명도 없으니 한국에 갑자기 늘어난 일본식 주점을 향해 '기분 나쁨'을 즉흥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그런 기분조차도 어떤 배경 설명이나 변명, 해명 같은 추가 조치 없이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결국 자영업자 단체가 19일 "안산의 경솔한 주장으로 묵묵히 가게를 지키는 700만 사장님 모두를 모독했다"며 명예훼손으로 그를 고소했다.

일본 주점에 대해 언짢을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적은 대로 그런 가게를 운영한다는 것만으로 "매국노"를 쉽게 언급한 것은 선을 넘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식 전골 전문 술집을 운영하는 권순호 대표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올린 영상 일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일본식 전골 전문 술집을 운영하는 권순호 대표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올린 영상 일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게다가 그는 국가대표다. 우리와 진영이 다른 국가와 '경기'를 할 때도 존중하고 이해하고 위로하는 방식을 터득했을 게 뻔하다. 그렇지 않다면 도쿄올림픽은 아예 출전하지 않아야 논리적으로 설득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심지어 그가 시합 때 사용하는 양궁의 주요 부속품이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것이고 예능프로그램에서 그가 선보인 인형 역시 일본 것이라는 지적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본인이 사용하는 것은 괜찮고, 남이 추종하는 건 나쁘다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결정적 배경이다.

문화는 '이해'의 덕목이고 정치는 '공격'의 전술이다. 선거 때마다 상대방을 기준 이상으로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후보자들은 그런 공격이 아니면 살아내기 힘든 생존 환경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안산처럼 스포츠에 몸담은 선수나 문화예술인은 누구보다 이해의 덕목을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안산은 일본 주점을 운영하는 사장보다 일본 격투기 선수인 추성훈을 향해 더 비난을 쏟아부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우리가 추성훈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건 그가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 가치와 사상에 있는 것이지 그가 어떤 국적을 갖고 누구와 결혼했느냐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단한 연습으로 일반인은 꿈도 못 꾸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누구도 쉽게 갖지 못하는 창의력으로 예술의 단계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문화체육예술인의 차별화는 수용과 이해의 가치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단발머리를 했을 뿐인데 뜻밖에 페미니스트라는 비난에 시달린 안산을 한때 응원하다가도, 뜬금없는 정치인의 공격 발언처럼 '매국노'를 쉽게 내뱉는 언사를 보면서 안산의 정체성이 다시 궁금해졌다.

아니, 그를 통해 오늘 내가 출근길에 타고 온 자전거의 부속 70% 이상이 일본 부품이라고 생각하니, 나 역시 '매국노'의 그림자를 달고 다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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