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기업의 정기 주주총회 모습
밸류업 정책의 원조는 일본이다. 사상 첫 닛케이지수 4만 엔 선 돌파로 적어도 증시에서라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설움을 털어낸 일등 공신은 단연 상장사의 주주 친화 정책을 유도한 밸류업 정책이었다.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주가가 장부가보다 저평가됐다는 의미인) 기업에 주가를 올리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공시하라고 떠밀고 기업의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을 유도한 것도 한몫 했다. 하지만 이것이 다일까?
밸류업 정책 후발주자인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일 대장주로만 따져보면 지난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84.8% 급감한 반면 토요타자동차는 연간(2023년4월 ~ 2024년3월) 영업이익 전망은 기존 4조5000억엔에서 4조9000억엔으로 9% 가까이 상향 조정됐다. 다른 경쟁사들이 고금리와 전기차 수요 둔화로 고전한 반면 토요타는 2023년 연간 1120만대를 팔아 4년 연속 세계 최대 판매 자동차의 자리를 지켰다.
생명보험(PBR 0.3), 손해보험(0.4), 은행(0.5), 증권(0.7), 자동차(1.1) 등이 그나마 저PBR업종으로 부각됐지만 또다른 저평가 업종인 석유와 가스(0.5), 철강(0.4), 해운(0.5) 등은 제대로 된 조명조차 받지 못 했다. 이런 상황에서 행동주의펀드들은 밸류업 바람에 편승해 투자한 기업의 경영 개선이나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주요 상장사로 국한해 보면 금융지주 7곳을 비롯해 삼성물산, 금호석유화학, KT&G, 현대엘리베이터 등의 기업들이 주주제안 대상이 됐다.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기업 가치 제고, 지배구조 개선 등의 긍정적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과도한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단기 주가 상승에만 매달리면 기업가치 훼손이라는 짙은 그늘을 드리울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철강, 화학 업종 기업들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 등으로 실적 면에서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성장동력을 잃어버릴 우려마저 커진다. 중국 경기가 위축되면서 중국내 철강재의 경우 내수 가격보다 수출 가격이 높아 중국 업체의 수출량이 늘어난 상황이고 유화, 화학제품은 과거 50%에 육박했던 대(對) 중국 비중이 지난해 36.3%로 떨어졌을 정도로 중국 판로를 개척하기가 쉽지 않다. 증시 활성화와 개인투자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밸류업의 가치를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기업실적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을 정부도, 행동주의펀드도, 주주(투자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월말까지 이어질 주총에서 밸류업과 실적 개선 의제가 공존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