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 새 둥지서 뗀 첫 걸음 '이니 미니' [뉴트랙 쿨리뷰]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4.03.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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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과 손 잡고 변신을 시도한 기대에 부응하는 컴백

사진=모어비전사진=모어비전


3~4개월 주기로 컴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청하가 컴백했다. 1년 반 만이다. 다음 활동을 위해 공을 들였다는 차원에서라도 공백기가 1년 이상은 돼야 ‘컴백’을 붙일 수 있는 것 아닐까. 우연찮게도 청하의 컴백 곡 ‘EENIE MEENIE’는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 도입부의 변주인 듯 올드스쿨 힙합 냄새를 물씬 풍기는 콘트라베이스 그루브로 문을 연다. 컴백에 컴백을 얹은, 당장의 겉모습만으로도 꽤 야무져 보이는 복귀다.

일단 곡 제목부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한글로 쓰면 ‘이니 미니’가 되는 ‘EENIE MEENIE’는 영어권 나라 아이들이 놀이 중 술래를 정하거나 편을 가를 때 쓰는 구호 또는 노래 ‘이니, 미니, 마이니, 모(Eeny, meeny, miny, moe)’에서 발췌한 것으로 우리 식으로 하자면 ‘가위바위보’나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정도 의미겠다. 하지만 해외 매체들은 하나 같이 이 제목이 다소 뜬금없다는 반응인데, 혹자는 비슷한 맥락에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를 절묘하게 엮은 현아의 ‘빨개요’에 비해 청하의 ‘EENIE MEENIE’는 그저 별 뜻 없는 “건조한 인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이건 제목만 그렇다는 얘기다. 일반 개념의 ‘노래’를 중심으로 불러온 기존과 달리 신곡에서 청하는 겹으로 쌓은(layered) 프리 코러스에서 빛을 내는 가창, 속삭이듯 무드를 바꾸는 드롭 파트, 브리지 형식을 빌린 랩으로 “선택에 따른 책임감보단 선택할 자유를 강조”한 곡의 주제를 표현한다. 여기에 1절과 2절을 잇는 클랩 비트, 코러스를 살찌우는 기타 스트럼(strum), 개구쟁이 같은 간주가 뮤직비디오에서 뽐낸 청하의 헐거우면서도 힘 있는 퍼포먼스를 꼼꼼히 받쳐준다.

사진=모어비전사진=모어비전


모든 괜찮은 곡들이 그래왔듯 반복해 들을수록 참맛을 알게 되는 ‘EENIE MEENIE’의 송캠프 라인업은 꽤 화려하다. 2023년 발매한 영국 여성 아티스트 앨범들 중 가장 빨리 팔린 작품으로 기록된 앤 마리의 ‘Unhealthy’에서 호흡을 맞춘 송라이터 코너 블레이크와 작곡가 겸 멀티 연주자 사라 보가 먼저 눈에 띄고 여기에 ‘Unhealthy’의 주인인 앤 마리, 스파이스 걸스 출신의 멜라니 C와 플러 이스트(Fleur East)의 곡을 만든 작곡/프로덕션 듀오 빌런 테드(Billen Ted)의 두 멤버(톰 홀링스, 샘 브레넌)가 가세했다. 참고로 코너 블레이크와 빌런 테드는 202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제임스 뉴먼이 부른 ‘Embers’을 공동 작곡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EENIE MEENIE’는 잘 나가는 영국 송라이터/프로듀서들을 대거 동원한 곳에서 태어난 곡이라는 얘기다. 이에 더해 싱글 발매 전부터 청하와 댄스 챌린지를 공개해 궁금증을 더한 보이 그룹 에이티즈의 홍중이 피처링하며 곡은 화룡점정을 찍는데, 청하는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3분 가까운 트랙에서 20초 분량을 소화한 홍중의 랩이 “이 트랙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며 만족해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청하의 간만의 신작엔 ‘I'm Ready’라는 곡이 ‘EENIE MEENIE’보다 더 화려한 텍스처를 머금어 잠들어 있다. 70년대 디스코와 80년대 팝, 90년대 하우스를 먹고 자란 프로덕션 듀오 포틴 빌리언(Fourteen Billion)의 조, 잭 하비 형제에 두아 리파, 헤일리 스테인펠드 등과 작업한 영국 디제이 니콜라스 게일(디지털 팜 애니멀스(Digital Farm Animals)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이 공동 작곡한 이 번쩍이는 트랙은 ‘Dream of You’와 ‘Stay Tonight’의 청하를 사랑해 준 팬들을 위한 선물이라는 평가가 말해주듯 ‘EENIE MEENIE’의 변신과 더불어 기존의 청하도 싱글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긴 공백기를 떨쳐내고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 곡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EENIE MEENIE’의 베이스 리프를 끝에 붙여 이번 싱글의 티저 영상처럼 꾸민 1분 10초짜리 뮤직비디오를 함께 감상해야 하는데 그 안에 있는, 한때 로스앤젤레스 클럽에서 유행한 70년대 댄스 장르인 왁킹(Waacking)은 청하가 팬들을 놀라게 하려 준비한 퍼포먼스다. 기존 그가 했던 보깅(Voguing)과는 다른 차원의 춤으로, 보는 이들은 청하의 카리스마를 정면에서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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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과 잠재력, 다양한 스타일로 관객을 사로잡는, 의심할 여지없이 최고의 퍼포머인 청하의 능력을 믿는다.”

7년을 함께 한 MNH엔터테인먼트를 떠나 지난해 10월 초 청하가 새로 튼 둥지(모어비전)의 수장인 박재범이 보낸 신뢰는 자신의 멘탈 건강과 외국어 및 심리학 공부를 위해 학교로 돌아가려 한 청하의 망설임을 다시 음악의 길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그 선언 격인 ‘I’m Ready’를 작곡한 포틴 빌리언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아티스트로서 성장하려는 의지, 자신의 예술을 아끼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컴백 하리란 팬들(HAART)과의 약속을 지켜낸 청하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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