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 로더', 사진=디즈니+
먼저 세 명의 주인공이 재벌가 왕좌를 차지하고 인생역전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거는,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로얄로더’를 보자. ‘왕도를 걷는 자’란 뜻의 ‘Royalroader’를 제목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는 대한민국 최고 재벌 강오그룹 강중모 회장(최진호)의 혼외자 강인하(이준영)을 강오그룹 회장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의기투합한 밑바닥 출신 한태오(이재욱)와 나혜원(홍수주)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야기를 이끌고 판을 만드는 인물은 단연 킹메이커인 한태오지만, 전국 상위 0.1%의 빼어난 두뇌를 지닌 한태오는 자신이 직접 왕(그룹 회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자지만 왕의 핏줄인 강인하를 내세워 높이 올라가고자 한다. 아무리 빼어나도 재벌 그룹의 회장이 능력으로 차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에서다. 강중모 회장의 자식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본가 식구들과 따로 살고 가족 취급 못 받는 강인하는 그간 숱하게 보아온 천덕꾸러기이자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반란을 꿈꾸는 서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아낸다.
'웨딩 임파서블', 사진=tvN
재벌가가 주요 배경이거나 주요 인물로 그려질 때, 그룹의 패권인 경영권을 두고 온갖 음모와 암투가 벌어지는 모습은 흔하다. 특히 혼외자가 섞여 있을 경우 그 잔혹함과 혹독함은 한층 더 매서워지는데, 경영권을 위해 상대방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부와 권력 앞에서 친부모형제 간도 적이 되는 형국에 하물며 어머니나 아버지가 다른 이복형제이면 더할밖에. ‘사랑의 불시착’에서 후계자에 낙점될 것으로 보이는 윤세리(손예진)를 죽이려 사주한 건 이복오빠였고,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그룹의 장남 진영기(윤제문)는 자신의 이복남동생 진윤기의 아들 진도준(송중기)의 사고사를 사주하며 걸림돌을 제거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쯤 되면 대놓고 적자와 서자라는 표현을 썼던 2013년 드라마 ‘상속자들’은 귀여운 수준이다. ‘상속자들’에서 적자인 김원(최진혁)은 자신과 경쟁 관계에 놓인 서자 김탄(이민호)을 미국으로 유배(!) 보내며 견제하긴 했으나 끝내 뜨거운 형제애를 무시하진 못했으니까.
''재벌X형사',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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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부계 혈통주의의 클리셰를 조금이나마 부쉈던 드라마 ‘마인’도 있었지만 여전히 재벌가 드라마에선 시대를 역행하는 장면들이 대거 등장한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여전히 축첩이 인정되고, 적자와 서자의 갈등이 공공연하다는 점이 조금 우습긴 하다. 그러나 어쩌겠나. 우리는 왕실의 권력암투를 그린 사극으로 단련된 국민 아니던가. 왕관을 쓰려거나 혹은 전복시키려는 서자들의 반란을 지켜보는 건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다. 후궁 소생 광해군이나 영조 같은 인물은 물론이고, 적자였지만 이복형제 간에 살육을 벌였던 이방원의 스토리가 여전히 뇌리에 가득한 민족이니 재벌가 적자•서자 전쟁도 재미날밖에.
‘로얄로더’의 강인하는 한태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존재를 대내외에 드러내는 중이고, ‘웨딩 임파서블’의 이지한은 형 이도한을 후계자 자리에 안착시키고자 형에게 어울리지 않는 예비 형수 나아정(진종서)을 유혹해서 떼내려 고군분투 중이다. ‘로얄로더’는 스릴러 드라마의 분위기를 풍기고, ‘웨딩 임파서블’은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두 작품 모두 재벌가 혼외자가 왕의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보인다는 점은 같다. ‘재벌X형사’의 진이수는 왕의 자리에 관심이 없지만 자신의 친모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헤치면서 아버지나 아버지의 후계자인 이복형에 치명상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란의 서자라는 포지션은 비슷하다. 왕관을 쓰거나 왕관을 전복시키려는 서자들의 활약은 계속된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