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게임', 계급사회의 축소판 담은 '여고판 파리대왕'

머니투데이 정명화(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3.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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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피해자'의 반전 두뇌플레이에 아찔한 쾌감

사진=제공 티빙사진=제공 티빙


'학폭'을 소재로 한 학원물이 이번에는 여고를 배경으로 높은 수위의 폭력과 욕설을 담아냈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은 뽀얗고 화사한 순정만화 같은 분위기의 여학교를 배경으로 한 색다른 학폭 소재 드라마다. 달꼬냑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소위 '엄친딸'들이 대거 모인 백연여자고등학교 2학년 5반에서 일어나는 지능적이고 악의적인 학폭 문제를 그린다. 그리고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서열 정하기를 통해 계급과 권력에 대한 원초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백연여고 내에서도 신축 별관이라는 고립된 공간, 2학년 5반에서 벌어지는 서열놀이는 외딴 무인도에 떨어진 소년들이 점차 권력과 폭력에 길들여지는 고전 '파리대왕'을 연상케한다. 여기에 권력 구도의 꼭대기에서 오랫동안 군림해온 '그 세계의 왕'과 그에 반기를 든 전학생(이방인)의 갈등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도 닮아있다. 근래 선보인 '약한영웅', '소년시대', '더 글로리' 등 학폭을 주된 소재로 삼은 작품을 위시해 많은 작품들이 학교폭력 문제를 각각 다른 양태와 템포로 담아냈다. 학교라는 특수한 세계의 은밀하고도 절대적이던 서열과 권력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변주되며 보는 이들의 입맛을 쓰리게 만든다.



사진=티빙사진=티빙
'피라미드 게임'은 여타의 학폭 소재 작품들 중에서도 더욱 교활하고 지능적인 괴롭힘과 학급 내에서의 계급 문제를 트렌디하게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앞서 학폭 소재로 흥행과 평가를 모두 잡은 '더 글로리' 출연 배우 중 안소요, 손지나 등이 출연해 묘한 기시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직업 군인인 아버지를 둔 탓에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사회생활과 눈치 만렙의 '성수지'(김지연).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되뇌이며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새 학교들에 적응해왔다. 이번에는 첫 여고로의 전학. 배정받은 2학년 5반은 본관에서 유일하게 떨어져 으리으리한 신축 건물인 별관에 위치해 있다. 다른 학교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여학생들이 모여있는 2학년 5반에는 왠지 모를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급우들은 수지를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문제아의 전형처럼 보이는 명자은(류다인)와 짝이 되고, 반장인 서도아(신슬기)는 이른바 인기투표인 '피라미드 게임'을 진행한다. 비밀투표 결과 0표를 받은 수지는 F등급으로 확정나고, A등급의 승인 하에 F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게임의 룰에 따라 반 아이들의 지독한 괴롭힘이 시작된다. 무차별 폭력을 당하는 수지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다정한 위로를 건내는 백하린(장다아 분). '기껏해야 졸업까지 1년 반'이라며 애써 참아보려던 수지는 예상보다 더 지옥같은 폭력에 'F 탈출 작전'을 세우고, 하위 그룹 멤버들을 포섭하기 시작한다.

사진=티빙사진=티빙
'피라미드 게임'의 백미는 수지의 지능적인 지략과 이에 맞서는 권력집단, 특히 교활하고 영민한 하린의 예측불가 대결구도다 . 한보 전진하면 두보 후퇴하고, 창으로 찌르면 방패로 막아내는 막상막하의 두뇌 플레이라 하겠다. 걸그룹 아이돌 출신의 김지연은 명료한 대사 딕션과 유연한 연기력으로 이 게임을 무리없이 끌고 나간다. 굴지의 재벌 백연그룹이라는 다이아몬드급 배경을 가진 하린 역은 신인배우 장다아가 맡아 신선한 페이스로 시선을 모은다. 외모, 성적, 재력 등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는 완벽한 '공주님'의 외연 속에 악랄한 학폭 가해자의 이중적인 캐릭터를 '갸륵한' 표정으로 그려낸다.


'피라미드 게임'이 표현하는 폭력의 수위는 기존의 학폭 소재 작품들에 견줘 결코 낮지 않다. 가정 내 폭력에 방치된 '다연'이 유도 유단자인 급우를 앞세워 행하는 폭력과 폭언은 이 작품의 등급이 청소년관람불가라는 점은 새삼 상기시킨다. 현재 6화까지 공개된 가운데, 하린과 자은의 과거 악연을 암시하며 하린의 흑화 이유가 드러날 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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