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자존심 지켜준 '신의 한 수'…이세돌 '1승'에 전세계 들썩[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2024.03.13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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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이세돌 9단이 2016년 3월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알파고와 네번째 대국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세돌 9단이 2016년 3월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알파고와 네번째 대국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2016년 3월 13일. '인간' 이세돌이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바둑 대결에서 승리했다. 3연패 끝에 얻어낸 귀한 성과였다.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이 인간 최고의 바둑 실력자로서 최고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바둑 대결에 나선 건 2016년 3월 9일부터 시작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에서다.



이세돌은 알파고의 수를 대신 두는 구글 딥마인드 소속 연구원 아자 황과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총 5번의 대국을 펼쳤다.

바둑계는 이세돌의 승리를 예상했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 해도 무한대 경우의 수를 지닌 바둑에서 인간을 능가하기 힘들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이세돌 역시 알파고와의 대국 전 "4대 1 또는 5대 0으로 이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승부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고, 이세돌은 알파고에게 3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인간 이세돌, 알파고에 3연패…"이세돌의 패배, 인간 패배 아냐"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1국 대국장 내 사진. 이세돌 9단(오른쪽)과 아자 황 박사(구글 딥마인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사진=구글'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1국 대국장 내 사진. 이세돌 9단(오른쪽)과 아자 황 박사(구글 딥마인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사진=구글
제1국에선 백돌을 잡은 알파고가 186수 끝에 불계승을 거뒀다.


바둑에서 '불계'(不計)란, 경기가 끝난 뒤 승패를 결정하기 위해 집 수를 헤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국 중 어느 한 쪽이 패배를 인정하고 포기하는 경우, 결과를 헤아려 볼 필요도 없이 승패가 갈려 다른 쪽이 '불계승'을 거두게 된다. 5~10집 이상이 차이가 나는 것으로 판단되면 패색이 짙은 측이 돌을 던진다.

대국 내내 계속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이세돌은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진다고 생각 안했는데 너무 놀랐다"라며 첫 소감을 전했다.

제2국에선 흑돌을 잡은 알파고가 211수 끝에 불계승을 거뒀고, 제3국 땐 백돌을 쥔 알파고가 176수 끝에 불계승을 거뒀다. 5판 3승제로 진행된 대결에서 최종 승자는 3번 승리한 알파고가 됐다.

세 번째 대국마저 내준 이세돌은 "굉장히 놀라운 프로그램이지만 완벽한 신의 경지에 오른 정도는 아니다"라며 "분명히 인간과는 다른 감각들이 있고 어떻게 보면 더 우월할 수도 있지만 분명히 약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인간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실력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세돌은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건 아니다"라며 "이번 패배로 인류가 인공지능에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세돌 78번째 '신의 한 수'에…알파고 실수 연발
이세돌 9단이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알파고와 네번째 대국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세돌 9단이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알파고와 네번째 대국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3연패를 기록한 이세돌은 심리적으로 무너질 만했지만 4번째 대국이 펼쳐진 3월 13일에도 그는 다시 바둑판 앞에 앉았다.

백돌을 쥔 이세돌은 대국 초중반까지 알파고에 흐름을 내줬다. 그러나 이세돌이 장고 끝에 78번째 수를 두는 순간 판세가 달라졌다.

이세돌의 수에 알파고는 당황한 듯 87수, 89수, 93수, 97수에 연이어 악수를 두는 실수를 거듭했다. 알파고는 어떤 경우의 수를 고려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뜻밖의 수를 두는 버그 현상까지 보였다.

이날 공식 해설을 맡았던 송태곤 9단은 "알파고가 자멸에 가까운 수를 연발하고 있다"며 "알파고가 렉(용량 및 처리능력 부족)이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수를 놓을 때마다 승률을 계산하는 알파고는 계속 예상승률이 나빠지자 실수를 연발했고, 알파고는 결국 컴퓨터 스크린에 '기권'(resigns) 메시지를 띄우며 항복을 선언했다.

3연패라는 부담감을 극복한 '인간' 이세돌이 인공지능을 상대로 값진 첫 승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이세돌이 승리를 확정한 순간 대국장에는 축하 박수와 함께 환호가 쏟아졌다.

이날 대국 후 이세돌은 "한 판을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받아본 건 처음인 것 같다"며 "오히려 3패를 당하고 1승을 하니까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1승"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초반은 알파고가 우세했으나 이세돌의 묘수와 복잡한 형세로 이어지면서 알파고의 실수가 나왔다"며 "오늘 이세돌은 다시 한번 대단한 바둑기사임을 입증했다"고 평했다.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을 마감한 가운데 15일 오후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시상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을 마감한 가운데 15일 오후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시상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이세돌은 이후 15일 펼쳐진 마지막 제5국에서 280수 만에 알파고에 불계패했고, 1승 4패로 대국을 마감했다.

이세돌은 비록 1202개의 슈퍼컴퓨터와 구글 서버 1000여대 등이 연결돼 1초에 10만 개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인공지능에 패했지만 보이지 않는 상대와의 고독한 싸움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 없이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줬다. 알파고와의 첫 대국 전 "바둑의 낭만을 지킬 수 있는 대국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던 이세돌은 자신의 약속을 지켜낸 셈이다.

알파고와 대국 3년 뒤인 2019년 11월 이세돌은 은퇴했다. 한국기원과 불화와 더불어 알파고와 대결에서 기술의 진보, 인간의 한계를 절감한 게 배경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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