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선거의 해…민주주의는 38년 전으로 돌아갔다 [기자수첩]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2024.03.13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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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지구촌이 선거로 들썩이고 있다. 올해가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투표함에 들어서는 '슈퍼 선거의 해'라서다. 연초 대만이 총통을 새로 뽑았고 이달엔 러시아가 대선을 치른다. 다음달엔 인도와 한국 총선이, 6월엔 유럽 의회 선거가, 11월엔 미국 대선이 연이어 펼쳐진다.

'민주주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의 해인 만큼 올해 민주주의도 꽃을 피우면 좋겠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하다. 민주주의는 후퇴 일로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펼쳐지긴커녕 정치적 대립과 혐오 정치가 판을 친다. SNS를 넘어 인공지능(AI)이 여론 조작에 동원되고 정치인 습격까지 벌어진다.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마음에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며 법을 바꾸는 일도 다반사다.



인도네시아에선 현직 대통령이 세습 정치를 꿈꾸며 아들을 부통령으로 내세우려 선거법을 개정했고, 인도에선 무슬림 이주민을 배제하는 시민권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인구 80%를 차지하는 힌두표 표심을 의식한 행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까지 손 댄 러시아에선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수감 중 의문사했다.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대표 격인 미국에서조차 대선 결과 뒤집기를 시도하고 지지자들의 의회 점령을 선동한 혐의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야당 후보로 재집권을 노린다.

오죽하면 세계 민주주의가 38년 전으로 돌아갔단 평가가 나온다.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 '브이뎀'은 지난 7일 낸 '민주주의 보고서 2024'에서 지난해 세계 민주주의 지수가 1985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세계 자유민주주의는 2000년대 초반 정점을 찍었다가 리먼 브라더스 사태, 트럼프 집권,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후퇴하고 있다.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미래를 확신하지 못한 채 불안에 시달리는 세대가 민주주의를 해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 현혹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곤 하지만 선거를 치르는 것 자체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리더는 적대와 분열을 이용하기보단 통합을 추구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유권자는 그런 리더에 힘을 실어줄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디를 향하는지 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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