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시민들은 촛불을 들었다[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양성희 기자 2024.03.1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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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사진=머니투데이DB고 노무현 전 대통령/사진=머니투데이DB


20년 전 오늘, 2004년 3월12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가 현직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상이었다.

같은 해 5월14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며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초유의 국정 공백이 벌어졌고 정국이 요동쳤다.



탄핵 정국 속에서 대한민국은 둘로 갈라졌다. 탄핵을 지지하는 국민과 반대하는 국민이 맞서면서 갈등이 심화했다. 특히 탄핵을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2004년 3월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을 앞둔 국회 본회의장 모습./사진=뉴시스2004년 3월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을 앞둔 국회 본회의장 모습./사진=뉴시스


의장석 점거, 경호권 발동…소란스러웠던 그날의 국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2004년 3월12일, 국회는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한나라당 소속이던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은 경호권을 발동해 의장석을 점거 중이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끌어내고 탄핵안을 상정한 뒤 표결 절차를 밟았다.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반발하자 야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투표가 이뤄진 것이다. 무기명 투표 결과 야당 의원 195명 중 찬성 193명, 반대 2명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앞서 탄핵안 발의도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의 주도로 이뤄졌다. 한나라당 108명, 민주당 51명의 서명으로 탄핵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탄핵안' 강경 카드 나온 건…
야당은 왜 탄핵소추안 발의라는 초강수를 뒀을까. 야당이 내세운 사유는 선거법 위반, 측근 비리 등 부정부패, 경제와 국정 파탄이었다.

선거법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킨 발언은 그해 2월 특별회견에서 나왔다.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은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월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노 전 대통령은 선관위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지만 새천년민주당은 이 발언을 문제 삼아 탄핵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통령 권한 정지, 흔들린 정국
곡절을 거쳐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후 노 전 대통령의 권한은 곧장 정지됐다. 그러면서 고건 국무총리의 대통령권한대행 체제가 가동됐다.

노 전 대통령은 탄핵 정국이 본격화한 데 대해 "대결 국면으로 탄핵 정국에 이르게 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선거 중립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정국이 흔들리면서 투신, 분신 사태도 빚어졌다. 한 노사모 회원은 탄핵안이 가결된 전날 분신을 시도해 중태에 빠졌다. 노 전 대통령 친형 노건평씨에게 3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았던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여론도 들끓었다. 방송3사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탄핵안 가결이 "잘못됐다"는 의견이 70%에 가까웠다. 응답률이 MBC에서는 70.0%, KBS에서는 69.6%, SBS에서는 69.3%를 기록했다.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책임을 묻는 여론도 함께 커졌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를 심리한 헌법재판소./사진=뉴시스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를 심리한 헌법재판소./사진=뉴시스
헌재로 넘어간 공…결론은 '기각', 대통령직 복귀
탄핵안에 대한 공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면서 온국민의 시선은 헌재로 향했다. 노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간사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변호인단을 꾸렸다.

2004년 3월30일 시작된 심리는 그해 5월14일에 끝났다. 7차례의 공개변론을 거쳤고 노 전 대통령은 출석하지 않았다.

마지막 변론의 자리에서 대통령 대리인단은 탄핵 사유가 부적절하고 절차가 위법해 각하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대리인단은 "선거법 위반 부분은 추상적이고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요건이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회에서 의결할 때 대통령에게 통지, 해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했다.

국회 소추위원 측은 "대통령이 다시 복귀할 경우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적인 국가가 될 것이 우려된다"며 "탄핵 사유에 대한 판단은 국회의 몫"이라고 밝혔다.

헌재의 결론은 탄핵안 '기각'이었다. 헌재는 "일부 법 위반이 있지만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문제가 된 발언이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있지만 파면될 정도의 중대성은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헌재는 측근 비리가 취임 전에 일어난 일이거나 대통령의 연루 여부가 드러나지 않아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아울러 국정, 경제 파탄 사유는 탄핵심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헌재의 기각 결정으로 노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63일 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그는 기각 결정 다음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취임 때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정치개혁, 민생경제 회복 등을 약속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온 시민들./사진=뉴시스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온 시민들./사진=뉴시스
총선 열린우리당 압승, 촛불 집회로 정치적 재신임
탄핵 사태는 도리어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재신임을 받는 계기로 작용했다.

탄핵심판이 한창이던 그해 4월15일 총선에선 열린우리당이 압승했다. 열린우리당은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했다.

반대로 탄핵을 주도했던 야당은 뭇매를 맞았다. 제1당이던 한나라당은 겨우 121석을 차지했고 민주당은 9석에 그쳤다. 탄핵을 주도했던 의원들은 줄줄이 낙선했다.

탄핵 반대로 불붙던 촛불 집회도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2002년 미군의 여중생 압사 사건인 '미선이·효순이 사건'을 계기로 본격화한 촛불 집회는 탄핵 사태를 기점으로 전국적인 집회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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