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 막힌 길 열 해법…"한국이 가장 잘 할 수 있어"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24.03.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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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라스 아가드 덴마크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 장관

라스 아가드 덴마크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 장관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소재 한국경제인협회 회관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주한덴마크 대사관라스 아가드 덴마크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 장관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소재 한국경제인협회 회관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주한덴마크 대사관


"한국 기업들은 혁신을 가져와 산업 규모로 확장하고 효율적인 공급망을 만드는 걸 정말 잘 합니다. 녹색전환 과정에서 전세계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이 규모확대(scale-up)인데, 이는 한국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라스 아가드 덴마크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 장관은 지난 6일 머니투데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에너지·산업·모빌리티 등의 탈탄소화를 지칭하는 '녹색전환' 과정에서 대규모 인프라·제조업에 대한 투자와 이를 현실화하는 역량이 필수적이며 이 같이 말했다.



전세계 주요국들은 온실가스 감축목표 및 에너지 안보 달성을 위해 대규모 풍력발전단지, 전력망, 탄소배출 없는 난방 시스템과 모빌리티 인프라 구축에 동시다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필요한 원자재·중간재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 설비를 짓고 기자재 등을 대규모로 생산해야 하는데, 이 역량을 단기간에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이 대목에서 기술·생산 역량을 동시에 갖춘 한국 기업들의 역할이 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가드 장관은 덴마크 에너지 업계를 대표하는 조직에 15년 이상 몸 담다 2022년 말 덴마크의 에너지·기후정책을 총괄하는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 수장에 임명됐다. 전세계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장 빨리 달성한 국가 중 한 곳인 덴마크의 에너지 시장 변화를 민간 부문의 선두에서 지켜보다 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기업의 필요를 잘 아는 그가 정책 결정자로서 중요하다고 거듭 말한 건 '명확성'이다.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병목으로 에너지전환을 위한 사업들의 속도가 더뎌지는 듯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이 단기적일 거라 진단했다.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각국 정부와 정치권이 최대한 뚜렷한 정책 일정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설명과 함께다.



머니투데이는 산업통상자원부와의 한·덴마크 녹색성장동맹회의, 한·덴마크 수소 R&D 및 해상풍력 컨퍼런스 참석 등을 위해 3박4일 일정으로 방한한 아가드 장관을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회관에서 만나 녹색전환을 위해 한국과 덴마크의 협력이 필요한 분야와 덴마크의 경험 등을 들었다.

- 한국과 덴마크가 2011년 녹색성장동맹을 체결한 후 13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와 산업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이 시점에서 한국의 녹색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덴마크의 경험을 공유한다면.
▶이제는 경제의 탈탄소화가 중요한 과제가 됐고, 에너지와 관련해 안보적 측면이 더욱 중요해졌다. 한국과 유럽이 비슷한 점이라면 모두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우리의 안보는 에너지에 대한 접근과 연결돼 있다. 동시에 미래의 에너지는 반드시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덴마크는 풍력·태양광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고, 그 중 일부는 해상에서 생산할 것이다. 그리고 투자를 늘리고 에너지 시스템을 발전시켜 덴마크가 주변 국가에 친환경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을 발전시킬 것이다.한국도 풍력 발전과 관련한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2030년 해상풍력 목표량 14.3GW). 덴마크의 경우 풍력 단지 발전 외에 전력망 계획, 입찰 절차, 어민과의 합의 등에 경험이 있다. 덴마크가 배운 교훈 중 일부가 한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반면 한국은 수소 분야에서 덴마크 보다 더 오랜 기간 활동해 왔다. 수소는 녹색전환에 매우 중요하다. 유럽의 경우 러시아산 가스를 단계적으로 퇴출할 것이기 때문에 천연가스로 만드는 게 아닌 수소를 만들 수 있는 원천이 필요하다. 덴마크는 수소 생산에 필요한 많은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할 수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고, 이 수소 중 일부는 독일 등 이웃 국가로 수출될 것이다. 한국에서 수소 분야의 경험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싶다.

-탈탄소화·에너지 전환에는 비용이 든다. 재정적 부담을 누가 지느냐가 중요한 과제다. 덴마크의 경험을 소개해달라.
▶덴마크에서 에너지 전략·기후 분야에 관해서는 한 정부에서 내린 결정이 새 정부가 들어서도 완전히 바뀌지 않으리란 걸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는 민간의 투자 리스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제는 태양광·풍력 모두 가격이 떨어져서 더 이상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전에 덴마크 정부가 풍력 보조금을 지원하며 20년 이상 민간 부문이 장기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안정적 환경 덕분이라 생각한다. 이와 함께 한국과 마찬가지로 덴마크의 전력망은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데, 이 전력망 투자가 중요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에너지 시스템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비용을 누가 댈 것인가라 했을 때 결국은 전력망 사용자들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덴마크에서는 수소 생산을 위한 전해조를 만들 때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인 열을 활용해 지역 난방에 사용 하는데, 이렇게 전반적인 녹색전환의 비용을 낮추는 것도 한 방법이다. 투자의 대부분은 민간 부문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일부 부문에서는 여전히 보조금이 필요하다. 수소 생산·탄소포집저장(CCS) 등 아직 상업적으로 완전한 준비가 되지 않은 기술에는 공공측면에서 지원할 의향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더 이상 화석 연료에 의존한 경제를 가질 수 없고, 탄소 집약적 경제는 경쟁력을 잃게 될 거란 의미에서 탄소 가격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제를 유지한다면 미래에는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 풍력과 태양열에서 에너지를 얻는 경제, 비용 효율성이 높고 스마트 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경제가 가장 경쟁력있는 경제가 될 것이다.


-화석연료 전력 '제로' 및 최대 6GW의 그린수소 수전해 용량 확보 등 2030년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덴마크에 가장 큰 도전은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바로 규모 확대다. 덴마크는 더 많은 풍력 발전소를 설치해 덴마크가 소비하는 전력보다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전기의 일부를 수소로 전환해야 하며, 독일·네덜란드·벨기에에 이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도 안다. 각국이 전기 및 수소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교통 부문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따라서 충전 인프라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또 많은 가정 난방이 석유·가스 보일러를 히트펌프나 지역난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동시에 에너지 효율에 대한 투자도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가 아니라 이 모든 걸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우리가 직면한 문제다. 동시에 진행되면 노동 시장에 압력이 가해질 것이고, 숙련된 노동력이 부족해 해외에서 숙련 노동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따라서 가장 큰 문제는 규모 확대다. 전반적으로는 해상풍력의 규모와 관련된 인프라를 키우고 이 모든 것들을 다 같이 해야 된다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한다.

'녹색전환' 막힌 길 열 해법…"한국이 가장 잘 할 수 있어"
-독일과 수소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합의했다. 에너지섬 건설도 계획 중이다. 에너지 전환과 관련한 주변국과의 협력이 활발하다.
▶전략적 차원에서 덴마크는 유럽이 성공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유럽이 안전해야 덴마크도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경쟁력은 녹색 전환에 관한 것인 동시에 안보에 관한 것이다. 덴마크는 바람이 많이 부는 북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잉여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방대한 해저도 있다. 덴마크가 쓰고도 남는 많은 자원들을 주변국에 공급 할 수 있다면 이들의 기후변화 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에 대해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투자가 많이 필요하다. 특히 수소 인프라가 한 예다. 독일 정부와 양국간 인프라를 구축해야한다는 합의를 했다. 덴마크는 (그린수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여력이 있고, 독일은 워낙 수요가 많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진다. 현재는 비용 및 혜택을 어떻게 분담 할 지 독일과 협상 중이다. 해상풍력의 경우에도 (해상풍력으로 만든 전기를) 다른 국가에 공급하려면 에너지 섬과 같은 새로운 인프라가 필요하다. 해상에서 만든 수소를 공급하기 위한 인프라도 필요하다. 이런 여러 투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 간 협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말 새로운 항공세 도입을 발표했다. 탄소세에 대한 저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보인다.
▶덴마크는 에너지 세금을 사용하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정용 전기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 중 한 곳일 것이다. 따라서 덴마크 국민과 기업에게 이러한 세금 수단을 사용하는 건 새로운 게 아니다.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데에 대한 대중의 동의도 분명하다. 물론 매우 높은 수준의 세금을 도입하면 저항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수준에서 시작해 세금이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도록 하고, 왜 세금이 필요한지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정부는 세금을 부과할 때 이런 종류의 경제 계획이 빈곤층에 부담이 된다는 걸 알고, 따라서 얻은 세수의 일부를 이들에게 돌려준다. 항공세의 경우, 수입의 약 50%를 업계에 환원해 친환경 연료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친환경 수소를 기반으로 한 연료 개발 지원 방법을 찾는 게 세금의 주된 목적이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탄소포집저장, 즉 CCS 프로젝트 입찰을 실시했다.
▶에너지 부문에서만 15년 동안 일 해왔는데, 15년 전 CCS는 사실 쉽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 그러나 이제는 CCS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는 게 확실하다.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탄소를 포집해야 한다. 여전히 정유·시멘트 같이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들이 있기 때문에 녹색 연료로의 전환을 할 수 없다면 결국 탄소를 포집하는 것만이 방법이다. 현재 북해에는 덴마크 및 주변 국가에서 탄소를 저장할 준비가 된 회사들이 있고, 이 기업들은 육상 저장소를 가질 수 있는 지도 살펴보고 있다. 따라서 탄소 포집 및 저장에 드는 비용이 빠르게 떨어질 거라 예상한다. 더이상 CCS가 필요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다. 모든 선진국들이 이 옵션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덴마크도 이 분야에서 선두주자가 되길 바라며 많은 투자를 할 것이다.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벤션센터 3층 다이아몬드 홀에서 열린 ‘한-덴마크 수소 R&D 심포지엄/사진제공=주한덴마크대사관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벤션센터 3층 다이아몬드 홀에서 열린 ‘한-덴마크 수소 R&D 심포지엄/사진제공=주한덴마크대사관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발효하자 유럽연합(EU)도 약 1년 전 넷제로산업법(NZIA) 등을 도입했다.
▶IRA로 미국과 경쟁하는 구도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유럽은 러시아의 화석 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넷제로산업법(같은 유인책) 외에 새로운 많은 규제들도 도입했다. 내연기관차 금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EU 배출권거래제(ETS)를 개정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했다. 유럽이 녹색전환에 강한 의지를 갖고 나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작년에 새로 도입된 넷제로산업법이 유럽에서의 투자를 촉진하기를 기대하고,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덴마크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과 함께 투자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녹색 전환에 필요한 기술의 비용이 낮아지고 산업 차원에서의 성장도 가능할 수 있다. 녹색전환이란 게 너무나 크고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아시아든 유럽이든 미국이든 어떤 한 지역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곳에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이 IRA로 하려고 하는 게 경쟁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기술 비용이 낮아지면 결국 유럽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세계적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병목 등으로 인해 녹색전환에 대한 회의감도 일고 있다.
▶모든 선진국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동시에 변화시켜야 할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 부문에 큰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민간이 준비되면 정말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간이 새로운 공장·전체 밸류체인 등에 투자하는 데 필요한 건 신뢰할 수 있는 예측력(foresight)이다. 덴마크는 지금 2030년 해상 풍력 입찰절차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2033년부터 2045년까지의 계획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민간 부문이 미래에 대한 명확성과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예를 들어 탄소세 도입과 관련해서, 도입에 대한 결정을 지금 내려도 적용이 가까운 미래에 된다면 기업들은 투자할 수 있다. 또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에 대한 최종 시점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높은 자본비용과 공급망 압력으로 인한 단기적 병목현상과 불확실성에 대한 근본적 해답은 민간에 더 커다란 예측력과 명확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혁신 기술과 자본 조달 능력, 효율적인 밸류체인을 만드는 데 대해서는 민간 부문이 매우 훌륭하다. 특히 혁신을 가져와 산업 규모로 확장하고 효율적인 공급망을 만드는 건 한국 기업들이 정말 잘 하는 부분이고 한국 기업들이 세계에 제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덴마크와 한국 모두 정치적 차원에서는, 기업들이 투자하고 필요한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 예측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가드 장관은
△2022.12~현재 덴마크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 장관 △2009~2022 그린파워덴마크(옛 덴마크 에너지연합) CEO, △2007~2009 그린파워덴마크 부사장 △2004~2007 덴마크 산업연합, 환경 및 에너지 부문 책임 △2000~2004 덴마크 산업기업금융부 부서장 △덴마크 로스킬데 대학교 행정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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