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가 공세? 자신 있다"…움츠렸던 석화업계, 기지개 켤 '한 수'

머니투데이 울산=최경민 기자, 강주헌 기자 2024.03.08 09:00
글자크기

[MT리포트]슈퍼섬유가 미래다 (下)

편집자주 석유화학 업계가 위기다. 중국의 저가제품 물량공세로 범용 제품은 하루가 다르게 경쟁력을 잃고 있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이른바 '슈퍼섬유'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투자를 거듭하고 있다.

불황에도 "1000억 투자"…슈퍼섬유에 미래 건 '이 회사'의 자신감
애경케미칼 TPC 데모 플랜트 외관애경케미칼 TPC 데모 플랜트 외관


"이곳에 회사의 미래가 달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가는 시발점이 TPC인 것이죠."

지난달 23일 애경케미칼 울산공장에서 만난 이종화 공장장(전무)은 최근 석유화학 업계가 불황에 빠진 속에서도 2025년까지 1000억원 수준의 돈을 투자해 TPC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TPC는 강철보다 가볍고 단단한데다 난연성까지 갖춰 '슈퍼섬유'로 불리는 아라미드의 주 원료다. 아라미드 중합체 1㎏을 만들 때 850g이 필요할 정도로 중요한 소재다.



애경케미칼은 국내 최초로 2026년 1월부터 TPC를 양산할 계획인데, 여기에 회사의 미래를 건 셈이다. 이 전무는 최근 중국의 물량 공세에 국내 석화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설명하면서도, "생존을 위한 변화"를 줄곧 강조했다.

TPC는 회심의 한 수에 가깝다. 애경케미칼은 2010년대 중반부터 TPC 관련 연구를 시작해 독자적 기술을 만들고, 2020년에는 울산공장에서 데모 플랜트를 가동했다. 중국이나 인도 기업과 달리 오염 배출이 없는 공법을 개발하고 실증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방식은 '열(熱) 공법'에 가까워서, 이산화황(SO2)과 염화수소(HCL)와 같은 유해 가스가 발생했다. 애경케미칼은 '광(光) 공법'을 통해 이산화황 가스 발생을 억제하면서도, 동시에 염화수소를 포집해 염산을 만들었다.



애경케미칼 울산공장에 위치한 TPC 데모 플랜트 앞에서 이같은 공법의 원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원료가 들어오는 파이프, 염소가스가 나가는 파이프 등이 발광다이오드(LED) 광램프가 설치된 탱크를 중심으로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데모 플랜트라지만 높이는 14미터 수준으로 육중했다. 울산공장 제2부지에 들어설 TPC 공장의 파이프나 탱크 등은 데모 플랜트의 20배 수준으로 커질 것이라 한다. 직접 가본 제2부지는 아직까진 공터와 마찬가지지만, 향후 육중한 설비가 들어설 것이란 점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광활했다.

애경케미칼 TPC 데모 플랜트 외관애경케미칼 TPC 데모 플랜트 외관
애경케미칼 신소재연구팀의 이호창 책임은 "내부 검토를 했을 때 가격적으로 중국이나 인도 기업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며 "2026년쯤 국내에서 아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TPC 양이 약 2만톤쯤 될 것 같은데, 그 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승산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일단 국내 최초의 TPC 공급이 이뤄지기 때문에 효성첨단소재, 코오롱인더스트리, 태광산업 등 아라미드 제조 기업들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라미드는 전기차용 타이어코드, 광케이블, 항공 및 우주 소재 등으로 각광받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아라미드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2036년까지 국내 9.1%, 해외 4.1%에 달할 전망이다.


애경케미칼은 이 슈퍼섬유 밸류체인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한다는 계획이다. 이 전무는 "지구 온난화가 화두인 상황에서, 에너지를 적게 쓰려면 무조건 가볍고 튼튼한 소재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 소재 중 하나가 아라미드로, 용도는 계속 개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경케미칼 TPC 제품애경케미칼 TPC 제품
'다이어트' 필요한 전기차, 특효약은 가볍고 튼튼한 '슈퍼섬유'
국내 타이어3사 전기차타이어 사업현황/그래픽=이지혜국내 타이어3사 전기차타이어 사업현황/그래픽=이지혜
슈퍼섬유는 전기차를 타고 미래의 대세 소재가 될 수 있을까. 더 가볍고 튼튼한 소재를 필요로 하는 전기차 특성상 아라미드와 탄소섬유를 주요 소재로 채택하는 경우가 보다 많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타이어 시장은 2030년까지 향후 7년간 연평균 1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른 일종의 낙수효과다. 전기차의 경우 최근의 수요 증가세 둔화에도 불구하고 매년 20% 내외 수준의 시장 확대가 예상된다.

국내 타이어 3사(한국타이어·금호타이어·넥센타이어)는 전기차 시장에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2022년 5월 세계 최초 풀라인 전기차 타이어 브랜드 '아이온'을 출시했다. 전기차 타이어 비중을 2021년 5%에서 지난해 15%로 늘렸고, 올해는 25%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금호타이어도 전기차 전용 브랜드 '이노브'를 내놓고 지난해 9% 수준이었던 전기차 타이어 비중을 올해 16% 이상으로 잡았다. 넥센타이어는 현재 '로디안 GTX EV'와 '엔페라 스포츠 EV' 등 전기차 타이어를 BMW·현대차·기아·KG모빌리티 등에 공급하고 있다.

전기차 타이어의 경우 타이어코드에 슈퍼섬유로 불리는 아라미드를 적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타이어코드는 타이어의 형태를 유지하고, 주행 시 타이어에 부여되는 하중과 충격을 견디는 역할을 하는 보강재다. 타이어의 내구성능, 주행성을 높이고 편안한 승차감을 부여한다. 주로 나일론 소재로 만들던 타이어코드에 아라미드를 혼용하는 방식이다. 가벼우면서도 강철보다 5배 강도가 세고, 500도에 달하는 고열에서도 견디는 아라미드의 장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 때문에 기존 내연기관 차량 대비 수백㎏ 더 무겁고, 토크 역시 높아 치고 나가는 가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더 견고한 타이어코드가 필요하다. 아라미드 적용 전기차 타이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다. 실제 한국타이어는 '아이온 에보'와 '아이온 에보 SUV' 2종 등에, 넥센타이어는 '엔페라 스포츠' 등에 아라미드를 쓴다. 금호타이어 역시 일부 제품에 아라미드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의 확대는 탄소섬유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탄소섬유는 아라미드처럼 가볍고, 단단하면서, 열에 강한 소재다. 아라미드보다 탄성이 좋아 구조재로 주로 사용되는데, 자동차 외장재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실제 F1 머신이나 일부 슈퍼카들은 이미 탄소섬유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소전기차의 경우 탄소섬유가 필수적이다. 수소연료탱크 등 고압용기 제작에 탄소섬유가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탄소섬유의 경우 아직까진 비싼 가격으로 인해 일반 전기차용 소재로 많이 쓰이고 있진 않지만, 미래 시장 상황에 따라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된다. 탄소섬유 사업을 하는 효성첨단소재 관계자는 "무게 절감이 중요한 전기차의 경우 탄소섬유가 경량화 최적 소재로 활용될 여지가 높다"며 "탄소섬유 적용을 위하여 다양한 가공 방법이 연구·개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