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그릇에 소주 붓더니 "마셔"…스무살 죽음 부른 '사발주' 악습[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류원혜 기자 2024.03.0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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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는 사진./사진=게티이미지뱅크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는 사진./사진=게티이미지뱅크


28년 전인 1996년 3월 8일. 충남대학교 근처 식당에서 신입생 환영회가 열렸다. 자리에 참석한 신입생 A군은 술을 마신 뒤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 사망했다. 구토하다 기도가 막혀 질식한 것이다.

신입생 환영회 공포의 '사발주'…선배가 먼저 시범
당시 환영회가 시작되자 학과 학생회장이던 3학년 B씨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신입생들에게 술을 마시라고 강요했다. 고학년 선배들은 "큰 술잔이 필요하다"며 식당에 냉면 그릇까지 요구했다.



이들은 냉면 그릇에 소주를 가득 부어 이른바 '사발주'를 만들었다. 선배 C씨는 직접 시범을 보인다며 사발주를 한 번에 마시고 비워냈다. 신입생들은 선배가 먼저 사발주를 마신 데다, 학과 전통이라고 하니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A군도 강제로 냉면 그릇에 담긴 술을 마셔야 했다. 그는 간신히 술을 마신 뒤 그릇을 비워냈다. 대학에 갓 입학해 음주 경험이 적은 신입생들에게 사발주는 버거웠다.



잠시 뒤 A군은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구토하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잃었다.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술을 마셔 체내에 분해되지 못한 알코올로 인해 혈중알코올농도가 급상승한 것이다.

응급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술자리에 함께 있던 친구들은 A군을 병원 대신 근처 여관으로 데려갔고, A군은 결국 토사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해 사망했다.

다른 신입생들도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았다. 환영회에서는 약 40명이 1.8ℓ 소주 12병과 360㎖ 소주 1병을 냉면 그릇에 부어 돌려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술 강권 행위에 '대학 문화' 주장한 선배들, 유죄
선후배 관계를 돈독하게 하겠다는 이유로 신입생들의 주량이나 의사를 무시하고 치사량의 술을 마시게 한 선배들은 상해치사와 상해치사 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법정에서 신입생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행위는 '대학 문화'라고 주장했다.

1998년 대전지법은 환영회를 주최하고도 혼수상태에 빠진 A군에 대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B씨의 혐의를 인정해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심에선 사건 당시 정황 등을 참작해 벌금 100만원으로 감형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C씨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해당 사건으로 대학가의 술 강요 문화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이 사건은 음주 치사 혐의가 유죄로 판단된 첫 판례로 남았고, 술을 강권해 인명사고가 발생해도 전통이자 문화라는 이유로 넘어갔던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A군에게 사발주를 마시게 한 선배들은 유족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해 위자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학과장 교수와 총장 등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들은 형사처벌을 피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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