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가 '패스트 라이브즈' 남주를?…셀린 송 감독 밝힌 비화 [인터뷰]

머니투데이 김나라 기자 ize 기자 2024.03.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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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으로 오스카 작품상 후보 오르며 '기생충' 이어 K-콘텐츠 위상 증명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사진=CJ ENM'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사진=CJ ENM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이 봉준호 감독 '기생충'에 이어 미국 오스카상(아카데미) 수상을 노리며 K-영화 열풍에 힘을 보탰다.

6일 개봉하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는 오스카상 4관왕 '기생충'을 배출한 한국의 메이저 투자배급사 CJ ENM이 브래드 피트의 A24와 공동으로 투자배급한 작품이다. 뉴욕에서 극작가로 활동한 셀린 송 감독의 첫 장편 연출 데뷔작으로 그가 각본도 맡았다. 셀린 송 감독은 '칸의 남자' 송강호를 발굴한 영화 '넘버3'(1997)를 연출한 송능한 감독의 딸로 유명하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스토리를 그린다.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담아냈다.

특히 셀린 송 감독은 '패스트 라이브즈'가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경이로운 성과를 거뒀다. 영국 아카데미 3개 부문 등 전 세계 유수 시상식에서 210개 노미네이트, 75관왕 달성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오는 10일(현지시각) 열리는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작품상, 각본상 2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플라워 킬링 문' 마틴 스코시지 감독 등 레전드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K-파워'를 제대로 보여준 셀린 송 감독이다. 차기작도 A24와 다시 한번 의기투합,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 에반스까지 캐스팅한 영화 '머티리얼리스트'(Materialist)를 준비 중이다.



셀린 송 감독은 최근 아이즈(IZE)와의 인터뷰에서 "오스카상을 물론 받으면 좋겠지만 충분히 행복하다"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은 셀린 송 감독과 일문일답.

Q. 한국에 온 소감은 어떠한가.


"미국 오스카상 노미네이트 때문에 너무 짧게 한국에 오게 되어 아쉽다. '패스트 라이브즈' 한국 개봉 후 곧장 다시 미국으로 가야 한다."

Q. 극작가 출신인데 영화 연출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제가 연극을 10년 넘게 했다. 연극을 한다는 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본다든지, 별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영화를 처음 만들 때도 그랬다. 어느 날 밤에 영감을 얻어서, '해봐야지' 싶었던 거다. 한국에서 온 제 어린 시절 친구와, 저의 미국인 남편과 셋이 만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 사이에 앉아 제가 언어를 통역하며 '우리가 굉장히 보통 사람이지만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라는 감정을 느꼈다. 제가 두 가지 언어, 문화 사이를 넘나든 게 아니고 자신 안에 있는 역사, 아이덴티티(identity, 정체성)를 넘나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은 내가 과거, 현재, 미래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구나 싶은 감정이 남아 그때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장기하가  '패스트 라이브즈'  남주를?…셀린 송 감독 밝힌 비화 [인터뷰]
Q. 왜 꼭 영화여야 했을까.

"'패스트 라이브즈'의 이야기 자체가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영화의 빌런은 '24년'이라는 시간과 '태평양'이라고 본다. '사람'이라는 빌런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소와 시간이 중요했다. 근데 연극 같은 경우는 장소와 시간이 '여기가 화성이다' 하면 화성이 된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기에, 장소와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의 냄새, 빛, 소리가 진짜 달라야 했다. 특히 중요한 건 어른과 어린아이의 공존, 얼굴이 함께 교차해야 했다. 그거 때문에 영화로 만들어야 했는데 저를 감독 시켜줄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Q. 영화감독으로서 부친 송능한 감독의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도 두 분 다 프리랜서 아티스트로 일을 하셔서 제 인생에 자연스럽게 (부모의 영향이) 배어있다. 내가 평생 봐온 거라, '이렇게 해라' 하지 않으셔도 부모님이기 때문에 그냥 삶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거다."

Q. 캐나다 이민은 어떤 계기로 가게 된 것이냐.

"아버지의 영화 '넘버3'가 나오고 캐나다 밴쿠버 필름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서, 당시 가족여행 겸 다 같이 갔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이 이민의 꿈을 꾸게 된 거다. 곧바로 이민 신청을 냈는데 가기까지는 한 3년 정도 걸렸다. 그리고 당시 제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수학 경시대회 모의고사 점수를 잘 받다가 67점을 받았었다. 어머니가 '이러다가 한국에선 대학도 못 가겠다' 그러실 정도였는데, 제게도 쇼킹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마 제 교육 때문에 이민 결정을 하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웃음)."

장기하가  '패스트 라이브즈'  남주를?…셀린 송 감독 밝힌 비화 [인터뷰]
Q. '패스트 라이브즈'의 성과는 어느 정도 예상했느냐.

"이 영화는 어떤 것도 예상한 게 아니다. 그저 내가 느낀 이 감정을 너도 느껴본 적이 있느냐에 관해 말하는 영화인 것 같다. 실제로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시고 뉴요커들도 그렇지만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나도 그렇게 인연을 느껴봤다' 하시더라. 그러면서 이 성과라고 하는 게 이루어진 거 같다. 아버지도 그냥 많이 자랑스러워하신다."

Q. 한국적인 정서 '인연'을 글로벌 관객에게도 닿을 수 있도록 녹여낸 점이 특히 호평을 받았는데. 어떻게 구상하였나.

"사실 이 영화는 미스터리 영화다. '서로에게 누구인가', 첫 신에서 질문으로 나오는데 대답 자체가 더 미스터리하다고 생각한다. 제 생각엔 해성과 나영의 관계가 전 연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렸고, 첫사랑이라고 하기에도, 친구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서로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고. 이런 관계를 어떻게 표현하냐 생각했을 때 '인연'이라고 본다. 결국 '패스트 라이브즈'는 '인연'을 알려주는 영화인데, 제가 생각하기에 인연은 이 세상을 살아봤고 나이를 먹어봤다면 어디에서든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부분이다. 한국의 '인연'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이 안 되고 다른 나라엔 그 단어가 없을 뿐이지 외국인에게 '인연'에 대해 알려주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무조건 이해를 하더라."

Q. 자전적 경험은 얼마나 반영된 것이냐.

"로맨스 부분은 다 허구다. 근데 우리 영화를 로맨스로 푼다 생각하며 만들지는 않았다. 이건 인생,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로의 관계에 꼭 연애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사랑과 연애도 엄연히 다르고. 연애는 당연히 연인이라는 존재가 있지만, 사랑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과 어쩌다 말을 섞게 되었는데 그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로맨스라고 표현한 건 우리 인생 자체에 관심이 있어서, 그 지점을 로맨스라고 얘기한 거다. 보통 말하는 로맨스 장르가 아니다. 유태오, 그레타 리와도 말했던 건 해성과 나영이 로맨스 영화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거였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그렇지 않나."

Q. 마틴 스코시지 감독은 "최근에 본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패스트 라이브즈'를 꼽았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으로부터 "섬세하게 아름다운 영화"라는 극찬을 들었다. 세계적 거장 감독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는데.

"영국 아카데미 등 이런저런 시상식들을 다니면서 거장 감독님들과 대기실을 같이 썼다. 그때 내 영화를 봤다고, 좋았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 그러면서 놀란 감독님은 중요한 건 영화 자체라고, 관객을 위해서 어떤 영화를 만들었냐, 중요한 건 그거밖에 없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Q. 할리우드에서 달라진 K-문화의 위상을 체감하는지도 궁금하다.

"항상 말하지만 할리우드가 외국어에 관대해진 그 터닝 포인트가 '기생충'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패스트 라이브즈'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 '기생충'이 개봉되기 전이었는데, 그때는 언제나 '두 가지 언어를 쓰면 자막 전달이 잘 될까, 괜찮을까'라는 말을 들었다. 근데 '기생충'이 나온 뒤엔 대화가 정말 다르다. 아무도 자막에 대한 걱정을 않더라. 마음이 열린 걸 직접 느꼈다."

Q. 일부 장면을 한국에서 찍으며 느낀 소회와, 언어적으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한국에서 촬영을 진행한 게 특별히 감명 깊었다. 조명감독님은 학생 시절에 저희 아빠 강의를 들었다고 하더라. 같이 일한 분들이 저희 아버지를 당연히 존경하고 좋아하고, 강의를 들어봤다든지 대부분 그런 분들이셨다. 이런 분들을 만날 일이 없으니 한국에서 만나게 되어 무척 좋았다. 언어적인 부분은 제약이라고 느끼지 않고, 비밀무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감독과 배우들끼리 비밀을 가질 수 있어서. 미국에서 배우들과 대화할 때는 미국 크루들이 못 알아듣게 한국말로, 한국에서 배우들과 대화할 때는 영어로 말했다. 물론 한국 크루들이 영어를 잘하시긴 하지만 다 이해할 수는 없으니 저한테는 좋은 경험이었다. 유일하게 어려웠던 점은, 미국 크루를 한국에 데려와서 한국 스태프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그때 언어의 해석은 되지만 문화의 해석은 어려웠다고 느꼈다."

장기하가  '패스트 라이브즈'  남주를?…셀린 송 감독 밝힌 비화 [인터뷰]
Q. 유태오를 남자주인공으로 낙점한 이유는 무엇인가.

"30명쯤 오디션 테이프를 받았고, 콜백 하여 이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는데 거의 마지막쯤에 들어온 배우가 유태오였다. 유태오 오디션을 3시간 30분 정도 봤는데 그동안 제가 생각한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이 사람이 나랑 벼랑 끝까지 갈 수 있는 배우인가가 중요해서, 욕심이 생겨 계속하다 보니까 시간이 길어지게 된 거다. 유태오가 해성이라고 본 이유는 그의 안에 어린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있다고 느껴서다. '패스트 라이브즈'에선 그게 가장 중요했으니까. 유태오가 오자마자 저한테 '안녕하세요' 하고 웃는데 어린애처럼 보였다. 그때 유태오 나이가 마흔 살이었는데도 그랬다(웃음). 유태오의 얼굴이 참 솔직하다 느꼈다. 마치 타임스퀘어 전광판 같은 얼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Q. 가수 장기하가 해성의 친구로 깜짝 등장했는데. 캐스팅 비하인드를 들려달라.

"사실 장기하가 해성 역할로 오디션에 지원했다. 근데 유태오가 하게 되면서 떨어지지 않았나. 오디션을 하며 장기하와 많이 친해졌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주인공은 아니지만 친구 역할을 할 수 있겠냐고 제안을 드렸다. 친구라도 좋다고 하셔서 나오게 된 거다. 친구 역 중에서 연기를 진짜 잘해주셨다. 외국의 카메라 팀도 저 배우 누구냐고 물었었다. 제가 '진짜 유명한 가수'라고 설명하니까 '오 마이 갓!(Oh My God!)' 하고 놀라더라."

Q. 이제 대망의 오스카상 시상식을 앞두고 있는데 수상을 기대하고 있는가.

"하하. 받으면 좋겠죠. 근데 데뷔작으로 노미네이트된 것만으로 진짜 영광이다.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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