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 자산가 '살인청부'한 운동권출신 시의원…5억 뇌물 때문? [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전형주 기자 2024.03.0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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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팽모씨의 범행 당시 CCTV./사진=머니투데이 DB팽모씨의 범행 당시 CCTV./사진=머니투데이 DB


2014년 3월3일 새벽 3시. 서울 내발산동의 한 건물에서 중년 남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숨진 남성은 이 건물의 주인으로, 강서구 일대에 빌딩과 20여층짜리 호텔, 4층짜리 웨딩홀, 다세대 주택 등을 가진 재력가였다.

시체에서는 둔기에 맞은 듯한 외상이 발견됐다. 경찰은 원한 관계에 따른 범죄로 추정했지만, 용의자를 추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피해자가 생전 여러 송사에 휘말리는 등 원한 관계가 많았던 탓이다.



일각에서는 수사가 장기화될 전망도 나왔다.

보름만에 특정한 용의자, 中으로 사라졌다
재력가 청부살해 사건과 관련해 살인 혐의로 구속된 팽모씨. /사진=뉴스1재력가 청부살해 사건과 관련해 살인 혐의로 구속된 팽모씨. /사진=뉴스1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하고 수사에 나선 것은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나서였다. 그만큼 철저하게 계획된 살인이었다. 범인은 현장에 지문조차 남기지 않았다. 다만 주변 가게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가 미제로 남을 뻔한 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줬다.

CCTV에는 복면을 쓰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30~40대 남성이 사건 전 범행 현장을 기웃대는 모습, 범행 직후 택시를 타고 도주한 모습이 담겼다. 경찰은 택시에 부착된 GPS 장치를 토대로 용의자의 도주 경로를 파악했다. 아울러 그의 신원을 팽모씨(당시 44세)로 특정했다.

팽씨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중국 칭다오(靑島)로 도주했다. 이에 경찰은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요청한 끝에 그해 5월22일 팽씨를 칭다오에서 검거했다. 중국 정부는 6월24일 팽씨를 한국으로 인도했다.


다만 경찰은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팽씨가 살인을 저지른 걸 이상하게 여겼다. 팽씨의 통신자료, 금융계좌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결과 팽씨가 10년지기 친구인 서울시의원 김형식씨(당시 44세)의 부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밝혀냈다.

팽씨도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김씨에게 사주를 받은 사실을 털어놨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형식이가 수도 없이 압박했다. 의리를 지키고 빚을 갚기 위해 형식이가 시키는 대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밝혔다.

시의원은 왜 살인 청부를 했을까
김형식 서울시의원. /사진=뉴스1김형식 서울시의원. /사진=뉴스1
김씨는 수도권의 한 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운동권 계열 학생회를 이끌며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기남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김씨는 지역 사회사업을 하다 피해자와 연락이 닿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를 치르면서 생활이 궁핍해진 그는 피해자가 보유한 강서구 발산역 일대 땅을 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해주겠다고 약속하고, 2010년 10월~2011년 12월 네 차례에 걸쳐 5억2000만원어치의 금품과 수천만원어치의 접대를 받았다.

김씨는 또 2012년 피해자가 운영하는 웨딩홀 근처에 경쟁업체가 생기는 것을 막아주는 대가로 4000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하지만 용도 변경이 지체되면서 김씨와 피해자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피해자는 김씨의 금품수수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고, 이에 정치 생명이 끝날 것을 우려한 김씨는 친구 팽씨를 이용해 범행을 계획했다.

김씨는 팽씨에게 "피해자를 죽이고 차용증을 가져오면 그동안 (네가 나에게) 빌렸던 돈 7000만원을 변제해주고, 중국에서 가족과 편히 살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또 팽씨의 범행을 부추기며 범행 비용 1300만원을 지원했고, 범행에 쓰일 손도끼와 전기충격기도 지원했다.

김씨 "팽씨 단독범행" 혐의 부인했지만…

재력가 살인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씨가 선고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남부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2014.10.27/뉴스1재력가 살인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씨가 선고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남부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2014.10.27/뉴스1
체포된 김씨는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줄곧 "팽씨의 단독범행이고, 나는 피해자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와 팽씨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주고받은 쪽지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어느 정도 매듭이 됐다.

쪽지에는 김씨가 팽씨에게 일체의 진술을 거부해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 담겼다. 반면 팽씨는 김씨에게 "내가 중국 공안에 잡혀 구류소에 있을 때 네 첫마디가 탈출과 자살이었다. 통화하면서도 한 번도 내 걱정해준 적 없다"며 범행을 자백하고 선처를 구할 것을 요청했다.

김씨는 1심에서 살인청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모든 범죄를 친구에게 뒤집어씌우려 한 정황이 인정돼 가중처벌됐다는 게 판결문의 요지다. 팽씨도 청부살해라는 점을 감안해 보통살인보다 가중처벌된 2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둘 다 항소를 제기했지만 2심에서 팽씨는 사건에 협력하고 반성하는 기미가 있다며 5년이 줄어든 20년을 받았고 김씨는 그대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김씨는 이에 불복하고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 2015년 8월 19일 상고를 기각해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김씨는 2016년 뇌물죄와 정치자금법 위반죄 등으로도 징역 3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그해 11월 김씨에게 징역 3년 및 벌금 4000만원, 추징금 5억8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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