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에서 국민기업 일궈낸 中기업가… 기업가치 10조에도 '비상장'

머니투데이 박수현 기자 2024.03.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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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자오 차이나]

편집자주 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서로를 의식하며 경쟁하고 때로는 의존하는 관계가 수십세기 이어져 왔지만, 한국 투자자들에게 아직도 중국 시장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G2 국가로 성장한 기회의 땅. 중국에서 챙겨봐야 할 기업과 이슈를 머니투데이의 '자오자오 차이나' 시리즈에서 찾아드립니다.

중국 와하하 그룹, 1987년 설립 이후 35년간 누적 실적. /그래픽=윤선정중국 와하하 그룹, 1987년 설립 이후 35년간 누적 실적. /그래픽=윤선정


빈손으로 시작해 국민 식음료 기업을 일궈낸 쭝칭허우 와하하그룹 회장이 지난달 25일 세상을 떠났다. 중국 언론은 쭝 회장이 별세하자 와하하 본사가 있었던 중국 저장성 항저우 칭타이가 160호로 추모객이 모여들었다고 보도했다. '쭝칭허우 동지를 추억하며' 라는 작은 현수막이 걸린 허름한 6층 건물 앞으로 국화 꽃다발과 화환이 놓였다. 와하하 대표 제품인 생수나 요구르트를 갖다둔 사람도 다수였다.

추모객이 모여든 건물은 쭝 회장이 와하하 그룹의 꿈을 키웠던 곳이었다. 1987년 4월, 당시 42세였던 쭝 회장은 교판기업 위탁 판매부에서 일하며 삼륜차를 타고 사이다, 아이스크림, 문구류 등을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해 7월에는 저금과 은행 대출금을 모아 어린이 영양식품 공장을 설립했다. 어린이 영양 음료가 큰 인기를 끌면서 첫해에만 22만2000위안(약 4108만원)의 이익을 냈다.



와하하 그룹의 규모는 중국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불어났다. 쭝 회장은 1991년 와하하 그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회사를 그룹사로 전환했다. 같은 해에 정부의 도움으로 6만 제곱미터(㎡) 면적에 직원만 2000명이 넘는 항저우 통조림 공장을 8000만위안(약 148억원)에 인수했다. 첫 3개월간 적자를 냈던 통조림 공장은 곧이어 흑자로 돌아섰다. 이듬해 영업이익은 7000만위안(약 129억원)에 달했다.

중국 개혁개방 1세대 민간기업인 와하하는 곧이어 국민 기업의 대명사가 됐다. 2003년에는 매출이 100억위안(약 1조8505억원)을 넘어서 세계 5위 음료 생산 기업이 됐다. 2012년엔 매출 500억 클럽에 가입, 2013년에는 매출 782억위안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 덕분에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쭝 회장은 세 차례나 중국 본토 최고의 갑부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에는 매출 1000억위안을 목표로 내세웠다.



와하하 홈페이지에 따르면 누적 35년간 매출은 8601억위안(약 159조926억원)에 달한다. 납부한 세금만 742억위안(약 13조7218억원)에 이른다. 와하하는 중국 내 29개 성, 시, 자치구에 81개 생산기지와 187개 자회사를 만들었고 3만명 이상의 직원을 뒀다. 생수, 차·탄산·과일·커피·단백질·식물성 음료, 유제품, 의료 및 건강식품 등 10가지 이상의 범주에서 200가지 이상의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성장세가 계속되지는 않았다. 농부산천 등 경쟁사에 밀리면서 한계에 직면했다는 평도 나왔다. 중국의 부자연구소인 후룬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와하하그룹의 2020년 기업가치는 600억위안(약 11조1030억원)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기업가치가 540억위안(약 9조9927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업가치가 3년 사이 60억위안(약 1조1103억원) 쪼그라든 셈이다.

쭝칭허우 와하하그룹 창업주(오른쪽)과 쭝푸리 와하하그룹 부회장. /사진=뉴스1쭝칭허우 와하하그룹 창업주(오른쪽)과 쭝푸리 와하하그룹 부회장. /사진=뉴스1
와하하 그룹은 기업가치가 10조원에 이르지만 비상장 기업이다. 과거 양이칭 저장상업박물관 관장은 중국 펑파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와하하그룹의 기업 경영 모델을 '4부(不)'로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대출을 받지 않고, 상장하지 않고,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고, 부총재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와하하 그룹은 부동산·금융투자·IT(정보기술)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쭝 회장은 상장에 대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쭝 회장은 생전에 중국 관영 매체 CCTV의 프로그램 '대화'에 출연해 상장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돈이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 있다면 상장도 검토해보겠지만 상장하면 주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고, 기업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자금만 조달하고, 주주가 수익을 나누지도 않기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와하하 그룹을 이끌었던 쭝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경영권은 딸인 쭝푸리 부회장에게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미국 대학에서 국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중국으로 돌아와 이듬해부터 와하하 그룹에서 근무하던 쭝 부회장은 2021년 12월부터 그룹 2인자 겸 총책임자로 임명돼 경영에 참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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