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포퓰리즘이 만든 15조 적자, 미래 '수소'먹거리까지 삼켰다

머니투데이 김훈남 기자 2024.03.0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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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의 한 주택가에 도시가스 계량기가 설치되어 있다.서울 관악구의 한 주택가에 도시가스 계량기가 설치되어 있다.


한국가스공사 (44,300원 ▲1,300 +3.02%)가 수소충전소 기업 '수소에너지네트워크'(하이넷)에 대한 증자를 거부한 이유는 재무 상황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15조원 적자를 기록했을 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다.

경영의 문제는 아니다. 국제에너지 가격 상승에도 소비자 가격 인상을 미뤄온 탓에 가스공사의 누적적자가 불어났다. 그 결과 수소 산업에 투자할 여력이 사라졌다. 최근 몇년간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총선거 등을 치르면서 일상화된 '에너지 포퓰리즘'이 결국 미래 운송 수단인 수소 생태계 조성까지 가로막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3일 가스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가스공사의 민수용 도시가스 미수금은 13조110억원, 발전용 미수금은 1조9791억원 등 총 미수금은 15조7659억원이다. 1년 새 3조7452억원(31%) 증가했다. 미수금은 가스공사가 해외에서 가스를 도입한 후 소비자 판매 등으로 회수하지 못한 금액으로 사실상 가스공사의 영업이익(손실)에 해당하는 재무지표다.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최근 3년간 급증했다. 가스공사의 미수금 총액은 △2018년 4826억원 △2019년 1조2763억원 △2020년 1조2106억 원 △2021년 2조9298억원 등을 유지하다 2022년 12조207억원으로 1년새 4배 넘게 폭증했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이후 경기회복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국제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는데도 서민 부담과 물가 상승 억제를 이유로 소비자 가격을 눌러온 결과다.

한국가스공사 미수금 추이/그래픽=조수아한국가스공사 미수금 추이/그래픽=조수아
정부는 2022년 대선 이후 가스요금을 4차례(4·5·7·10월) 인상했지만 급등하는 국제원자재 가격을 따라가긴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초에는 동절기 이전 올렸던 난방요금이 한번에 체감되는 '난방비 대란'까지 벌어졌다.

여기에 물가상승 부담이 이어지자 정부는 지난해 5월 1차례 MJ(메가줄)당 1.04원 가스요금을 올리는 수준에서 타협했다. 가스공사가 2026년 누적적자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고 계산한 요금 인상분 10.4원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 결과 현재 가스공사의 원가회수율은 80% 수준으로 추산된다. 바꿔말해 가스 100원어치를 팔면 20원이 적자로 쌓이는 구조다.

정부여당이 "오는 4월 22대 총선까지 공공요금인상은 없다"고 못박은 만큼 1년 넘게 가스요금 동결은 불가피하다. 인위적인 요금 인상 억제로 가격의 수요조절기능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요금억제 → 에너지 소비량 증가 → 가스공사 재무상태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졌다.



가스공사가 하이넷 출자를 거부한 것 역시 에너지 포퓰리즘 부작용의 결과다. 가스공사는 2022년 미수금 급증으로 재무상태가 악화되자 △임금인상분 반납 △인력재배치 △비핵심자산매각 △프로구단 운영비 축소 등 15조4000억원대 자구안을 내놨다. 공사 전체가 조이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미래 에너지 '먹거리'인 수소에도 더이상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가스공사 측은 수소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공기업으로서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에 적극 부응하고자 수소사업을 추진 중"이라면서 "수소산업 전 분야에 걸쳐 기술수준 및 상용화 여건이 미성숙 상태임을 고려, 수소사업의 경영효율성 제고에 우선 집중하고자 한다"고 해명했다.

다만 탄소중립 목표달성을 위해 기존 석탄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무탄소에너지 비중을 키워야하는 상황에서 양대 에너지 공기업 중 하나인 가스공사의 수소산업 투자 중단은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아직 형성단계인 운송분야 수소시장이 빠르게 안착하기 위해선 가스공사가 해오던 공적 투자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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