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11시쯤 빌라 화재사진/사진=본인제공
5분 정도 지나고 소방차가 도착했지만 골목이 좁아 진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 경위는 소방차가 들어오는 시간마저 아깝게 느껴졌다. 겁먹을 겨를이 없었다. 모녀가 베란다에 갇혀있다는 신고가 계속 신경쓰였다. 이 경위는 장비도 없이 그대로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 경위는 당시를 회상하며 "몸이 먼저 반응했던 것 같아요"라고 밝혔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소방관들이 진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경위는 소방관을 도와 사다리를 펼치고 장비를 내렸다. 이 경위의 몸은 그을린 냄새로 가득했고 경찰 제복 점퍼는 불똥이 튀어 여러 군데 구멍이 난 상태였다.
노인 돕고 사람 구하는 '만능 슈퍼맨'...'아너 박스' 덕에 제복 걱정 없이 업무집중
서울 동작경찰서 신대방지구대 3팀 이강하 경위/사진=본인제공
경찰이 화재 현장도 가냐는 말에 이 경위는 "범인만 잡는게 아니다"며 "경찰관은 정해진 업무 영역이 따로 없는 만능 슈퍼맨"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경위는 투신을 시도하다 안테나에 걸린 사람을 잡아 구출한 적도 있고 길 잃은 노인을 돕기도 했다. 최근엔 지하철 역사 안에서 자해를 시도하는 한 학생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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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위는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아너 박스'(Honor box) 1호 경찰로 선정됐다. '아너 박스 제도'는 근무 중 위험 상황에 대처하다 경찰의 제복이나 장비가 훼손되면 소속 관서의 심의 절차만으로 즉시 경찰청(장비운영과)에서 무상으로 훼손 물품을 아너 박스에 넣어 소속 기관으로 전달하는 제도다.
이 경위는 "원래 연초에 주는 구매 포인트로 부족한 제복이나 장비를 구매해야 했다"며 "아너 박스 덕분에 의복 걱정 없이 본연의 임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화재현장에 들어가며 녹았던 장갑과 불타 훼손된 점퍼는 모두 새 것으로 교체했다"며 "남는 구매 포인트로는 의복이 부족한 신입들의 물품을 사 주거나 필요한 장비를 구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두 아들의 아버지'이자 '제복 입은 시민'...경찰들 이쁘게 봐 주셨으면
이강하 경위는 서울 동작경찰서 사당지구대에서 근무하다 얼마전 같은 관내 신대방지구대로 발령받았다/사진=오석진 기자
마지막으로 이 경위는 "경찰은 슈퍼맨이지만 제복만 벗으면 똑같은 시민이기도 하다"며 "도움을 주려 다가간 경찰들을 이쁘게 봐주시고 협조를 잘 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