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검사할 때 덜덜 떨던 행운이를 품에 꼭 안아준 할아버지./사진=남형도 기자
"행운아, 내일 또 올게."
86세 할아버지와 7살 진돗개. 가족도 없이 홀로 살던 이는 어느 날 모란시장에 갔고, 운명처럼 하얀 개가 마음에 들어왔다. 상자 안에서 최고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 처음 만난 게 2016년 12월 29일이었다. 행복하게 잘 살라고 행운이라 이름 지어주었다.
복지관서 챙겨준 고기로는, 수술비를 낼 수 없어서
낮게 잡아도 200만원이 넘는다고 했던 수술비. 기초생활수급자인 할아버지 형편엔 어림 없는 금액이었다. 일단 수술을 해야한다고, 비용은 모아보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병원 앞에서 아이처럼 울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고. 행운이는 해맑게 꼬릴 흔들었다./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녀석은 단짝 마음을 잘 알았다.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졸졸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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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수술한 뒤 할아버지는 돌연 떠날 수 있단 걸 알게 됐다. 행운이 홀로 남겨질 게 걱정됐다. 입양 보내려 했으나 하룻밤을 새우고 도저히 안 되어 포기했다. 자기만 바라보는 마음이 염려됐다.
행운이와 할아버지를 위해, 매주 무상으로 훈련을 시켜주었던 이규상 트레이너./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할아버지와 가까운 곳에서, 둘을 섬세하게 돌봐주었던 장신재 정글핌피, 핌피바이러스 대표. 임시보호를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고양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행복이./사진=이규상 트레이너
43분 만에 모인 수술비…여전히 그런 세상이라고
수술 후 배에 붕대를 감은 행운이./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면회 간 할아버지와, 반기는 행운이./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며칠 남지 않았다는 말에도 할아버지는 행운이 수술을 포기하셨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비용임을 아셨으니까요. '이렇게 아픈지도 모르고 내가 너무 미안해서, 아까 오는 길에 닭 한 마리라도 사와 삶아주려 하고 있었다'고요. 염치없지만 작은 마음 보태어주시면 잘 전달하겠습니다."
지난해 12월, 행운이 수술비를 모금하기 위해 댓글을 썼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글이 올라간 지 30분이 흘렀다. 장 대표가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다들 기다렸다는 듯 보내주고 계세요. 댓글 응원도 많고요. 금방 마감할 것 같습니다."
행운이와 할아버지를 응원하던 댓글들./사진=정글핌피 인스타그램 화면 캡쳐(@junglepimfy)
펑펑 흐르는 눈물에 글자 치는 것도 어렵단 사람, 차가워진 마음에 작은 불을 피웠단 사람, 할아버지와 행운이 여행비라도 주고 싶단 사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래도 다정함이 지탱하는 세상.
5일 만에 '퇴원'…할아버지 보며 절로 달려왔다
하루에 꼭 두 번씩, 밤늦게까지 행운이를 보러 갔었던 할아버지의 문자./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수술 당일, 할아버지는 병원에 하루 종일 머물러 있었다. 그날 저녁 6시쯤 수술이 잘 끝났다. 할아버지 문자가 장 대표에게 이리 왔다.
'정신이 들어서 내가 가니까 꼬리 흔들고 바로 쳐다봅니다. 이제 후유증 없이 잘 회복했으면 좋겠네요. 많이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행운이를 만나러 갔다. 단짝이 좋아하는 닭가슴살과 연어 간식을 손에 꼭 쥐고서. 두세 시간씩 있다가 온다고 했다.
5일만에 퇴원하던 날이었다. 행운이가 달려온다. 가장 좋아하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우주에게./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행운아, 할아버지가 불렀다. 행운이가 바라보았다. 그보다 먼저 세모난 두 귀가 젖혀졌다. 꼬리가 격하게 흔들렸다.
주저 없이 품으로 달려왔다. 망설이지 않아도 마냥 좋은, 세상에 하나뿐인 우주에게.
얇은 잠바 신경 쓰여서…할아버지에게도 새 패딩 선물
할아버지에게 모금액을 전달하는 과정도, 일일이 소통하며 물품을 구매하고 애써준 장신재 정글핌피, 핌피바이러스 대표./사진=핌피바이러스 계정 화면 캡쳐(@junglepimfy)
할아버지는 극구 받지 않겠다고 사양했다. 기초생활수급비에 연금을 더하여 월 생활비 60만원. 모으진 못해도 우리끼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다시 건강해진 행운이가 할아버지를 보자 환해졌다. 늘 그랬듯 다가가 두 발로 섰고, 맘껏 꼬릴 흔들었다. 수술 받지 않으면, 짧으면 며칠에서 몇 달이라던 행운이가 이리 웃는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도왔기에 가능했던 일. 두 단짝의 삶을 이어가게 해준 건 여러분이다./사진=행운이와 할아버지 응원 모임에 있는 남형도 기자
한겨울에도 맨날 얇은 잠바 두 벌만 돌아가며 입는 게 신경 쓰여서, 할아버지에게 검은색 롱패딩을 선물했다./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할아버지는 까만 새 롱패딩을 입고선 "부자 할아버지로 오해받겠다"며 웃었다. 장 대표가 인쇄해준 사람들의 응원 메시지도 찬찬히 하나씩 읽었다. 그러다 몇 번씩 목이 메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행운이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 기자의 말
할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남겨준 기프트카드.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사진=장신재 정글핌피 대표
한편으로 저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행운이와 할아버지에게 애정이 쏟아진 것처럼, 다른 유기동물들에게도 그러했으면 좋겠다고요. 행운이는 울어줄 할아버지라도 있었지만, 버려진 많은 개와 고양이들은 그럴 이조차 없으니까요.
울어줄 단짝도 없는 수많은 유기동물들. 대부분 가족으로 '입양'해야 한단 생각에, 걱정과 부담이 있으나, 그 전 단계로 '임시보호'하는 방법도 있다. 급한 안락사를 막으면서, 자연스레 가족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귀한 일이다. 장신재 핌피바이러스 대표도 '임시보호'를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직 관심이 낮은 편이다./사진=핌피바이러스(@pimfyvirus)
"임시보호는 충분한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유기동물의 절반이 목숨을 잃어야만 하는 잔혹한 현실 속에서, 임시보호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에요. 물론 임보의 목표도 결국 입양이지만, 입양을 가려면 우선은 살아있는 게 먼저니까요.
임보를 한 번 시작한 대다수의 동물들은 시기만 다를 뿐 언젠가는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구조와 입양, 그 중간을 이어주는 핵심적인 징검다리인 임시보호의 중요성을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고, 함께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쓴 글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으시고 뜨겁게 마음 보태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필요한 글 부단히 잘 담겠습니다.
남형도 기자 올림.
행운이와 할아버지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동화 속 해피엔딩처럼 무탈하고 안녕한 날들만 이어지기를 바라며./사진=햇살이 들어오던 오후에, 남형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