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앞 그 많던 구급차, 도로 위 '뺑뺑이'…"환자 안 받아줘"[르포]

머니투데이 김미루 기자, 최지은 기자 2024.02.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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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 서울대병원 전용 구급차 1대를 제외하고 주차 자리가 텅 비어있다./사진=김미루 기자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 서울대병원 전용 구급차 1대를 제외하고 주차 자리가 텅 비어있다./사진=김미루 기자


"서울대병원은 원래 구급차가 줄지어 대기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오늘은 1대도 없네요."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1년 차 사설구급대원 김모씨는 응급실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실제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 대기 중인 구급차는 없었고 병원 전용 구급차 1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씨는 이날 응급환자가 아니라 인근 요양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는 환자를 태우고 서울대병원에 도착한 터였다.

김씨는 "지난 20일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119 구급차와 사설 구급차 6대가 줄줄이 대기했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은 서울 서북권 유일한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중증 응급 환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같은 날 오전 서울 노원구 지역응급의료센터인 상계백병원 응급의료센터 상황도 유사했다. 1시간 동안 환자 이송을 위해 병원을 찾은 구급차는 단 1대 뿐이었다.

평소 구급차가 대기하는 전용 주차 공간은 텅 비어있었다. 상계백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이용 환자, 보호자 기록 보면 전공의 파업 이후로 구급차 이송이 절반 이상 줄었다"며 "드문드문 오기는 하는데 대기하는 것을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붙은 안내문. "응급실 의료진 부족으로 인해 진료 대기가 길어질 수 있습니다. 가벼운 증상은 인근 병의원 이용을 권고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사진=최지은 기자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붙은 안내문. "응급실 의료진 부족으로 인해 진료 대기가 길어질 수 있습니다. 가벼운 증상은 인근 병의원 이용을 권고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받아주는 병원 없어 진료 '포기'…병원 '뺑뺑이' 돌다 숨지기도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해 의료공백이 우려되고 있는 2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줄지어 선 구급차를 지나가고 있다./사진=뉴시스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해 의료공백이 우려되고 있는 2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줄지어 선 구급차를 지나가고 있다./사진=뉴시스
응급실 앞에서 장사진을 치던 구급차들이 사라졌다. 병원이 의료진 부족을 이유로 환자 수용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 소재 사설구급대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와 한 전화에서 "응급실에 병상이 있어도 의사가 없으니 아예 (환자를) 받지 않는다"며 "상급종합병원뿐만 아니라 종합병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요양병원 환자 중 시술을 위해 응급실에 방문하는 분들도 많은데 응급실 수용이 안 되니 못 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응급실을 찾아 도로 위에서 장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뺑뺑이' 사례도 이어진다. 병원을 찾는 시간이 지연돼 생명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도 발생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대전에서 지난 23일 낮 의식 장애를 겪던 80대 환자가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50분여 헤매다 결국 숨졌다. 전화로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 했으나 병상 없음, 전문의·의료진 부재, 중환자 진료 불가 등을 이유로 병원 7곳에서 수용 불가를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 남양주시 소재 사설구급대 구급대원 김모씨는 "전공의 파업 이후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들을 안 받으려 한다"며 "하지만 보호자들은 상급종합병원으로 가길 원하니 소위 '응급실 뺑뺑이'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상급종합병원만 할 수 있는 치료가 있어 종합병원으로 이송해도 치료받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들도 많다"며 "서울에 있는 병원을 다 돌면 7~8시간 정도 걸린다. 결국 원래 있던 병원으로 되돌아가는 환자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 "전공의들 29일까지 돌아온다면 책임 묻지 않겠다"…3월부턴 사법절차 진행

 이상민 행안안전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상민 행안안전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스1
보건복지부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23일 오전 7시 기준 전공의 1만34명(전체 80.5%)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9006명(72.3%)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에게 오는 29일까지 복귀할 경우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3월부터는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된 사법 절차가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6일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전공의들에게 "29일까지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면서도 "3월부터는 미복귀자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 사법 절차의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신규 피해 사례를 조사한 결과 23일 오후 6시까지 총 38건이 집계됐다. △수술 지연 31건 △진료 거절 3건 △진료 예약 취소 2건 △입원 지연 2건이다. 이 중 17건에 대해서는 피해보상 등 법률 상담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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