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서 영화를 봐야 할 이유를 증명한 '듄: 파트2'

머니투데이 정유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2.2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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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볼거리와 서사의 SF 판타지 블록버스터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거창하게 말하자면 21세기 극장을 구원할 메시아가 나타났다. 마블을 비롯한 프랜차이즈 영화의 전성기는 한풀 꺾였고,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위축된 극장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여기에 OTT 춘추전국시대가 일으킨 지각 변동은 영화 관람 형태뿐만 아니라 상영 플랫폼에 따른 장르 특화, 질적 변화까지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영화 ‘듄’ 시리즈는 그 어느 때보다 살벌해진 콘텐츠 약육강식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완전히 터득한 모양이다. SF 판타지 장르를 가장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극장에서 규모와 완성도의 미학으로 반격에 성공한다.

한편으론 새로운 SF/판타지 블록버스터 시리즈에 대한 목마름까지 시원하게 해소한다. ‘스타워즈’와 ‘반지의 제왕’은 OTT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고, 프리퀄 ‘신비한 동물사전’이 4편으로 막을 내리면서 ‘해리 포터’는 드라마 리부트를 준비 중이다. 무려 13년 만에 2편으로 돌아와 모처럼 SF 대작 시리즈의 물고를 튼 ‘아바타’는 2025년 말에 3편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틈에서 ‘듄’은 2021년 개봉한 파트 1에서 SF 걸작 시리즈가 될 만한 조건과 가능성, 흥행을 입증했다. 영화를 파트로 나눴기 때문에 절반의 평가를 남겨둬야 했고, 관객의 갈증도 남아 있었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듄: 파트 2’는 지금의 대형 영화들이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으기 위해 (이제는 반드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양질의 볼거리를 세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165분 동안 제공한다. ‘티켓값 아깝다’는 생각이 단 1초도 들지 않게끔 시선을 붙드는 ‘듄’의 전략은 블록버스터 시리즈에 대한 기대치와 수준을 동시에 뛰어넘어 버린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지금 엄청난 걸 보고 있구나‘ ’앞으로 이런 영화를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흥분과 벅찬 감흥이 몰아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시리즈는 대형 프랜차이즈 IP와 작가주의 감독의 이상적 만남이라는 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떠오르게 한다. 거대 자본 안에서 감독의 개성과 재능이 날개를 달고 펼쳐질 때 IP 작품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지금까지 영화, TV 드라마, 게임으로 여러 차례 재생산된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 SF 대하소설 ‘듄’과 드니 빌뇌브 감독의 만남은 1960년대 SF 고전이 21세기 SF 걸작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게 한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미 전작들을 21세기 걸작 목록에 올린 인물이다. 종교와 전쟁이 남긴 충격적 비극을 그린 ‘그을린 사랑’(2010),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잡은 범죄 스릴러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2015), 원작과 스타일을 확장한 두 편의 SF ‘컨택트’(2017)와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지금까지 작품 세계가 집결된 ‘듄: 파트 2’를 보면 이 영화들이 초석처럼 여겨진다. ‘듄’으로 첫 시리즈 연출에 도전한 드니 빌뇌브 감독은 총력을 다해 자신의 세계관을 덧씌운 ‘듄’의 은하제국을 건설했다.


영웅 서사를 보여주면서 영웅주의, 종교와 정치의 결합을 경고하는 ‘듄’의 주제 의식은 파트 2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귀족 아트레이더스 가문의 후계자에서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인 사막 부족 프레멘의 일원이 된 주인공 폴(티모시 샬라메)은 스스로 메시아가 되어 제국 왕좌에 오르는 길을 택한다. 미래를 내다본 폴의 고뇌와 자신이 속한 종교 집단 베네 게세리트를 증오하는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의 권력 야욕이 팽팽한 긴장감을 일으킨다. 폴의 환영 이미지 연출도 훌륭하지만, 어머니에서 대모로 거듭나는 레베카 퍼거슨의 복합적인 연기는 전편보다 훨씬 뛰어나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듄: 파트 2’의 진풍경은 모두 사막에서 펼쳐진다. 파트 1에서도 사막의 위용을 보여주었는데 그건 정말 맛보기였다. 이번엔 모래로 뒤덮인 사막 행성 ‘아라키스 생생 체험’에 가깝게 연출해 사막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감탄을 부른다. 광활한 사막 풍경, 모래 언덕, 사막 표면, 모래 폭풍, 먼지 구름까지 사막 배경 영화의 최고봉을 찍는다. 마라키스의 사막에서 폴은 귀족 가문의 도련님에서 ‘폴 무앗딥 우슬’로 거듭나고 프레멘인 챠니(젠데이야)와 사랑에 빠진다. 드레이그 프레이저 촬영감독은 모래 언덕에 앉은 다정한 연인의 아름다운 순간을 낭만적으로 포착해 황홀경을 남긴다.

프레멘 훈련을 받는 폴이 거대한 모래벌레 ‘샤이 훌루드’에 올라타는 장면은 ‘듄: 파트 2’의 최고 볼거리다. 감독이 “1년 넘게 테크닉을 구상했다”는 장면 설계도 압권이거니와 폴과 함께 모래 폭풍 속에서 모래 먼지를 들이마시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속도감이 엄청나다. 전편보다 늘어난 액션 장면들도 기대에 부응한다. 전투 신, 군중 신, 검투 신, 우주선 신 등 지금껏 블록버스터에서 익히 보아온 장면이라 해도 드니 빌뇌브 감독의 스타일이 더해져 천지 차이를 만든다. 9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원작 1권의 내용을 파트 1, 2에 영리하게 재배치하고 각색의 묘를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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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폴을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는 이번 영화로 배우 커리어 정점을 찍는다. 앞서 개봉한 영화 ‘웡카’에서 보여준 매력이 ‘듄’에서의 역할과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역시 배우는 배우다. 오히려 연기력이 스타성을 앞지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가늠대가 됐다. 군중 앞에 나서서 외치는 장면이나 후반부 주요 장면들은 폴의 성장뿐 아니라 티모시 샬라메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어 흐뭇하다.

젠데이야와 더불어 오스틴 버틀러와 플로렌스 퓨가 합류해 젊은 배우들이 전면에 나선 것도 ‘듄’ 시리즈의 강점이다. 파트 1,2를 합쳐 젠데이야는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이다. 오스틴 버틀러는 하코넨 남작(스텔란 스카스가드)의 조카이자 후계자 페이드 로타로 등장해 메인 빌런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수행한다. 원작 묘사와 다른 백색 민머리 분장도 공포스럽지만 사납고 탐욕스러운 인물의 성격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1편의 빌런인 하코넨 남작에 버금가는 젊은 빌런의 등장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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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 퓨가 연기한 이룰란 공주는 황제 샤담 4세의 맏딸로 원작 1권 챕터 시작마다 나오는 무앗딥에 관한 행적과 은하계 역사를 저술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영화에서도 관찰자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분량은 많지 않지만 주로 동적인 캐릭터를 연기해 온 플로렌스 퓨의 정적이고 차분한 연기를 볼 수 있어 새롭다. 3편에서 본격적인 활약이 기대된다. 샤담 4세 황제로 등장하는 전설적인 배우 크리스토퍼 월켄, 베네 게세리트의 새로운 인물인 마고트 펜링 백작부인 역에 레아 세이두도 역할에 걸맞은 품격 있는 연기를 펼친다.

영화 ‘듄’ 시리즈는 2부작으로 계획했으나 지금은 3부작을 확정한 상태다. 파트 3에선 원작 소설 2편 ‘듄의 메시아’를 다루게 된다. 황제가 된 폴 무앗딥의 이야기로 이룰란 공주와 베네 게세리트 집단의 계략, 1편에서 활약한 던컨 아이다호(제이슨 모모아)의 부활 등 아직 더 영화로 만나고 싶은 사건과 인물들, 이야기가 가득하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마지막 ‘듄’ 시리즈를 언제쯤 들고 올지, 어떤 볼거리로 최상의 시네마적 체험을 선사할지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가득 찬다. 지금은 ‘듄친자’가 되어 열광할 시간이다. 기꺼이 동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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