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해상풍력 사업 진행 속도를 보면 정부의 2030년 목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해상풍력 발전을 위한 입지 선정부터 시공단계를 거쳐 전력을 생산하는 데까지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대부분의 사업이 가장 첫 단계인 단지 개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터빈·하부구조물·해저케이블 등을 구매·설치하는 데 약 4년이 걸리는 걸 감안하면 2~3년 내 약 13GW의 사업이 인허가를 완료해야 한다. 그러나 산업부에서 인허가 첫 관문인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70여개, 총 발전용량 20GW 이상의 사업 중 2년 여 내 인허가를 끝낼 가능성이 있는 사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현재 해상풍력 사업자들은 산업부·해양수산부·환경부·국방부 등 최대 10개 부처에서 집행하는 29가지 법률에 관한 인허가를 각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 인허가 관문을 넘기 위한 주민수용성도 사업자가 개별적으로 어민들과 접촉해 확보해야 한다.
◇1GW당 6조원 사업비…수십조원 규모 외국인 투자 대기 중이나 장벽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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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리드타임(개발에서 서비스 제공까지의 시간) 불확실성이 줄어들지 않으면, 최근 몇년간 해상풍력 사업에 각각 수조원의 투자의향서를 신고한 외국계 개발기업들의 FDI(최종투자결정)가 불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총 6GW 이상의 울산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에 덴마크 COP(코펜하겐오프쇼어파트너스), 노르웨이 에퀴노르, 영국 코리오, 프랑스 토탈, 오션윈즈(포르투갈 EDF와 프랑스 엔지 합작사) 등이 개별 또는 합작사 형태로 진출했다. 인천에서는 덴마크 오스테드가 1.6GW 규모의 사업을, 캐나다 노스랜드파워는 서해안 등에서 1.8GW 규모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해상풍력 발전단지 건설 사업비가 1GW 당 약 5~6조원임을 감안하면 최소 수십조 돈이 한국 안에 환류되는 사업이다.
해상풍력 개발 경험이 풍부한 외국계 개발사의 진출은 한국 시장 초기단계에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대한국풍력산업협회는 지난해 발간한 '국내 해상풍력 공급망 세부분류'에서 "(단지 개발 단계는) 전문 업무 영역이 많아 외국계 대형풍력 단지개발사 외에는 수행이 어렵다"고 했다. 업력이 없는 해상풍력 사업에서 수조원대 사업비를 충당·조달할 수 있는 국내 기업도 현재로서는 찾기 어렵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철수하면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달성 지연이 불가피하다.
이런 제도 미비를 개선할 해상풍력특별법은 소관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로 21대 국회에서 통과가 불투명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인허가 지연에는 정성 지표로만 돼 있는 환경영향평가, 사업 허가를 내주는 데 대한 지자체의 이익환원 요구, 전력망 제약 등 여러 요인이 복합돼 있다"며 "부처간 의견이 수렴된 해상풍력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에 힘쓰겠다"고 했다.
'안방' 없어 수출만…풍력시장 커지면 韓 기업 웃는 이유
풍력 터빈 요소인 넛셀이 덴마크 에스비에르 항구에 놓여 있다/사진=권다희 기자
◇한국 안에 시장 없어 해외 수출로 매출 창출…공장도 해외에
한국 기업들이 풍력발전에서 진출·확장을 꾀하는 분야는 외국계 개발업체들이 진출한 단지개발 이후 이뤄지는 풍력발전단지 구조물 제작이다. 생산전력당 비용(LCOE·균등화발전비용)의 약 45%가 이 주기에 투입되는만큼, 해상풍력 단지 규모가 커지면 이에 필요한 제조업 규모도 커진다. 해상풍력단지에는 풍력터빈·하부구조물·해저케이블·해상변전소 등이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은 대형 구조물·케이블 등 일부 품목에서 경쟁력 있다고 평가된다. 터빈을 해저에 지탱시키는 하부구조물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 가능한 분야로 꼽힌다. SK오션플랜트, HSG성동조선, 현대스틸산업 등이 자켓 형태의 하부구조물을 만든다. 세아제강은 영국에서 모노파일(철판으로 만드는 원통 모향의 하부구조물) 제작에 진출했다. 다만 아직 한국에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가 없어 매출 대부분은 대만 등 해외시장에서 창출돼 왔다.
유럽을 중심으로 해상풍력단지가 대형화하면서 수요가 급증 중인 해저케이블 분야에서는 LS전선이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프리즈미안, 프랑스 넥상스, 덴마크에 본사를 둔 NKT 등 글로벌 '빅3'와 경쟁 중이다. '바람개비'와 하부구조물을 연결하는 터빈의 '기둥' 타워도 씨에스윈드, 동국에스엔씨 등 한국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 중 하나다. 육상타워 제조업을 하다 해상풍력 타워 비중을 늘리고 있는 씨에스윈드의 경우 생산시설이 모두 해외에 있고 매출의 대부분이 유럽 등 해외에서 창출된다.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의 하부구조물인 부유체, 부유체를 해저와 연결하는 계류선 제작 분야도 수년 후 부유식 해상풍력이 대규모로 상용화할 때 새로운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SK오션플랜트 등 하부구조물을 만드는 한국 기업들이 부유체 제작을 위한 투자에 이미 나섰다. 역시 거대한 구조물인 해상변전소도 하부구조물 제조업체가 진출할 수 있는 시장으로 꼽힌다.
유럽 등의 풍력산업 공급망 병목이 수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한국이 기존의 제조업 기반을 활용해 수출을 늘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한국 시장 형성과 풍력 공급망 내 분야별 경쟁력 차이 등을 극복하기 위한 세분화한 산업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바람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해상풍력 사업의 핵심 장치 터빈은 베스타스·지멘스가메사 등 글로벌 기업들과 한국 기업간 경쟁력 격차가 가장 큰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터빈은 블레이드, 제너레이터, 베어링 등 구성 요소 제작에 전문성이 필요하고, 산업적 파급 효과가 크며, 전체 사업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풍력 공급망의 핵심 품목으로 꼽힌다.
2010년대 들어 사업비를 낮추기 위한 터빈의 대형화가 급속히 진행됐지만, 한국에선 이 기간 삼성중공업 등이 터빈 제조 등을 접는 등 오히려 투자가 줄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대기업 중 유일하게 터빈 제조업을 유지해 왔지만,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중국 터빈사들과의 격차마저 벌어지고 있다.
한 국내 풍력 기자재 기업 대표는 "유럽에선 원가 상승으로 풍력 공급망 병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가격을 낮추면서 대량 양산할 수 있는 생산거점으로 한국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며 "그러나 한국은 정량지표가 좋아도 정책이 불확실해 글로벌 풍력 기업 입장에선 한국 상황을 보다 베트남 등 다른 국가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 안에 밸류체인이 생기는 게 중요하다"며 "환경, 경제성, 산업경쟁력 3가지 요인의 균형을 정책에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