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엔터테인먼트
22일 김범수의 정규 9집 '여행'이 발매됐다.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범수는 깊은 음악성과 진정성을 이번 앨범에 담아냈다. 김범수는 앨범 발매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 모처에 위치한 한 카페서 라운드 인터뷰를 개최, 앨범과 자신의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작업을 게을리했던 건 아니에요. 음원 프로젝트도 하고 공연도 하고 활동을 나름대로 했는데 피지컬 앨범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어서 공허함도 들었어요. 음악에 대한 회의감이 든 건 아니었는데 정규 앨범이 이제는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비슷한 시대에 데뷔했던 가수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요. 피지컬 앨범을 작업하던 가수로서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이를 효율적으로 알리고 전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지난해 초에는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가 25주년인데 선물 하나쯤은 가지고 인사드려야 할 것 같았어요. 저에게도, 팬분들과 대중분들에게도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최유리님의 곡을 많이 들었어요. 유리님의 곡이 요즘 세대들에게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 곡을 부탁드릴 때도 그런 정체성을 담아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여행이라는 주제를 잡았다고 하기에 가볍게 떠나는 기분 좋은 여행을 생각했는데 가사에 너무 많은 번뇌와 갈등, 후회가 담겨있더라고요. 깊게 봤을 때는 제 음악인생이 담겨있고요. 성공보다는 실패했던 순간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그럼에도 다음 길을 갔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가야 할 여행에 대한 고민도 담겨있고요. 가사가 정말 좋아서 수정도 거의 하지 않고 작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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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곡 '여행'에 참여한 최유리를 비롯해 선우정아, 김제형, 이상순, 임헌일, 작곡가 피노미노츠,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 등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참여하며 앨범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곡을 받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김범수가 당시 듣고 있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보컬리스트니까 좋은 곡을 받아야 하는데 누구에게 곡을 받아야 하는 고민을 가장 먼저 했어요. 초창기를 함께했던 용사들과 영광을 되찾을 것인가, 지금 한창 뜨고 있는 트렌디한 프로듀서들과 협업을 하는게 맞을까 생각했는데 답이 안 나오고 둘을 섞기도 애매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플레이리스트에 접근했어요. 어느 순간 제게도 변화가 생기고 듣는 음악들이 달라지더라고요. 플레이리스트를 보니 이번 앨범에 참여하신 분들의 라인업이 완성되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 이야기가 이런 거라면 이분들께 접근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이번 작업을 통해 연을 맺게 됐는데 흔쾌히 참여해 주셨고 저에게 맞는 노래를 주셔서 좋은 앨범이 나온 것 같아요."
다른 아티스트의 참여 비중이 높다는 말은 김범수의 참여 비중이 적다는 뜻이다. 실제로 김범수는 이번 앨범의 1번 트랙 '너를 두고'의 작곡에 참여한 것 외에는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보컬리스트로서의 자부심을 담아 모든 노래를 '김범수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어느 순간 많이 내려놨어요. 8집을 프로듀싱하면서 곡을 쓰고 가사도 써봤는데 제가 그 영역에서 잘할 수 있는 포지션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흥망을 떠나서 한계가 많이 느껴졌어요. 제가 좋아하는 휘트니 휴스턴이 보컬리스트의 힘으로 '곡도 쓰고 연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 방에 정리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보컬리스트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다른 것을 못 한다기보다는 이걸 특출나게 잘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좋은 노래가 있으면 그걸 내 걸로 만드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역할을 계속하고 싶어요. '너를 두고' 역시 작업자로서의 모습을 메인으로 내놓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느낌을 주고 싶어 넣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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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감사드리지만, '김나박이'를 많이 말씀해 주셔서 무게감이 느껴지고 짓눌리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힘이 들어가고 망치는 무대도 많았어요. 그냥 하면 되는데 '김나박이'라고 하니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걸 놓고 가야 가볍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1~2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제가 끄집어 놓고 제가 짓눌린 거죠. 사실 '김나박이' 뿐만 아니더라도 제가 지금까지 활동해 온 것들, 대중분들이 쌓아주신 왕관이 독이 되어 무게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걸 내려놓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이번 앨범도 최대한 힘을 뺐어요. 테크닉, 가창력보다는 가사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며 무게를 덜어냈어요. 더 깊고 넓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회복한 앨범이 아닌가 싶어요."
김범수는 앞서 정규 앨범을 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나름의 책임감으로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시대의 흐름보다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김범수의 고집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김범수는 '진중하게 음악만 하는 사람도 분명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음원 프로젝트를 하면서 많은 시도를 해봤어요. 많이 한다는 바이럴, 챌린지 이런 것도 해봤는데 제가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저랑은 안 맞더라고요. 어느 정도 따라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하고도 있지만, 제가 하던 방식대로 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특히 이번 정규 앨범은 제가 해왔던 방식대로 하고 싶었어요. 시류에 편승하기보다는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같이 작업하신 분들도 다 각자의 영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분들이에요. 자극적이거나 보여지는 것이 많거나 특별해야만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시대에도 진중하게 음악만 하시는 분들도 분명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저 역시 이 쪽에 조금 더 치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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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한 가지를 오래 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제가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오래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었어요. 이렇게 오래 할 수밖에 없던 이유 중 하나는 제가 노래만큼 잘할 수 있는게 없었기 때문이에요. 요즘에는 다양한 부캐를 가지고 다양한 재능으로 승부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저도 그런가 싶어 다양하게 해봤지만, 감사한 일인지 노래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시대가 변했다고 하더라도 제가 좋아하는 이문세, 조용필, 패티김 선배님처럼 노래만 하다가 노래로 은퇴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또 선배님들이 25주년을 맞이하셨을 때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안 들더라고요. 다들 덤덤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남았고 벌써부터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처럼 김범수의 정규 9집 '여행'은 보컬리스트로서라는 직업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꾹 눌러 담았다. 평소에 자신의 음악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렸다는 김범수는 이번만은 다르다며 대중들도 자신의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저에게도 큰 선물이에요. 저는 지금까지 제 음악에 대해 박한 편이었어요. 작업한 후에 즐겨 듣지도 않았어요. 이번 앨범만은 이상하게 가끔 찾아서 감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중분들도 제가 받았던 위로를 함께 받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