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가 최근 수년간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에 뺏기는 고객들을 되찾기 위해 칼을 갈아온 것으로 보고 있다.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국내 MMORPG 시장에서 아류작들이 속속 등장하며 리니지 시리즈의 매출이 빠르게 내려앉는 걸 좌시할 수 없었다는 것. 이 같은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배경은 게임업계에서 '로펌'으로 부를 정도로 강력해진 엔씨의 법무 역량이다.
/사진=엔씨소프트
공식적으로 엔씨 법무팀이 최전방에 나섰던 것은 2008~2014년 이어진 블루홀스튜디오(현 크래프톤 (338,000원 ▲17,000 +5.30%))과의 다툼이었다. 당시 리니지3 개발팀을 이끌던 박용현 개발실장(현 넥슨게임즈 (15,850원 ▼200 -1.25%) 대표)이 개발진과 블루홀로 집단 이적하면서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피소 당했다. 1심에선 엔씨가 승소해 피고들이 2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으나 항소심에서 금액에 관한 부분은 뒤집혔고, 대법원 역시 이를 인정했다.
경험 쌓고 레벨업 하듯...강해진 엔씨 법무팀
엔씨소프트 판교 R&D 센터. /사진=엔씨소프트
엔씨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범람하기 시작한 리니지 아류작들에 대한 소송 검토도 활발히 진행하기 시작했다. 다만 리니지가 만들어놓은 한국 MMORPG의 공식과도 같은 요소들은 대부분의 게임에 들어가 있었고, 이 중에 소송 대상을 집어낸다는 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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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표절에 대해 공식 소송에 들어간 건 2021년 웹젠 (16,730원 ▼70 -0.42%)의 R2M에 대한 공격이 처음이었다. 리니지M의 인터페이스를 상당 부분 베꼈다는 이유에서다. 절치부심한 엔씨 법무팀은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탄력을 받은 엔씨는 지난해 4월 카카오게임즈가 같은 해 3월 출시한 '아키에이지 워'가 리니지2M을 표절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들어서는 출시 직전인 '롬'에도 표절 잣대를 들이대며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리니지라이크와 표절의 경계선은 어디?
(왼쪽)리니지W (오른쪽)롬. /사진=엔씨소프트
일례로, 리니지 이전의 MMORPG에서는 대부분 '변신'이라는 BM(비즈니스모델)이 '아바타 옷 입히기' 수준이었다. 이용자 취향에 맞게 커스터마이즈하는 용도로 쓰이던 변신은, 리니지에서 능력치가 붙은 '뽑기템'으로 거듭나게 된다. 일설에 따르면, 리니지에서도 변신은 원래 꾸미기용 아이템 수준이었으나 해골 변신을 한 일부 유저들이 화면에 나타나는 프레임값의 차이에 따라 '공격 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을 발견한 게 시작이었다. 이에 적지 않은 유저들이 해골 변신으로 플레이하자 엔씨가 이를 놓치지 않고 상품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보편화된 MMORPG의 요소이기에 소송을 제기하기는 무리라는 평이다. 엔씨가 표절 소송을 제기한 세 게임은 리니지 시리즈와의 유사성이 다른 게임들에 비해 높은 것으로 평가 받는다. 엔씨 입장에서도 전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표 IP(지식재산권)마다 R2M(리니지M), 아키에이지 워(리니지2M), 롬(리니지W)를 '시범 케이스'로 선정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R2M '표절' 판단 내린 1심의 근거 살펴보니…
(왼쪽)리니지M의 '아인하사드의 축복'과 (오른쪽)R2M의 '유피테르의 계약'. /사진=엔씨소프트
당시 판결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선택·배열·조합'이었다. 수많은 MMORPG에 쓰이는 보편적 요소들이라 하더라도, 각 구성요소를 게임에서 선택, 배열,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독창성이 나타난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엔씨가 리니지M에서 각 구성요소를 선택·배열·조합하고 이를 구현함에 있어서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리니지M이 출시되기 이전의 기존 게임들에서 이 사건 각 구성요소의 선택·배열·조합을 유사하게 구현한 방식의 게임은 리니지(PC버전)를 제외하고는 찾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법원은 변신 및 마법인형(서번트)을 획득하기 위한 카드뽑기 아이템의 경우 소수점 세리까지 똑같은 확률로 설정된 점 등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이와 같은 행위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게임 업계에서 굳이 힘들여 새로운 게임 규칙의 조합 등을 고안할 이유가 없어지게 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롬'은 리니지W와 얼마나 유사성 인정 받을까
리니지W 출시 전후의 게임 내 아이콘 비교. /사진=레드랩게임즈
엔씨는 지난 22일 소송 제기와 함께 보도자료를 통해 "'롬'이 리니지W 게임 구성 요소의 선택, 배열, 조합 등 종합적인 시스템을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롬 개발사인 레드랩게임즈는 23일 신현근 PD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오랫동안 전 세계 게임에서 사용해온 통상적 범위"라며 "엔씨소프트의 소송 제기와 과장된 홍보 자료 배포 행위가 '롬'의 정식 서비스를 방해하고, 이용자들의 심리적 위축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로 진행된 행위"라고 반박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리니지라이크 게임을 출시할 때마다 불거지는 논쟁인데, 그만큼 시장 수요보다 더 많은 MMORPG 공급이 이어지는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며 "포화상태에 달한 MMORPG 개발을 고집한다면 이후에도 똑같은 논란과 소송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