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투기 침범" 요격하려다 '멈칫'…'라면 봉지' 보고 내려온 조종사[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2024.02.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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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방송 화면/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방송 화면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58분. 북한의 전투기 한 대가 우리나라 영공을 침범해 서울과 수도권에는 29여 분간 대공 경계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당시 한국에서는 미군과 대한민국 국군의 '팀 스피릿' 연합 군사훈련이 진행 중이었다.

이에 준(準) 전시 상태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던 북한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로켓 사격 훈련 비행을 시작했다.



평안남도 개천 비행장에서 전투기 미그-19기 편대가 이륙한 후 얼마지 않아 전투기 한 대가 돌연 편대를 이탈해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이 전투기는 편대를 따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초저공 비행을 시작했다.

시속 920㎞의 전속력으로 고도 50~100m를 비행한 끝에 이 전투기는 오전 10시45분 황해남도 해주시 상공을 지나 연평도 상공의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었다.

한국 상공 침범한 북한 전투기…'귀순' 의사에도 긴장 대치
우리나라 상공에 북한 전투기가 침범하자 초계 비행을 하던 한국의 F-5 전투기들이 바로 따라붙어 요격에 나섰다. 북한의 선제 공격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북한 전투기 미그-19기는 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적기를 만났을 때 '귀순' '항복' 등 저항할 의사가 없다는 표시인 '뱅크 기동'이었다.

/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방송 화면/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방송 화면
북한 개천 비행장을 떠난지 30여 분 만인 오전 11시4분. 북한 전투기는 한국 전투기의 유도로 수원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그러나 비행장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대한민국 군인들은 조종사의 돌발 공격에 대비해 그와 총구를 겨눈 채 대치했다.

불안한 건 북에서 넘어온 조종사도 마찬가지였다. 조종사는 전투기 캐노피를 연 뒤 손을 흔들며 "나 할 말이 많습네다"라고 외쳤다. 그가 투항 의사를 밝히자 국군은 "여기는 대한민국입니다. 안심하고 나오셔도 됩니다"라고 답했다.

조종사는 불안함에 "나 총에 맞지 않게 해주시오!"라고 부탁했고, 그제야 국군은 병사들을 철수시켰다.

30여 분의 목숨을 건 비행 끝에 휴전선을 넘어온 이는 북한 조선인민군 공군 조종사 이웅평 대위였다.

당시 이 대위는 "나는 조선 반도에서 현존하는 전쟁 위험을 막고자 비행기로 탈출해 왔다. 지금 북에서는 김일성이 자기 체제 (유지를 위해) 모든 군중을 불러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리고 광분하고 있다. 이를 온 세계에 고발하고자 북을 탈출하여 나왔다"고 말한 뒤 전투기에서 내렸다.

북한 실상 고발한 이웅평…'라면봉지' 보고 귀순 결심
/사진=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방송 화면/사진=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방송 화면
귀순 열흘 뒤인 1983년 3월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웅평 대위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투기를 몰고 귀순한 그에게는 전국민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그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의 상황을 전했다.

/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방송 화면/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방송 화면
특히 화제가 된 건 이웅평 대위가 귀순을 결심한 계기였다. 그가 귀순을 결심한 건 바로 북한 바닷가에 떠밀려온 한국의 '라면 봉지' 때문이었다.

이 대위는 어느날 함경북도 경흥군의 한 바닷가에서 이상한 비닐봉지를 주웠다고 했다. 이는 바로 '삼양라면' 봉지였다. 라면이 뭔지 몰랐던 그는 단순히 '국수'라고 생각해 포장지를 읽어내려갔다.

이 대위를 충격에 빠뜨린 건 라면 봉지에 적혀 있던 글귀였다. 라면 봉지에는 '판매나 유통과정에서 변질, 훼손된 제품은 판매점이나 본사대리점에서 교환해 드립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읽은 그는 "남조선은 이런 작은 물건 하나까지도 소비자 인민의 편의를 도모하는구나. 그렇다면 인민의 지상락원이라던 우리 공화국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됐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웅평 대위의 귀순을 바로 실행에 옮기게 한 결정적인 사건도 있었다.

조선인민군 장교 출신으로 1991년 탈북한 '1세대 귀순자' 임영선은 한 방송에서 "이웅평은 전투기에서 한국 라디오 방송을 접하고 절친에게 얘기했다가 신고가 들어갔고, 탈북 당일 지도원에게 '너 이제 마지막 비행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자신을 조사할 것이라 느낀 찰나에 여기서 이탈하지 못하면 사형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탈북한 것"이라고 전했다.

타고 온 북한 전투기 덕에 보로금 13억6000만원 거금 받아
이웅평 대위가 타고 온 미그-19기/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방송 화면이웅평 대위가 타고 온 미그-19기/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방송 화면
이웅평 대위는 자신이 타고온 미그-19기 덕분에 보로금으로 13억6000만원을 받았다. 공산 진영의 군수품을 가지고 올 경우 장비에 대한 보상을 하도록 한 법에 따라서다.

이는 지금 화폐가치로 따지면 약 61억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당시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분양가가 2000만원이었던 만큼 이 대위가 받은 보로금이 엄청난 금액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웅평 대위의 귀순 2개월 뒤인 4월14일에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귀순 환영대회'가 열려 무려 130만 명의 환영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이 대위는 귀순 후 한국 공군에 몸담아 1996년 대령으로 진급했고, 공군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2002년 5월 4일 간기능부전증으로 사망,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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