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막은 의사는 떠나고…병원 지키는 간호사들 "불법진료 두려워"

머니투데이 김지성 기자, 최지은 기자 2024.02.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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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란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23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 강당에서 열린 의사파업에 따른 현장 간호사 업무 가중 관련 1차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탁영란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23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 강당에서 열린 의사파업에 따른 현장 간호사 업무 가중 관련 1차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생 증원에 반대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간호사들에게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불법 진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불안감을 호소하는 간호사들도 늘었다.

2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10시 기준 주요 94개 병원에서 소속 전공의의 약 78.5%인 8897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직서는 아직 수리되지 않았으나 사직서 제출 후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69.4%인 7863명에 달한다.



같은 날 오후 6시 기준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지원센터에 새로 접수된 피해사례는 총 40건으로 집계됐다. 수술 지연 27건, 진료 거절 6건, 진료 예약 취소 4건, 입원 지연 3건 등이다. 기존에 접수된 149건까지 하면 현재까지 집계된 환자 피해 사례는 총 189건이다.

보호막 없는 불법 진료에 환자들 불평·불만까지 감당
전공의들의 빈자리는 간호사들이 채웠다. 환자들의 진료·수술 스케줄 조정부터 전공의가 맡던 필수 시술까지 떠맡았다.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 중 한 곳에서 일하는 10년 차 간호사 A씨(33)는 "전공의 이탈 후 환자의 치료, 수술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면 그에 대한 설명을 간호사들이 하고 있다"며 "그로 인한 불평을 모두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이 받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구의 한 대형병원 소속인 4년 차 간호사 B씨(28)는 전날 두 환자가 동시에 응급 상황에 부닥쳐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고 했다.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진료 지원(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투입됐지만 그마저도 인력이 부족해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B씨는 "외과 중환자실의 환자에게 위기 상황이 발생해 PA 간호사들이 그쪽으로 다 몰렸는데 응급실에도 외상 중증 환자 1명이 발생했다"며 "각각 다른 병동에서 여러 응급 환자가 발생할지 모르는데 응급 때마다 한 곳으로 인력이 몰리지 않으리란 법이 없어 걱정이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의료대란, 정부 의과대학 증원에 의협 강력규탄 /사진=임한별(머니S)대한민국 의료대란, 정부 의과대학 증원에 의협 강력규탄 /사진=임한별(머니S)
전공의가 맡던 진료나 시술을 대신하다 보니 간호사들은 아무런 법적 보호 장치 없이 불법 진료에 내몰리는 상황이다. 의료 공백 탓에 환자들 안전도 크게 위협받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간호사들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를 대신해 채혈, 동맥혈 채취, 혈액 배양검사, 검체 채취 등 검사와 심전도 검사와 같은 치료·처치 및 검사, 수술 보조 및 봉합 등 수술 관련 업무, 튜브 관리, 병동 내 교수 아이디를 이용한 대리처방 등을 하고 있다.

'간호법' 반대하던 정부·의사…이제 와서 "간호사가 대신"
박민수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박민수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대체 인력으로 PA(Physician Assistant, 진료지원) 간호사를 활용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15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PA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두고도 잡음이 나온다. PA들의 지위가 현행법상 불법이어서다. PA는 의료 기관에서 수술이나 응급 상황에서 의사의 업무를 지원하는 간호사로 의료법이 규정하는 의료인에서 제외돼 있다.

의료법 제2조는 의료인을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의 다섯 직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앞서 간호법 제정을 두고 의사들이 극렬히 반대했던 터라 간호사들 사이 볼멘소리도 나온다. 간호법에는 간호사의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한 내용이 담겼는데 지난해 4월 국회를 통과한 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결국 폐기됐다.

A씨는 "간호법을 제정하려고 했던 이유는 간호사가 의사를 도와 하는 의료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받기 위해서였다"며 "그때 의사들은 '절대 안 된다'며 반대했고 정부도 이를 수용해 결국 폐지됐는데 이제 와서 정부와 병원은 '의사가 없으면 간호사가 하면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그간 의사들의 반대로 인해 PA 간호사들의 업무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무산됐다"며 "의사들은 현장을 떠나면서 PA 간호사는 합법적으로 일하지 못하게 하는 부당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 교수는 "정부는 의사들의 감독하에 PA들이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장기적으로 PA 자격을 공인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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