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문학 거장 필립 로스의 문학적 생존의 기예 [PADO]

머니투데이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2024.02.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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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필립 로스는 국내에도 많은 작품이 소개된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이지만 아직까지 그의 전기가 소개된 적은 없습니다. 필립 로스 본인이 자신의 전기 작가로 지정한 블레이크 베일리가 쓴 전기(아래 서평에서 다루는 책입니다)는 베일리 본인의 성 추문 의혹으로 처음에 책을 냈던 출판사가 절판을 시켰다가 나중에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작가라는 존재는 문단에서의 자기 영향력에 대해 고심하거나 자신에게 비판적인 평론가에게 이를 갈거나 하는 등, 우리가 작품을 통해 알게 되는 것 외에도 다채로운 면모를 갖습니다. 서평지 북포럼(Bookforum)에 실린 이 리뷰는 '성공'에 집착했던 문학 거장의 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블레이크 베일리가 쓴 필립 로스 전기의 표지. /사진제공=WW Norton & Company블레이크 베일리가 쓴 필립 로스 전기의 표지. /사진제공=WW Norton & Company


미국에서, 리얼리즘 혹은 리얼리즘과 경쟁하는 양식보다 더 지배적인 문학 양식은 커리어주의(careerism)다. 이는 어떤 판단이나 비방도 아니다.

소설가, 단편소설 작가, 심지어 시인조차 책을 쓰는 일만큼이나 경력을 관리하는 데 그야말로 수십 년을 헌신해야 했다. 제도 안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취하는 포즈나, 질의응답도 중요하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독자층을 키우고, SNS 계정의 팬들을 늘리며, 동료들 사이에서 문학계의 훌륭한 시민으로 보이는 일도 물론이다.



이제 모든 젊은 작가에게 이런 요소들 사이에서 얼마간 균형을 잡는 것은 삶의 일부다. 이는 편집자와 에이전트, 아울러 할리우드 거물과 벌이는 통상적인 거래를 상회하는 필요와 생존의 문제다. 과거에 작가가 자신을 신화화하던 방식은 이미 만료됐거나, 유해하게 여겨져 폐기됐다.

결국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전업 작가였던 커리어주의자만 남는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전업 작가였던 단 한 명의 커리어주의자가 서 있다. 지금까지 미국 문학에서 제일 독창적이고 궁극적인 커리어주의자는 필립 로스였다.



2018년 로스가 여든다섯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드와이트 가너는 뉴욕타임스에 한 문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글을 기고했다. 로스는 "권위를 갖고 있고, 다작을 하며, 또 백인이고, 남성인 소설가 세대의 마지막 최전방 생존자"였다.

1930년대에 태어난 중요한 미국 소설가 사인방(드릴로, 매카시, 모리슨, 핀천)이 아직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신경 쓰지 마라. 경력 초창기에 랄프 엘리슨과 함께 '소수자 글쓰기'에 관한 주제의 방송에 패널에 초대받았던 작가를 백인 남성으로 분류하는 일도 잊어버려라.(유대인은 그때도 여전히 변방에 있었다.)

희극적 과장이 가미된 자서전, 자전적인 메타픽션, 근 과거를 다룬 역사 소설 등 로스를 지탱해 온 방식이 무엇이건 간에, 이는 바로 지금 현재를 규정하는 방식이다. 로스는 종착점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시작점이다.


로스 이전에도 피츠제럴드나 노먼 메일러처럼 눈 떠보니 스타가 된 총아들이 있었다. 1960년 '굿바이, 콜럼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스물여섯 살 로스는 황금 시간대에 방영된 마이크 월리스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텔레비전 시대 신동 작가의 본보기를 세웠다.

프로그램 녹화 전날 아침에 로스는 뉴욕포스트의 젊은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기자는 로스의 소설을 "유대인 자기혐오의 전시"라고 힐난한 비평가에 대해 질문했다. 몇 주 후, 로스는 로마에 머무는 동안 송달받은 우편물로 전에 진행한 인터뷰를 읽었다. 기사에서 로스는 저 비평가가 "나를 왜 미워하는지에 대한 책을 써야 한다. 그건 나 자신과 그에 대한 통찰을 줄 거다."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었다.

필립 로스 전기의 작가 블레이크 베일리는 당시에 그가 했던 말을 인용한다. "그때 그 자리에서 나는 공적인 커리어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당시에는 그 발언이 희망 사항에 불과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돌이켜보면, 로스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솔직하지 못했다. 대중의 시선에서 물러나기는커녕, 로스는 장장 수십 년에 걸친 대중적 이미지 관리 캠페인에 착수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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