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로 암 예측…글로벌 빅파마, 너도나도 '액체생검'

머니투데이 홍효진 기자 2024.02.2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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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사진=윤선정 디자인기자


로슈 등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가 수천억 원의 대규모 투자를 이끌며 '액체생체검사'(이하 액체생검) 시장선점에 나서고 있다. 과거 미국 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사기 사태로 액체생검 시장의 신뢰도도 큰 타격을 입었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차세대 진단기술인 액체생검의 시장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22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액체생검 바이오 벤처기업 프리놈은 지난 15일 시리즈F 투자라운드에서 2억5400만달러(약 3400억원)의 대규모 펀딩에 성공했다. 이번 투자는 빅파마 중 한 곳인 스위스 제약사 로슈가 주도했고 로슈를 포함해 앤드리슨호로위츠, 아크인베스트, 애로우마크파트너스 등 20개사가 참여했다. 특히 세계 체외진단시장의 리더로 꼽히는 로슈는 2019년 프리놈의 시리즈B 라운드부터 지금까지 모든 투자에 참여했다. 미국 데이터분석기관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시리즈F 라운드까지 포함한 프리놈의 누적 투자금은 총 13억5300만달러(약 1조8000억원)다.



해외에서도 각축전을 벌이는 액체생검은 조직생체검사(조직생검) 없이 혈액이나 소변, 뇌척수액 등 체액 속 DNA를 분석, 암 발생위험을 조기예측하는 차세대 진단기술이다. 조직절제 없이 검체를 얻을 수 있어 수검자의 불편감을 덜면서도 모든 부위의 조직검사가 가능하다. 액체생검은 2015년 미국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사기극으로 불리는 '테라노스 사태'로 더 잘 알려졌다. 당시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대표는 단 몇 방울의 혈액만으로 250여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며 만능진단키트의 존재를 강조, 기업가치를 10조원까지 끌어올렸으나 끝내 거짓으로 드러났다.

'사기극'이란 오명에도 액체생검 시장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긍정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전세계 액체생검 시장규모는 2022년 기준 47억2000만달러(약 6조3000억원)로, 2032년에는 182억8000만달러(약 24조4000억원)로 불어날 전망이다. 로슈는 2016년 자체개발한 비소세포성 폐암 액체생검 진단키트 관련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을 받는 등 이 분야의 선두주자 중 한 곳이다. 최근 몇 년간 액체생검 기업 프리놈에도 적극 투자했다. 2022년 1월 시리즈E 투자 당시 2억9000만달러(약 3500억원)도 베팅했다.



글로벌 1위 액체생검 기업인 미국 가던트헬스는 전세계 60개국, 약 25만명의 고형암환자에게 자사 액체생검 서비스 '가던트360'를 제공한다. 지난해엔 한국 기업 루닛과 암진단 제품의 국내 유통계약을 하기도 했다. 또다른 미국 기업 그레일은 혈액 속 메틸화 분석으로 50종 이상의 암을 진단하는 자사 플랫폼 '갤러리'를 통해 시장을 확대 중이다. 2021년 출시된 갤러리는 1년 만에 매출 약 800억원을 기록했다.
국내에선 마크로젠, 싸이토젠, 아이엠비디엑스 등이 액체생검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국내 유전체분석 시장점유율 1위 마크로젠은 2017년 액체생검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근엔 CTC(순환종양세포) 기반 액체생검 기업 싸이토젠과 정밀의료기술개발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협력 중이다. 아이엠비디엑스는 액체생검으로 ctDNA(순환종양유전체)를 분석, 암 등을 진단하는 기업으로 현재 IPO(기업공개) 절차를 밟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암종별 진단의 정확도가 높지 않은 경우가 있다 보니 검사기준의 표준화 과정과 임상시험을 통한 검증이 우선"이라며 "진단의 정확도를 높인다면 환자 맞춤형 진료로 불필요한 치료 등 부작용을 최대한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환자 편의성을 높인 액체생검 분야의 전망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글로벌 브랜드 파워는 미국 기업이 장악했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쉽지 않은 영역"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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