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 0.6배 현금부자 SK이노, 밸류업 열외이유 [밸류업 종목대해부]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24.02.2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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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종목대해부]①SK이노베이션

편집자주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계기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오히려 프리미엄으로 전환할 것이란 전망이 잇따릅니다. 짠물배당,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지배구조 재편, 밸류트랩 같은 주가 역선택 등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한국 기업들의 본질가치가 재조명되고 주가수준도 한단계 레벨업 될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을 밸류업 종목들의 현황과 디스카운트 요인을 면밀히 분석해보겠습니다.

PBR 0.6배 현금부자 SK이노, 밸류업 열외이유 [밸류업 종목대해부]


저PBR(주가순자산비율) 투자 열풍 속에서도 옥석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때마다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기준이 있다. 낮은 PBR뿐 아니라 풍부한 현금성자산과 원활한 유동성, 안정적인 재무상태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PBR이 개선되기 위해선 이익이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으로 분모에 해당하는 자본을 줄일만한 여력이 충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주가의 하방을 막아주는 안정적인 재무상태 역시 중요하다.



주가가 오르기 위한 좋은 조건들을 갖췄어도 여전히 저평가 상태에 빠져있는 기업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SK이노베이션 (106,700원 ▼800 -0.74%)이다. 이유가 뭘까.

낮은 PBR, 풍부한 현금, 안정적 재무구조 3박자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저PBR 옥석가리기의 기준들을 고루 갖춘 몇 안되는 종목 중 하나다. 현재 PBR는 0.57배에 불과하고 현금 및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3조5193억원이다. 현재 시가총액(12조4914억원)보다 많은 현금성자산을 보유 중이다.



같은 기간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2조7540억원으로 풍부한 유동성을 갖췄다. 부채비율(자본 대비 부채 비율)은 174.8%, 유동비율(유동부채 대비 유동자산 비율)은 122.9%로 재무상태도 안정적이다. 갑작스런 유동성 위기에 빠질 우려가 그만큼 적다.

지난해 3분기까지 순이익을 연율로 환산한 ROE(자기자본이익률)는 2.1%다. PBR과 ROE가 낮다는 건 자본을 그만큼 비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바꾸어 말하면 주주환원 확대로 자본 효율성을 높여 PBR과 ROE를 개선시킬 여력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주환원도 강화하는 추세다. 2022년 중장기 주주환원 계획을 통해 연간 배당성향을 30% 이상으로 올렸고 지난해에는 자회사 SK온 상장시 구주매출 재원을 활용한 특별배당과 SK온 주식지급 등 새로운 주주환원 계획을 공개했다. 지난 5일에는 7936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하기도 했다.


오는 26일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될 예정인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주주환원 확대를 통해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종목 중 하나로 SK이노베이션을 꼽기도 했다.

조재운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실행으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정상화 압력이 발생하면 주주가치 제고 정책을 선택하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라며 "그럴 확률이 높은 기업은 현금성자산이 많고 현금흐름이 풍부하며 부채리스크가 낮은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대신증권이 선정한 주주가치 제고 정책을 펼칠 확률이 높은 20개 기업 중 하나에 포함됐다.

저PBR 열풍 소외된 SK이노베이션의 딜레마
SKBA(SK배터리아메리카)의 조지아 공장. 왼쪽이 조지아 2공장, 오른쪽이 조지아 1공장SKBA(SK배터리아메리카)의 조지아 공장. 왼쪽이 조지아 2공장, 오른쪽이 조지아 1공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저PBR 열풍에서 철저히 소외돼 있다. 올들어 주가는 11.55% 하락했는데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0.07%)보다 못하고 다른 저평가 업종인 금융, 지주사, 자동차 등에는 한참 뒤진다.

증권가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주가 부진에 한 목소리로 자회사 SK온의 실적 부진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매출 대부분이 정유·화학에서 나오고 있지만 기업가치의 상당부분은 성장 가치가 높은 2차전지 회사 SK온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차전지는 초기 투자비용 높은 장치산업인 만큼 당장 흑자가 나오기 어렵다. 흑자를 내기까지 지속적으로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배터리 수율을 일정 수준 이상 높일 수 있는 기술적 노하우도 중요하다. SK온은 국내 배터리셀 후발주자로서 앞선 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진행 중이다.

SK온은 2022년 1조72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563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에서는 매년 1조원이 넘는 현금 유출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까지 누적 결손금은 1조9294억원에 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성장이 지속될 것 같았던 전기차 시장이 점차 둔화하면서 2차전지 업황은 큰 침체를 맞았다. 업계는 올해 상반기까지 2차전지 업황의 유의미한 반등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메탈가 하락에 따른 ASP(평균판매단가) 감소가 올해 1분기까지 이어지면서 상반기에 SK온 영업이익 흑자전환은 어려워 보인다"며 "판매량도 주요 고객사 재고소진으로 감소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추가적인 주주환원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도 있다. 지난 5일 실시한 자사주 소각 규모는 SK이노베이션 기보유 자사주의 90%에 해당한다. 주주환원을 위한 보유현금은 충분하지만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 역시 필요하다는 딜레마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그린산업 전환과 미래에너지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지난해 1조14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소형모듈원전(SMR) 전문기업 '테라파워'와 폐기물 가스화 전문기업 '펄크럼 바이오에너지' 등에 투자했고 경기 부천시에는 환경·에너지 분야를 연구하는 그린캠퍼스 조성을 준비 중이다. 주요 사업인 정유·화학이 중장기적으로 자산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좌초자산이라는 점에서 미래에너지 투자는 멈출 수 없다.

주주환원? 주가 반등? SK온에 달렸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는 주주환원 확대 보다 SK온의 성장 가치와 미래 신사업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게 증권가의 시각이다. 당장의 펀더멘털 개선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현 주가가 역사적 저점에 근접했고 SK온 상장 이후 추가적인 주주환원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역대 PBR 범위는 0.5~1.5배다. 코로나19로 주가가 폭락했던 2020년에 최저 0.33배까지 떨어졌던 것을 제외하면 0.5배 이하로 내려간 적은 거의 없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과 비배터리 사업 실적을 고려하면 현재 주가 레벨은 과매도 구간"이라며 "실적과 동행하는 완만한 주가 회복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이 밝힌대로 SK온이 상장하고 나면 추가로 주주환원을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SK온 실적 회복 이후 성공적인 상장과 구주매출을 통한 재원으로 주주환원을 확대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제는 결국 SK온의 실적 회복"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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