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10개 샀는데 2만원대"…알리·테무 손해봐도 계속 팔았더니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4.02.2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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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가 대량판매, 손익분기 후 가격인상"
중개자·대리인 철저 배제해 원가 낮춰…
여전히 저가물품 중심, IP문제 등도 변수

최근 스페인에 문을 연 알리익스프레스 플라자. /사진=바이두 캡쳐최근 스페인에 문을 연 알리익스프레스 플라자. /사진=바이두 캡쳐


"한 고객에게 하나의 SKU(상품수, Stock Keeping Units)를 판매하면 손해다. 하지만 여러 SKU를 한꺼번에 구매하게 만든다면 언제가 됐든 이익을 낼 수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판매자이며 블로그를 운영 중인 티안민이커머스 대표가 온라인 플랫폼에 올려 15만건 읽힌 이 글은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초저가 판매전략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일견 당연한 얘기지만 저런 전략이 가능하기까지는 중국의 엄청난 생산력과 즉시 재고 파악이 가능한 온라인 네트워크, 중간유통업자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직거래 시스템이 복합적 역할을 했다.



중국 온라인쇼핑플랫폼들은 미국과 한국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내수 부진 충격을 메우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4% 늘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주문은 60%나 늘었다. 같은 기간 테무를 보유한 핀둬둬(?多多)의 이익은 23% 늘었고 매출은 9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내수경기 침체에 신음하는 중국 경제엔 말 그대로 가뭄의 단비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가격이 가능할까
중국 내 한 알리익스프레스 물류센터에서 상품들이 분류되고 있다./사진=바이두 캡쳐중국 내 한 알리익스프레스 물류센터에서 상품들이 분류되고 있다./사진=바이두 캡쳐
10여개의 물건을 담아도 끽해야 20달러(약 2만7000원) 안팎.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의 상상을 초월하는 초저가는 어떻게 가능할까. 알리익스프레스는 공식적으로 새로운 대외 시장 개척, 최첨단 제품 혁신, 심도 있는 서비스 확장 등을 이유로 설명하지만 티안민이커머스 등 중국 플레이어들이 보는 비결은 손해를 감수하는 몰아팔기, 적극적 고객 유인, 공장직거래 등이다.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가 원래 10달러여야 할 상품을 1~2달러로 할인해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판매자나 플랫폼이 손해를 보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할인을 통해 판매량이 늘어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정 판매량에 도달해 손익분기점을 넘고 나면 할인을 중단하고 원래 가격으로 판다. 뒤에 접속한 고객들은 인상적 판매기록을 보고 제품을 신뢰한다. 그 중 일부가 비싸진 가격에도 구매를 결정한다.

같은 맥락에서 인기상품을 활용해 트래픽을 유도하는 전략도 유효하다. 역시 수익은 포기한 가격에 인기상품을 배치하는데, 중국 온라인업계에선 이런 걸 '교통명소'라고 부른다. 고객이 다른 제품을 구입하도록 매장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인기상품이 1000명의 고객을 불러오고 이 중 2~5%만 다른 상품을 구입해도 수익성이 확보된다는 나름의 공식도 있다.

이런 미끼상품은 광저우 등 공업밀집지역에서 사실상 무한 생산돼 창고에 쌓여있는 저가 물품이 대부분이다. 어느 창고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실시간 확인된다. 알리익스프레스는 물건을 파는 판매자들을 이런 제조업체와 직접 연결해준다. 중개자와 대리인은 철저히 배제된다.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중국 인건비는 싸고 물류비도 선진국에 비해 저렴하다. 대량주문·운송으로 가격을 한 차례 더 낮춘다.


한국에 물류거점을 대거 구축중인 이들 기업을 공장에 쌓인 미끼 공산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 생태계를 완전히 장악하기 전까지는 저가 공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유통업체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중국 이커머스라고 모든 품목이 다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가 줄어들고 있는 품목을 보면 약점이 보인다.

다 잘 팔리는 건 아냐…싸구려의 딜레마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한국대표가 6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AliExpress(알리익스프레스) 지적재산권 및 소비자보호 강화 발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임한별(머니S)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한국대표가 6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AliExpress(알리익스프레스) 지적재산권 및 소비자보호 강화 발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임한별(머니S)
지난해 잘나갔던 알리익스프레스지만 주요 품목 중 실적이 줄어든 품목은 총 9개다. 그 중 방문자가 23.6%로 가장 많이 줄어든 품목이 바로 가구였다. 실제 구매자 수는 44.9%나 줄었다. 가구를 포함한 9개 품목 평균 방문자 수 낙폭이 14% 정도이니, 가구 판매가 얼마나 많이 줄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거래량 낙폭이 가장 큰 품목은 건강보조제, 의료기기 등 건강관리 품목으로 28.7%나 빠졌다.

잘 팔리는 품목도 미시적으로 분석해보면 달리 보인다. 지난해 상반기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품목은 디지털 품목인데 전체 매출의 무려 29%를 차지했다. 중국 측이 이커머스의 디지털화를 홍보할 때 빼놓지 않는 부분인데, 말은 디지털이지만 휴대폰케이스와 필름, 충전용 케이블 등이 주류였다. 의류와 가정용품, 자동차 액세서리 등도 아직 품질에 목 매지 않아도 되는 저가품목이 메인이다.

한 현지 마케팅 전문 블로거는 이에 대해 "재고를 오래 쌓아놓을 수 없으며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고 품질에 민감한 제품은 여전히 중국 온라인플랫폼에서 선호되지 않는다"며 "한국이나 유럽, 미국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내에서 오히려 인상적인 건 신선식품 영역이다. 알리바바가 보유하고 있는 신선식품 유통 플랫폼인 허마센셩(盒馬鮮生)에서는 킹크랩 등 고가의 제품들도 많이 팔린다. 촘촘하게 갖춰진 배송망을 통해 신속하게 배달이 이뤄진다. 다만 한국과는 다른 저렴한 인건비가 핵심 경쟁력이라는 점에서 알리바바의 한국 신선식품 배송 시장 진출에는 여전히 변수가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IP(지적재산권) 이슈는 상황에 따라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IP에 둔감한 중국 현지에서도 엄연한 등급이 있다. 실제 중국에서는 알리바바에 이어 이커머스 전체 2위인 징둥(京東), 타오바오(淘寶, 알리바바 소유), 핀둬둬 순으로 정품 비율이 높다는 게 정설이다. "짝퉁을 사기 싫으면 타오바오나 핀둬둬를 통해서 사지 말라"는 말도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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