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차려 돈 쓸어 담는 준재벌…동네빵집 대신 애먼 배만 불렸다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유예림 기자 2024.02.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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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10년된 빵집규제, 올해는 바뀔까

편집자주 동네 빵집과 500미터 안에는 파리바게트, 뚜레쥬르가 들어설 수 없다. 골목상권 보호를 이유로 2013년 시작된 빵집 규제 때문이다. 출점 규제로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의 경쟁은 사라졌다. 대신 카페, 편의점, 대형마트까지 빵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역 유명 빵집은 온라인으로 전국 배송한다. 10년된 빵집 규제가 올해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오른다. 달라진 시장 환경에 맞춰 규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동네빵집 보호하자고 입점 제한했더니...기업형 빵집만 우후죽순
빵집 차려 돈 쓸어 담는 준재벌…동네빵집 대신 애먼 배만 불렸다


#. 초등학생 자녀 둘이 있는 직장인 A씨 부부는 주말 교외에 있는 인스타그램에 소개된 베이커리 카페를 들렀다 두번 화들짝 놀랐다. 첫번째는 주말 오후 시간 주차장에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붐벼서다. 4인 가족이 음료와 먹을만한 빵을 몇개 고르고 나니 가격이 10만원을 훌쩍 넘어선 것도 충격이었다.

A씨는 "유명한 빵집이라고 해서 일부러 들렀는데 비싼 가격에도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밥보다 비싼 빵을 먹고 나니 소화가 잘 안됐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2013년 정부가 동네 빵집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의 프랜차이즈형 제과점 확장을 막는 제과점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2019년부터 자율협약)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기업형 베이커리의 폭풍성장이다.

최근 10년간 주로 지대나 임대료가 낮은 도심 외곽에서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건물 전체를 사용할 정도로 대형화된게 특징이다. 적게는 100평에서 1000평 넘게 운영하는 곳도 있다.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카페로 등재된 '포지티브 스페이스566'나 1만평 규모의 한옥 카페인 '혜경궁 베이커리'가 대표적이다.



더티트렁크, 포레스트아웃팅스, 테라로사(양평 서종), 메이드림, 문지리 535, 본누벨 베이커리, 어 로프 슬라이스 피스, 몬떼 델피노, 씨앤비베이커리카페 등도 이름난 유명 베이커리다. 이들 자체가 브랜드화 되다보니 이런 빵집을 찾아다니는 '빵지순례'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프랜차이즈는 출점제한으로 드문드문 생기고 동네빵집은 사실상 자취를 감췄지만 여전히 빵집은 늘어나는 추세다. 국세청에 따르면 제과점업으로 등록한 신규 사업자는 2017년 3405명에서 계속 증가해 2021년 4968명까지 늘었다. 2022년 4427개로 다소 주춤했지만 전년도 급증에 따른 일시적 감소라는 분석이다.

더군다나 기업형 베이커리는 대부분 브런치카페처럼 카페와 레스토랑을 겸비하고 있어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한 사례가 더 많다. 때문에 이들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전국에 수천개의 기업형 베이커리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베이커리 카페./사진=이미지투데이베이커리 카페./사진=이미지투데이
기업형 베이커리 상당수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창업과는 차원이 다른 자본력이 필요하다. 토지 매입부터 건축비, 조경과 인테리어 등에 많은 비용이 드는 까닭이다. 1억원에서 5억원 안팎인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창업과 달리 수십억원에서 수백원이 든다는게 창업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보다 더 큰 자본이 베이커리 시장에 참여한 셈이다.

베이커리와 무관한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일례로 패션기업 에스디인터내셔날의 나인블럭이나 이랜드그룹의 프랑제리 등은 베이커리 카페로 유명세를 탄 케이스다.

기업형 베이커리는 '사모님 퇴직연금'이란 별칭도 따라붙는다. 큰 돈이 들긴 하지만 주로 서울 외곽 지역에 토지와 함께 매입하기 때문에 개발 호재에 따라 부동산 시세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나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등 재벌들이 여론에 밀려 베이커리 카페 사업에서 손을 뗀 이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기업 오너일가 등 준재벌들이 많이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식사업기업은 회장님 사모님 명의로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 중인데 창업 5년여만에 3배 이상 가치가 상승했다는 후문이다.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골목상권을 대표하는 동네빵집을 보호하기 위해 프랜차이즈 확장을 억제했더니 기업형 베이커리가 우후죽순 생겨났다"며 "출점제한이나 거리제한을 받지 않으면서 비싼 가격에 제품을 판매해도 비난받지 않는 빵집공룡이 지역별로 이 등장한 셈"이라고 말했다.

실효성 논란 빵집 출점 제한…해외와 비교해보니

빵집 차려 돈 쓸어 담는 준재벌…동네빵집 대신 애먼 배만 불렸다
10년간 이어진 '빵집 규제'의 실효성 논란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처럼 소수 품목만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거나 대기업의 특정 업종 진출 제한을 최소화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15일 관련 업계, 학계 등에 따르면 국내와 비슷하게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는 제도를 마련한 나라로는 일본이 꼽힌다. 다만 일본과 더불어 미국, 유럽 등은 국내처럼 특정 업종이나 품목을 지정해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자체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일본은 '중소기업의 사업 활동 기회 확보를 위한 대기업자의 사업 활동 조정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해당 법은 대기업에겐 중소기업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을 의무를, 중소기업에겐 대기업의 동종 업종 진출에 조정 권고를 신청할 권리를 부여한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차단보단 주변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중소기업단체는 대기업의 사업 개시로 악영향을 받을 경우 소관 부서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

조사에 따라 사업 제한이 인정되면 정부가 대기업에 △사업 개시 시기 조정 △사업 규모 축소 등을 권고하는 방식이다.

다만 두부, 탄산음료 '라무네' 등 일부 품목에만 규제를 적용해 운영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해당 법이 소비자 선택권 침해, 가격 인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단 점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김민호 KDI 연구위원은 "국내는 어느 업종이든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데 일본은 일부 소수 품목에만 해당 법을 적용해 대기업의 참여 제한을 최소화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인도는 국내와 비슷하게 소기업 적합 업종을 지정해 보호 제도를 운영했으나 소비 환경 변화 등의 상황을 고려해 2015년에 모든 품목의 보호 지정을 해제했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 중기 적합업종 제도와 가장 비슷하게 운영했던 나라가 인도"라며 "인도도 우리나라처럼 진출 제한 품목을 구체적으로 정했다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분석 결과가 꾸준히 나와서 점차 지정된 품목을 없앴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2011년 중기 적합업종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난해 4월까지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품목은 총 113개다. 이 중 108개는 지정 기간이 만료됐다. 일부 업종은 제과점처럼 상생 협약으로 전환돼 규제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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