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상장허들, 못 넘는 바이오기업들

머니투데이 홍효진 기자 2024.02.1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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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올들어 바이오 기업들이 상장 허들을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시고 있다. 바이오산업 '게임체인저'(시장 판도를 바꿀 만 한 제품)로 불리는 ADC(항체-약물적 합체) 플랫폼을 보유한 피노바이오 비상장도 9개월간 지지부진한 예비 심사를 버티지 못하고 자진 철회했다. 앞서 지난해 '파두 사태' 이후 금융 당국이 재무정보 투명성 강화에 나서면서, 12월 엔솔바이오사이언스 (4,815원 ▲320 +7.12%)를 비롯해 연초 하이센스바이오 비상장 등 기업 특성상 두드러진 매출이 없는 바이오사들이 잇따라 상장 허들을 넘지 못하고 있다.

"너도? 나도"…바이오기업, 연초 상장 문턱 못 넘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뉴스1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뉴스1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피노바이오를 비롯해 앞서 연초 하이센스바이오, 코루파마 비상장도 거래소 상장 문턱에서 주저 앉았다. 특히 피노바이오는 업계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ADC 플랫폼을 보유, 셀트리온 (176,600원 ▼800 -0.45%)과 ADC 신약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하며 주목받았다. 차세대 항암 기술로 평가받는 ADC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대규모 M&A(인수합병)와 활발한 기술 투자로 시장 규모를 키우고 있다. 피노바이오는 2021년 ADC용 플랫폼 '피놋-ADC'(PINOT-ADC)를 독자 구축, 이를 활용해 'PBX-001' 등 다수 ADC 후보물질을 보유하는 등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피노바이오는 상장 예심 과정에서 주요 파이프라인 임상 로드맵 등의 구체성에 대해 거래소를 확신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노바이오는 지난해 5월4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심 청구를 신청한 뒤 무려 9개월간 심사가 지연됐다. 1년 가까이 심사가 미뤄지면서 회사의 R&D(연구개발) 성과를 적정 밸류에이션으로 반영하기가 어려웠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앞서 지난달 29일 하이센스바이오도 상장 예심 청구 6개월 만에 자진 철회했다. 치과 질환 치료 기술을 연구·개발 중인 하이센스바이오는 핵심 파이프라인인 시린이 치료제 후보물질 'KH-001'의 임상 2a상 결과를 바탕으로 상장예심을 청구했지만, 기술성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 예심 당시 거래소는 하이센스바이오의 임상 데이터 등에 유효성 부분에서 회사와 시각 차이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센스바이오 관계자는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상장 준비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필러 등을 제조하는 바이오헬스기업 코루파마 역시 지난 5일 상장 예심을 자진 철회했다. 코루파마의 경우 기술특례 상장은 아니었으나, 경영진의 상장차익 증여의제가 철회 요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증여의제는 법률상 증여는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증여와 동일한 효과가 있어 세법상 증여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코루파마는 최대 주주 등에 증여세가 과도하게 부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상장 시기를 재조정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두 사태' 후폭풍…'뻥튀기 상장' 막으려 눈높이 올린 거래소
바이오 기업들이 연이어 상장 예심 허들을 넘지 못하면서, 업계에선 '파두 사태' 이후 거래소의 심사 기조가 전보다 깐깐해졌단 반응이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 IPO(기업공개) 대어로 꼽혔던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파두 (20,150원 ▲1,210 +6.39%)는 같은 해 8월 코스닥 입성에 성공했지만, 실적 공개 후 공모가의 반토막 수준으로 주가가 내리꽂혔다. 당시 파두 사태로 촉발된 '뻥튀기 상장'을 거르기 위해 금융 당국이 IPO 시장 재무정보 투명성 강화에 나서면서, 거래소의 상장 절차도 까다로워졌단 분위기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 심사 기준은 절차나 심사 주안점 등이 크게 바뀐 건 없다"면서도 "다만 지속적인 매출이 상장 예심에서 중요한 평가 지점인데, 매출이 없는 경우가 특히 많은 바이오 기업들의 경우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는 환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진 철회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기업 특성상 신약 개발이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계속 비용이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매출이 아닌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으로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장 예심에서 거래소를 만족시키기 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되진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작년 성과를 기준으로 올해 상장을 준비했던 기업들은 거래소의 추가 요구가 있으면 자료를 보완해야 하다 보니 예심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면서도 "거래소의 기준을 맞춰야 하므로 단기적으로는 이슈가 될 수 있겠지만, 상향된 기준에 따라 상장을 재추진하려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상장이 막히는 상황이 장기화되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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