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의 역사와 미래: 베버, 트럼프, 그리고 AI [PADO]

머니투데이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2024.0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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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카리스마. 모두가 즐겨 사용하지만 그 정확한 뜻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단어입니다. 실은 바로 그러한 모호함이 카리스마가 가진 마력이기도 하죠. 카리스마는 신비로운 리더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 리더가 대중의 숨겨진 힘을 이끌어내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대중은 단지 합리적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플라톤의 '향연'이 잘 설명했듯 인간에게는 합리와 이기를 뛰어넘는, 불멸을 향해 희생을 각오하는 열정이 숨어있습니다. 노에마 매거진의 2023년 5월 기사는 문학, 철학, 사회학을 넘나들며 카리스마의 역사를 파헤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카리스마가 AI와 알고리즘에도 깃들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어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픽=PADO/그래픽=PADO


1929년 독일의 한 일간지가 "이젠 전설이 된"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소개하는 사진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실린 인물에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러시아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 인도의 반식민주의 운동가 마하트마 간디가 있었다.

그 옆에는 오랫동안 잊혀진 독일 시인의 사진도 있었다. 그의 이름은 슈테판 게오르게. 하지만 추종자들은 그를 '스승'이라 불렀다.



그해 게오르게의 나이는 61세. 일정한 거처도 없었고 그의 사생활과 과거에 대해 알려진 바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추종자들은 개의치않았다. 그들에게 게오르게는 인간 그 이상의 존재, "우주적 자아", "자신의 존재를 반추하는 정신"이었다.

1차 대전 패배의 굴욕과 전통적인 정치 및 문화 제도에 대한 믿음의 붕괴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게오르게는 자신의 시를 통해 대안적인 현실을 설파했다.



게오르게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독일인들을 매료시켰다(많은 사람들이 후회하며 나중에 거리를 두게 되긴 했지만). 발터 벤야민은 게오르게와 마주치길 기대하며 그가 자주 찾는 하이델베르크의 공원 주변을 몇 시간 동안 배회했다.

"나는 슈테판 게오르게로 개종한다." 젊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경제학자 쿠르트 싱어는 철학자 마르틴 부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오늘날 게오르게보다 더 순수하고 창의적으로 신성을 구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회학의 창시자로 손꼽히는 막스 베버는 1910년 슈테판 게오르게를 만나자마자 호기심을 가졌다. 그는 게오르게의 메시지에 설득되지 않았지만--베버는 그가 '다른 신'을 섬긴다고 느꼈다--그가 기이할 정도로 추종자들을 사로잡는 데 매료됐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그는 주변에서 성장하고 있는 게오르게의 '컬트'를 "예술적 세계관"으로 결속된 "현대적 종교 "라고 설명했다.

그해 6월, 그는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게오르게를 "진정한 위대함의 특성들과 함께 그로테스크에 가까운 특성들"을 함께 지닌 인물로 묘사하며 자신이 목격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당시 매우 드물게 사용되던 단어인 '카리스마'를 사용했다.



당시 카리스마는 주로 기독교 신학 일각에서 사용되는 모호한 종교적 개념이었다. 거의 2000년 전에 바울이 쓴 신약성서에서 예수나 모세와 같이 하느님의 능력이나 은혜에 충만한 인물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바울은 이 단어를 고대 그리스어 '카리스(charis)'에서 차용했는데 일반적으로 은혜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베버는 카리스마가 기독교 초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광범위한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했고, 이후 저서에서 이 개념을 천 번도 넘게 사용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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