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웨이브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사상검증구역’)을 보면서 수십 번은 터져 나오는 말이다. 물론 머리로는 안다. 이 지구상의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르다는 걸. 방탄소년단도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world’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어느 정도 자신이 생각하는 보편성을 기대하게 마련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와 궁극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상검증구역’은 그런 믿음을 보기 좋게 깨부수며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지난 1월 26일 공개를 시작한 ‘사상검증구역’은 국내 최초로 이념 서바이벌을 표방하는 예능이다.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 4개 분야에서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열두 명의 출연자가 커뮤니티 하우스에서 9일간 합숙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와중 권력을 차지하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서바이벌 예능은 대중에게 쉬이 통하는 스테디셀러 상품이지만, 출연자들의 이념과 사상, 가치관을 토대로 하는 예능은 처음이기에 신선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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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검증구역’의 또 다른 재미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공동체, 더 나아가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고 지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 출연자들은 합숙 기간 동안 자신의 신념 코드와 점수를 최대한 숨기고 게임에 참여해 공동체의 상금을 적립하는데, 이 상금 분배와 탈락자 결정에 강력한 권한을 가지는 권력자 ‘리더’를 매일 투표로 선출하게 된다. 자연히 출연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세력을 형성해 스스로 리더가 되거나 내 편을 리더로 만드는 정치 행위를 하게 된다. 단순히 누가 더 권력을 쥐고 누가 더 상금을 많이 축적하는가를 넘어, 공동체 사회에서 상금은 어떻게 분배하고 공금(세금)은 어떤 비율로 징수해야 하는지 등 살아남기 위한 모든 행위 하나하나가 정치와 직결돼 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게 이 프로그램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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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명제가 제시될 때마다, 공동체가 어떤 난관에 직면할 때마다 입주자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보면서 ‘과연 나라면?’ 하고 대입해 보면서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사상검증구역’에서 얻는 효과. 이건 ‘솔로지옥’이나 ‘피지컬: 100’ 같은 예능을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시청자의 자세다. 프리지아나 덱스 뺨치게 매력적이거나 추성훈이나 장은실처럼 빼어난 피지컬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솔로지옥’이나 ‘피지컬: 100’ 같은 프로그램에서 ‘과연 나라면?’ 하고 대입해 보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사상검증구역’은 그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도 한마디 거들고 싶어지는 다양한 주제와 상황을 제시하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구경꾼의 자세를 벗어나 적극적인 관찰자의 자세를 취하게 만든다.
11부작 예정인 ‘사상검증구역’은 2월 8일 현재 4화까지만 공개됐지만 공개된 분량에서만 어마무시하게 많은 대화의 소재를 건질 수 있다. 심지어 연휴가 시작되는 2월 9일에는 5~8화가 한꺼번에 공개된다. 서로 다른 이념의 사람들끼리 토론과 조율 등으로 충분히 소통하고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걸맞게 이번 설 연휴에 모일 가족들과 함께 시청하는 건 어떨까 싶다. ‘엄마/아빠와는 정치 얘기 하면 싸우니까 안 해’ ‘언니/오빠랑은 도무지 말이 안 통해’ 하는 가족이라면 ‘사상검증구역’을 보면서 보다 생산적인 대화를 건져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너 이번 총선 때 국힘 뽑을 거야 민주당 뽑을 거야’ 같은 ‘누구 편이야’ 단순무지한 취조 말고 ‘세금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은 어느 정도 선이어야 하는가’ 같은 보다 품격 있고 고차원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물꼬는 되어줄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