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기업 독점 막겠다는데…"똥물 낙수효과" 스타트업도 반발한 이유

머니투데이 세종=유재희 기자, 최우영 기자, 이정현 기자, 변휘 기자 2024.02.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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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플랫폼법이 온다 (下)

편집자주 거대 플랫폼기업의 시장 독점을 방지해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플랫폼경쟁촉진법. IT를 넘어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이끌어 온 네카쿠배(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는 한목소리로 반대에 나섰다.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환영할 것 같은 IT 스타트업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시장 환경을 풍성하게 만든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법안 추진 배경을 설명해도 이들이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하는 이유와 우려를 짚어본다.

"사전지정제 필요한지 검토"…한발 물러선 공정위, 왜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소상공인연합회 현장 간담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2024.1.2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소상공인연합회 현장 간담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2024.1.2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의 핵심인 '사전지정 제도'의 필요성을 재검토한다. 사전지정은 법상 4대 금지행위를 적용받는 독과점 플랫폼을 미리 선별하는 작업이다. 경쟁당국이 제정안에 대한 관계부처 협의를 마쳤음에도 업계의 반발, 미국과의 통상마찰 논란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플랫폼법 제정과 관련해 "사전지정 제도가 필요한지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공정위가 구상했던 플랫폼법은 정부가 사전지정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4대 반칙행위인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 대우 요구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사전지정 제도와 매출액·이용자 수 등 지정요건은 사실상 법안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위가 사전지정 자체를 재검토한다는 건 꽤 파격적이다.



조 부위원장은 "사전지정제도를 폐기하는 것은 아니고 플랫폼법 관련 이해관계자 등 의견 수렴 과정에서 지정제도 이슈에 대해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육성권 사무처장은 "특히 사전지정보다 업계 부담을 줄이면서 플랫폼 규율을 할 수 있는지 추가적인 검토를 하겠다"면서 "그 결과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선택지가 있으면 업계와 소통을 하면서 (제정안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열린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관련 부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11.22.[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열린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관련 부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11.22.
그간 이어져 온 업계 반발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으로도 반칙행위 규제가 가능한데 법안을 신설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었다.


공정위는 이에 맞섰고 사전지정을 통해 사건처리에 속도를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현행으론 플랫폼 독과점 행위에 대한 조사와 심의를 마치는데 2~3년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당국이 시정조치를 할때면 이미 해당 플랫폼이 시장을 독점화했다는 게 공정위 논리다.

육 처장은 지난달 브리핑에서도 "플랫폼법 제정이 늦어지면 공정위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플랫폼 시장의 특성상 기업들은 반칙행위를 해서라도 선두 사업자가 돼야 한다는 강한 유인을 갖게 된다"며 "한번 선두주자가 되면 그 관성이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플랫폼법의 제정 취지는 현재도 유효하다. 이날 조 부위원장은 "법을 제정하는 건 플랫폼이 반칙행위를 통해 성장하고 나서 수수료, 가격을 올리고 경쟁사가 시장에 들어오는 걸 막으면 그 피해는 국민이 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행법으론) 시장지배력이 큰 사업자를 지정, 경쟁 제한성을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부처 협의 관련해선 조 부위원장은 "충분히 했다. 플랫폼법 관련해서 큰 틀에선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육 처장은 "공감대가 형성됐는데도 법안 공개를 미룬 것은 업계나 학계 전문가분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니 학계 전문가들과 검토를 거쳐 업계 등 이해관계자와 만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미국과의 통상마찰 논란에 대해선 조 부위원장은 "미국 상공회의소와 국내와 동일한 수준으로 의견을 듣고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대로라면 플랫폼법 발표는 기약 없이 미뤄진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법 제정안을 장기간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조 부위원장은 "발표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어느 정도 검토해서 논의되고 만들어지면 그때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플랫폼법, 스타트업 크지 말라는 '전족' 같은 규제"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거대 플랫폼기업의 독점을 와해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유도해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돕겠다는 취지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플랫폼 경쟁촉진법(플랫폼법)을 추진중이다. 그런데 아직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플랫폼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사전 규제 성격의 플랫폼법이 한창 성장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전족'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200여개의 스타트업이 가입된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은 지난해 12월 27일 성명을 통해 플랫폼법 철회를 촉구했다. 이 법이 국내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코스포는 성명에서 플랫폼법에 대해 '유리 천장'이라고 칭했다. 코스포는 플랫폼법으로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공정위의 설명에 대해 '틀린 기대'라고 했다. 코스포는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정할 때 시가총액, 매출, 이용자수 등 정량적 요건에 더해 정성적 요건까지 고려하겠다는 게 공정위의 입장인데, 이러한 광범위한 규제는 예측 가능성을 현격히 떨어뜨려 스타트업의 시장 진출이나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어렵게 만든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이익을 내지 못하는 스타트업도 이용자가 많거나 거래 규모가 클 경우 규제를 당할 수 있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 업계는 공정위가 국내외를 불문하고 규제 대상을 지정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지적한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2010년대부터 구글 플레이스토어 등 글로벌 빅테크의 인앱결제 강제행위에 대해 스타트업들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했지만 행정력이 미치지 않으면서 변한 게 없다"며 "국내 스타트업에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악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스포 관계자 역시 "플랫폼법은 회사가 성장하면 더 많은 규제로 활동이 어려워질 테니 현행 수준을 유지하라는 '전족' 같은 조치"라며 "성장이 담보되지 않는 회사를 키워갈 이도, 투자할 곳도 없기에 국내의 혁신 스타트업이 고사하게 되면 그 이익은 글로벌 기업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플랫폼을 단순히 스타트업의 '경쟁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나 카카오 등의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성장하는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 플랫폼에 대한 규제로 네카오가 위축된다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에 쏟아지는 후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거대 플랫폼이라는 네이버나 카카오도 글로벌 시장에서 놓고 보면 구글이나 애플의 공세를 겨우 막아내고 있는 로컬 업체에 불과하다"며 "그나마 국내 스타트업들의 방패막이를 해주는 이들의 역할이 사라진다면 스타트업들이 외국기업에 더 종속되는 효과, 긍정적인 낙수효과가 아닌 '똥물 낙수효과'가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플랫폼법, 필요성·시급성 없다"…학계·전문가들 한목소리
거대 기업 독점 막겠다는데…"똥물 낙수효과" 스타트업도 반발한 이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추진중인 플랫폼 경쟁촉진법(플랫폼법)에 대해 학계와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플랫폼법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을뿐더러 만들더라도 EU(유럽연합)의 DMA(디지털시장법)를 본떠 만드는 것은 국내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상우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는 "플랫폼법 같은 규제 법안을 이렇게 급하게 처리하는 국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해외 사업자 역차별 문제가 아직 심각해서, 만든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없어 방향성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에서 자국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대한민국 정도인데 플랫폼법 같은 규제가 많아지면 자국 플랫폼의 존재 가치는 점점 사라지고 구글 등 해외 사업자 쪽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플랫폼 생태계에 종사하는 사업자들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DMA를 참조해 플랫폼법을 만들고 있는데, 목표가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플랫폼이 소상공인에게 갑질하고 있다는 가정이 들어있다"며 "업계의 현실을 모르고 DMA를 그대로 참조하는 것 같다. 플랫폼 시장은 양면적이라서 규제를 잘못하면 한쪽에 대한 규제가 다른 쪽까지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플랫폼법은 목적이 정당할 순 있지만 방법론적으론 부적절하다"며 "EU가 DMA를 강조하는 것은 EU 단일시장을 유지하면서 유럽 내 기업들을 보호하고 EU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자체 플랫폼이 있어 EU와는 반대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DMA의 경우 적용 대상이 미국과 중국 플랫폼 기업들인 반면 플랫폼법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해외 사업자도 규제한다고 하지만 그동안 공정위는 역외조항이 있음에도 해외 사업자를 규제하지 못했다"며 "국내 기업에만 규제가 적용되다 보면 해외 사업자들이 반사 이익을 얻어 국내 시장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시장과 유럽 시장은 다른데 시장 조사나 분석도 하지 않고 유럽과 같은 법을 만드는 것은 입법 사대주의"라며 "사전 준비가 제대로 안 됐으니 적용 대상도 계속 바뀌고 내용이 불명확하다. 법이 불명확할수록 시장은 불안정해져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도록 만든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최은진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보는 최근 보고서에서 △규제 도입 필요성 또는 시급성이 분명하지 않음 △사전 규제는 낙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사업자 스스로 성장 기회를 포기하도록 유인할 수 있음 △지배적 사업자 정량 요건 연구 부족 △규제에 당국이 관여할 여지가 높음 등의 이유로 플랫폼법 도입을 반대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한국법제연구원·산업연구원 등 세 기관도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제출한 협동연구보고서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엄밀한 분석 없이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정기적인 모니터링으로 불공정행위를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전략적 입장이나 전략이 상이한 다른 국가의 플랫폼 규제를 추종하지 말고 기존 규제를 재정비해 활용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플랫폼법' 질주…IT업계의 비빌 언덕 방통위·과기부는 '정중동'
거대 기업 독점 막겠다는데…"똥물 낙수효과" 스타트업도 반발한 이유
2020년 이른바 '플랫폼 갑질'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자 이듬해 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온플법)'을 정부 입법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온플법 발의에 한 달 앞서 방송통신위원회는 의원 입법으로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법'을 발의, 부처 간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했다.

공정위는 플랫폼 사업자들의 입점업체에 대한 불공정 행위와 경영활동 간섭, 보복 조치 등을 사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게 입법 취지였다. 그러나 방통위는 온플법과 전기통신사업법과의 중복 가능성 및 ICT(정보통신기술) 관련 규제인만큼 온플법 운영 주체는 방통위가 맡아야 한다고 맞섰다. 무엇보다 플랫폼 업체들도 중복 규제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교통정리 필요성이 제기됐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공정위와 방통위 간 주도권 다툼을 결론내지 못했다. 2021년 10월 당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부처 조율로) 한 개 법안으로 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며 "국회에서 한 개의 법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처 간 갈등은 국회에서도 이어졌다. 법안 심사를 두고 공정위를 담당하는 정무위원회와 방통위를 맡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로 논의가 갈렸고, 결국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지난 정부에서 논의됐던 법안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았다.

반면 올해 들어 공정위가 추진을 본격화 한 플랫폼경쟁촉진법(플랫폼법) 입법에 관해, 방통위는 과거와 달리 뚜렷한 정책 방향성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말 국무회의에서 "독점력 남용을 근본적으로 시정하기 위해 공정위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부처 간 칸막이를 과감하게 허물어 협력하라"고 언급, 입법 필요성에 더해 부처 간 갈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결과로 풀이된다.

방통위도 입법 필요성을 인정하며 주도권 확보에 다소 관망하는 표정이다. 김홍일 방통위원장은 지난 5일 취재진과 만나 "빅테크 플랫폼 기업의 지배적 사업자 지위 남용이나 불공정한 행위로 중소사업자나 이용자에 불이익이 있어 바로잡자는 것이고, 큰 틀에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만큼 입법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3년 전처럼 부처 간 주도권 다툼으로 비칠 행보는 지양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다만 플랫폼법에 대한 ICT(정보통신기술) 업계의 반대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만큼, 방통위는 물론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법안 논의 과정에서는 목소리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김 위원장은 "이중 규제, 국내 스타트업의 성장 저해, 한미 무역 마찰 등에 대한 우려를 최소화하는 범위에 대해 공정위 등 여러 부처들이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도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에서 "플랫폼기업의 독과점 폐해가 있다면 분명 규제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한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기조, 플랫폼 기업의 발전, 외국기업과의 관계 등 여러가지 관점에서 고려할 점이 있지 않냐는 입장을 (부처 간 논의에서)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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