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계열 합병가액 산정 자율화… '생색내기' 비판 나오는 이유는?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 2024.02.0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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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계열 합병가액 산정 자율화… '생색내기' 비판 나오는 이유는?


금융당국이 발표한 M&A(인수·합병) 제도 개선책 중 합병가액 산정 규제 완화 대상에서 '계열사 간 합병'이 제외됐다. 이를 두고 극히 드문 비계열사 간 합병 규제만 푼 생색내기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계열사 간 합병까지 합병가액 산정을 자율화하면 일반주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당국의 주장과 배치되는 연구 결과도 확인됐다.

지난 6일 금융위원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M&A 제도의 글로벌 정합 제고 방안'에 합병가액 산정 규제 완화를 밝혔다.



비계열사 간 기업들이 합병할 경우 당사자 간 협의에 의해 합병가액을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내용이다. 규제 완화는 상장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비계열사 간 합병에 적용한다. 합병가액 검증을 위해 제3자의 외부평가를 의무화한다. 현재는 '코넥스+비상장' 합병에 대해서만 합병가액 산정 자율화를 시행 중이다.

/자료=자본시장연구원, '상장법인 합병가액 산정 기준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자료=자본시장연구원, '상장법인 합병가액 산정 기준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하지만 주요 규제 완화 대상인 비계열사 '상장사+상장사' 합병 사례는 최근 5년간 단 1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시장연구원(황현영·정수민 연구위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상장법인 합병가액 산정 기준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리포트에 따르면 2018~2022년 비계열사 상장사+상장사 합병(SPAC 합병 제외)은 0건으로 집계됐다. 본지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합병 관련 공시를 확인한 결과 지난해에도 비계열사 상장사+상장사 합병은 없었다.



2018~2022년 상장사가 포함된 합병 520건 중 90%가 계열사 상장사+비상장사 합병이다. 금융위는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 "대등한 당사자 간 거래로 보기 어렵다. 합병가액 산정 방법을 자율화하는 경우 대주주 위주 의사결정이 이뤄져 일반주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규제 완화 대상에서 제외했다.

자본연 리포트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2023년 4월까지 미국 상장사 간 합병 333건 사례를 분석한 결과 86%(287건)의 합병액이 우리나라 합병가액 산정 방법에 따른 기준시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일본 상장사 간 합병 88건 중 91%인 80건 역시 합병액이 기준시가보다 높았다. 합병가액이 기준시가보다 30% 이상 할증된 경우는 미국 57%, 일본 56%로 집계됐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합병가액 산정을 직접규제하지 않고, 당사자 간 자율로 결정한다.

계열사 간 합병의 합병가액 규제를 자율화할 경우 일반주주 피해, 즉 기준시가보다 낮은 합병액이 산정될 수 있다는 금융위 설명과 배치되는 연구 결과다. 황현영·정수민 연구위원은 리포트에서 합병가액 산정의 완전 자율화를 제안했다. 합병 관련 주요 정보 공시를 강화하고, 주주 이익에 위배될 경우 주주들이 합병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적 보완을 함께 주장했다.


그러면서 "계열사 간 합병에 대주주 영향력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해도 합병가액의 평가를 시가에 의존하는 것이 오히려 시가 왜곡을 불러올 수 있는 한계도 존재한다"며 "계열사 간 합병을 자율화한다고 해서 일반주주에 불리한 합병비율이 제시될 것이라고 예단할 수 없다"고 했다.

/자료=금융위원회, '투자자 보호를 위한 M&A 제도의 글로벌 정합성 제고방안'./자료=금융위원회, '투자자 보호를 위한 M&A 제도의 글로벌 정합성 제고방안'.
합병가액 완전 자율화를 둘러싼 논쟁은 금융위가 지난해 5월 기업 M&A 지원 방안을 발표할 당시부터 불거졌다. 이후 금융위는 유관기관, 업계, 전문가 등과 세부 방안을 논의하고, 비계열사 간 합병에 대해서만 규제 완화를 단행하는 기존 안을 확정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기준시가로 합병가액을 정하면 일반주주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현행 규제는) 대주주가 시가를 내려 합병가액을 떨어뜨리려는 유인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며 "합병가액을 자유롭게 정한 뒤 공정한지 여부를 회사가 입증하는 책임을 부과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에서 대부분 합병은 계열사끼리 이뤄진다. 비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도 무조건 제3자 외부평가를 받도록 했기 때문에 기업 부담이 강화되는 측면도 있다"며 "주주 보호 강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법무법인, 회계법인 비용이 추가된다. 규제 수위의 합리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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