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10명 중 7명은 북한에서 식량 배급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고 응답했다.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배급제와 계획경제가 사실상 붕괴됐다는 뜻이다. 사진은 지난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밭 농사를 준비하는 근로자들을 조명한 보도. / 사진=뉴스1
통일부는 6일 오전 10시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북한 이탈 주민 약 6300명을 일대일로 심층면접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했다. 그동안 '3급 비밀'로 분류됐던 탈북민 면접조사 결과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의 객관성·전문성 제고를 위해 북한대학원대와 리서치기관인 글로벌리서치 감수·보완이 이뤄졌다.
북한 주민들은 아프면 약을 구하기 위해 병원보다 시장으로 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북한 주민들이 건설 작업에 투입된 모습. / 사진=뉴스1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에서 시장화가 확대되면서 빈부격차가 점차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정권과 간부에 의해 소득을 수탈당하는 비중도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주민들에게 종합시장의 영향력은 의식주, 에너지와 같은 일상생활과 보건의료·교육 등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 주민, 아프면 약 구하러 시장 간다
탈북자 약 6300명을 대상으로 한 북한 내 약품 구입방법. / 사진=통일부
이 시각 인기 뉴스
북한 정권이 선전해 온 '무상치료'는 사실상 가동되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 주민이 의약품을 얻는 곳은 병원(무상)이 21.3%에 불과했다. 자체적인 조달 방식으로는 △종합시장 44.9% △약국 19% △의사(개인적 구매) 10.6% △미처방 8.4% 등으로 나타났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전에는 무상 수급방식이 46%에 달했으나 관련 수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 병원 진료경험 여부를 묻는 문항에 응답자 61.5%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없다는 비율은 38.3%로 나타났다. 특히 북한의 대표적인 3차 진료기관과 의료자원이 평양에 밀집됐다는 응답이 대다수였다. 평양 거주자는 지역 거주자 대비 의료 서비스를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북한이 1961년부터 시작한 무상치료제도인 '의사담당구역제'도 사실상 작동되지 않았다. 거주 구역별로 의사를 배치해 기초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지만 응답자 중 70.6%가 '의사담당구역제'를 인지조차 못했다. 사실상 북한 무상치료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평양은 달러, 中접경지 위안화 거래 급증
2013~2022년 탈북자들이 응답한 '북한 지역별 시장 거래 화폐' 비율. / 사진=통일부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평양에서 사용하는 화폐로 △북한 원화 55.4% △달러 32.7% △위안화 7.1% 순으로 응답했다. 중국과 접경지역은 △북한 원화 56.4% △위안화 39% △달러 0.5%으로 나타났다. 평양과 접경지역을 제외한 대다수 지역은 △북한 원화 77.8% △위안화 11.9% △달러 5.1%로 조사됐다.
북한은 2009년 구권과 신권을 100:1로 교환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북한 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이고 시장 확산에 대한 사(私)경제 통제를 강화하는 등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북한 원화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외화 선호도가 심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도 시장 거래 화폐 1순위는 2016년 이후 북한 원화(25.7%)보다 위안화(68.4%)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한국 드라마 보는 북한 주민들
탈북민들의 외부 영상물 시청 경험. / 사진=통일부
주로 시청한 외국 영상물은 중국 영화가 71.8%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한국 영화·드라마 23.1%로 나타났다. 한국 드라마 시청 경험도 2011~2015년에는 19.2%였으나 단속 강화 이후인 2016~2020년에는 28.3%로 늘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북한 당국의 핵개발 몰두와 민생 외면 속에 주민들의 주거·의료·교육 환경은 여전히 낙후돼 있으며 주민들은 각자 생존법을 찾고 있다"며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변화를 촉구한다면 북한도 인권 개선에 대한 압박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