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을 딛고 세상 속으로 '등용문 리페어' [뉴트랙 쿨리뷰]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4.02.06 11:02
글자크기

생짜신인 유제이가 부른 첫 의뢰곡 '오랜만에' 공개

사진=미스틱스토리사진=미스틱스토리


하루에도 셀 수 없으리 만치 많은 곡들이 쏟아져 나오는 대중음악 시장에서 이름 하나 알리고 못 알리고 차이는 역시 마케팅에 있다. 같은 신인이라도 소속사의 단단한 홍보력이 받쳐주면 금세 유명인이 된다. 하지만 오직 실력만 갖고 스스로 자신을 알려야 하는 사람은 남다른 운이 따르지 않는 한 무명으로 굳어가기 일쑤다. 마케팅을 소자본으로 꾸려야 하는 신인들에게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것이 중요한 건 그래서다. TV 오디션은 메이저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어 더 쉽고 빨리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31일 윤종신이 자신의 브랜드 ‘월간 윤종신’의 2024년 프로젝트 이름을 ‘등용문 리페어’로 정하고 첫 호를 발표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건 지난해 12월 말 ‘겨울 그녀를 만나다’로 선보인 ‘리페어’ 앞에 붙은 ‘등용문’이란 단어다. 비록 TV 오디션은 아니지만 윤종신이라는 영향력 있는 채널을 통해 곧바로 실력과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에 신인들에겐 매력적인 전제일 수밖에 없다.



윤종신의 새해 첫 등용문 리페어샵에 의뢰된 곡은 ‘P.S I Love You’, 임재범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와 더불어 박정현의 데뷔작을 빛내준 ‘오랜만에’다. 휘성의 ‘안 되나요’를 쓴 이현정이 작곡, 윤종신이 가사를 썼고 더 클래식 출신인 박용준이 편곡한 이 예쁘고 슬픈 발라드를 다시 부른 사람은 유제이라는 싱어송라이터다. 유제이는 서경대학교 실용음악과에 다니고 있는 신예다. 이미 유명세를 얻은 기성(旣成)들보다 디딜 기회가 절실한 예비 신성(新星)들과의 교류를 바라고 시작한 등용문 프로젝트의 취지에 정확히 부합하는 가수다.

사진=스타뉴스DB사진=스타뉴스DB


“때 묻지 않고 자기만의 느낌이 있는 생소한 목소리”를 찾던 윤종신에게 유제이를 소개한 사람은 ‘오랜만에’의 리페어 버전 편곡을 맡은 작곡가 강화성이다. 사실 유제이는 강화성이 ‘오랜만에’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졌다고 윤종신에게 소개한 자신의 제자였다. 반복적인 일상 속 무뎌진 감정들을 깨워 함께 느끼고 공유하는 싱어송라이터를 지향하는 유제이는 ‘오랜만에’를 이미 잘 알고 있었고 특히 “어떤 아픔도 견딜 수 있는 모진 그대를 배울 수 있게” 같은 가사를 좋아했던 덕에 윤종신에게 높은 점수를 얻은 듯 보인다. 윤종신은 새벽 녹음을 하며 감정과 체력을 모두 쏟아 넣은 테이크에 “가사가 지닌 정서를 잘 이해하고 표현해 냈다”고 유제이의 노래실력을 칭찬해줬다. 이는 어쿠스틱과 알앤비 버전으로 나뉘었던 원곡의 두 버전 중 후자에 가깝게 편곡된 분위기로 부른 유제이의 노래 실력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이유처럼도 들린다.

2024년을 후진 양성에 쏟겠다 공표한 윤종신에게도 물론 등용문이 있었다. 그 등용문의 이름은 흔히 밴드에서 모든 관심을 독차지해온 보컬을 ‘객원’의 지위로 밀어낸 공일오비였다. 34년 전 윤종신은 공일오비의 '텅 빈 거리에서'라는 미성의 노래를 불러 자신을 모르던 세상에 자신을 알렸다. 재밌는 건 ‘월간 윤종신’에 자극을 받아 공일오비도 2018년부터 2023년 11월까지 매월 새 얼굴 새 노래들과 ‘뉴에디션’이라는 프로젝트를 선보였고 역시 2018년부터 2024년 1월까지 ‘더 레거시’라는 이름으로 기존 015B 곡들을 새로운 얼굴들이 부르는 셀프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선보여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후자는 공일오비식 ‘등용문 리페어’인 셈이다. 돌고 돈다는 유행이 음악 장르를 넘어 훈훈한 기획에도 적용되는 듯해 기분 좋게 신기하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