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한국의 더딘 속도가 우려되는 이유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24.02.05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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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한국 시장 형성이 예상보다 늦어지니 대만까지 왔다가 '바로 미국으로 가자' 이렇게 생각하는 기업들이 있어요. 기업들 입장에선 우선 시장 있는 쪽에 가자는 거죠."

해상풍력 공급망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 다국적 기업 A사의 한국 대표는 "처음엔 유럽에 이어 아시아에서 해상풍력 시장이 형성될 거라 봤는데, 빠르게 조성될 듯 보이던 한국 시장이 3~4년 이상 정체되자 기업들이 한국을 건너뛰려 한다"고 했다. 한정된 자원을 불확실성이 낮은 시장에 우선 배분하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정부 주도로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상향조정한 유럽에선 풍력단지 건설에 필요한 기자재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 지 오래다. 2010년대 중반까지 불모지였던 대만의 해상풍력은 정부 주도로 급성장 중이다. 미국에선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시행 후 1년 반만에 전세계 유관 기업들의 투자가 폭증했다. 기업 시각에서 한국 보다 매력있는 투자처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2000년대 기후변화 대응 수단으로 공론화됐던 에너지 전환은 우크라이나 전쟁 후 안보를 위한 핵심방편으로 부상했다. 유럽 주요국 정부가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는 쪽으로 큰 틀의 이해관계 일치를 이룬 배경이다. 미국 정부는 전기료를 낮추고 일자리·투자를 늘리기 위한 경기부양책으로 에너지 전환을 활용 중이다. 중국은 전세계 재생에너지 투자의 55%를 담당(2022년 블룸버그NEF 집계) 하며 관련 공급망 장악도를 높이고 있다.



주요국 이해관계가 수렴되자 시장이 움직였다. 수년새 달라진 에너지 시장 지형도는 수치로 나타난다. 영국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전세계 전력원 중 태양광·풍력 비중은 2012년 2.8%에서 2018년 7.03%, 2022년 11.89%로 늘어났다. 개발도상국·산유국이 포함된 평균값이다. 반면 한국 태양광·풍력 비중은 2018년 2.08%에서 2022년 5.36%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유럽은 차치하고 일본(2022년 기준 10.7%), 중국(13.4%) 보다 낮다. 베트남(2018년 0.28%→2022년 13.23%)에도 추월당했다.

한국의 '저속'이 우려되는 건 에너지 전환이 산업적 기회와 연동돼서다. 맥킨지는 지난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골자로 한 베트남 국가전력개발계획(PDP8) 승인 후 낸 보고서에서 "많은 제조업체들이 지정학적 위험 완화를 위해 중국에만 투자하는 걸 피하고 있다"며 "베트남은 상업·산업 고객의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수요 충족을 위해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배치할 수 있고…지속가능한 제조에서 지역 챔피언이 될 잠재력을 갖게 될 것"이라 했다.

시장의 속도는 더 빠르다. 한국 기업들의 경쟁사들이 탄소발자국 저감의 핵심인 청정에너지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CATL은 중국 공장 가동 전력 공급을 위해 자체 해상풍력 단지 건설을 추진 중이고, TSMC는 대만 해상풍력 단지에서 기가급 전력을 구매했다. 시장 움직임에 맞는 정책 '가속'이 필요한 이유다.


권다희 산업1부 차장권다희 산업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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