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기대에 주가 훅 뜬 유통기업...현실은 "글쎄"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2024.01.3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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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기대에 주가 훅 뜬 유통기업...현실은 "글쎄"


주주 환원 정책 기대감에 유통 기업들 주가가 단숨에 뛰었다. 금융위원회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제안하면서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낮은 유통 기업들이 주주가치 제고 정책을 내 놓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금융위 정책이 확정되지 않은데다 유통기업들은 매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자산이 많아 당장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만들긴 현실적으로 어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코스피시장에서는 현대백화점 주가가 전날 7.56% 상승에 이어 2.34%가 뛰었다. 현대홈쇼핑도 이틀 연속 6.76%, 0.34%가 올랐고 롯데쇼핑은 전날 8.62% 상승 후 0.63% 오름세로 장을 마쳤다. 이마트와 신세계는 전날 급등(각각 15.24%, 5.31%) 후 이날 3.83%, 0.06% 하락했다.



유통 기업들은 부동산 자산이 많은데 반해 수년간 주가가 지지부진해 PBR이 낮은 대표적인 주식이다. 유통업계 평균 PBR은 0.6배로 추산되는데, 이마트는 0.2배(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롯데쇼핑은 0.23배, 현대백화점은 0.26배, 신세계는 0.4배로 대규모 매장을 갖고 있는 대형 기업들이 특히 낮다.

금융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24일 간담회를 통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상장사의 주요 투자지표인 PBR, ROE(자기자본이익률) 등을 시가총액, 업종별로 공시해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상장사는 또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넣어야 한다. 구체적인 정책은 2월 중에 발표될 예정이다.



다만 대형 유통기업들은 이미 세일앤리스백(매각 후 재임차) 형태로 자산 매각에 나서고 있는 데다 투자·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시장에서 연간 수천억원을 빌리고 있어 현실성이 지적된다. 이마트는 그동안 성수점, 가양점, 별내점 등을 매각했고, 롯데쇼핑도 백화점 분당 물류센터, 롯데마트 고양 중산점, 롯데마트 양주점 등을 매각 추진 중이다. 이들 기업은 유통 시장 경쟁이 격화되면서 e커머스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이마트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률은 0.17%, 롯데쇼핑은 2.5%다.

박신애 KB증권 연구원은 "유통기업들이 오랜 기간 주가가 낮았던 이유는 외형 성장이 구조적으로 둔화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라며 "재무 건전성이 다소 취약한 기업들도 있어, 주주환원을 위한 재원 마련이 원활할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사주 보유비율이 높은 기업에 대한 제도 도입도 주목된다. 일정 규모 이상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의 공시를 의무화하고, 자사주를 처분할 때 처분 목적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롯데지주(자사주 32.5%), 샘표(29.9%), 한샘(29.5%) 등이 있다.


롯데지주는 전날 5.51%에 이어 이날 5.6% 주가가 뛰었다. 롯데지주는 2018년 순환출자 고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6개 비상장 계열사들을 흡수합병하면서 자기주식이 2017년 말 18.9%에서 32.5%로 급격히 늘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공시만으로는 소액 주주 보호와 기업가치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기존 보유 중인 자사주에 대한 소각을 의무화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했다.

기업들도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주가가 오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당장 기업 재정 정책을 바꾸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상세안이 나와봐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도 "정부의 주가 부양 기조에는 함께 할 것"이라면서도 "구체안이 나오지 않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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