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 마동석 유니버스 생태계에 울린 적색 경보

머니투데이 정유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1.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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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아포칼립스 세계관에 식상한 '범죄도시' 잔영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마동석 유니버스’의 확장인가, 무리수인가. 마동석의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영화 ‘황야’가 26일 공개 후에 무성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와 마동석의 전매특허인 액션 장르의 만남, 올해 ‘범죄도시 4’ 개봉 전에 마동석과 첫 연출을 맡은 허명행 감독의 ‘합’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다. 베일을 벗은 ‘황야’는 장르 폭을 넓힌 ‘마동석 유니버스’다. 다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를 떠오르게 하는 세계관은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부산행’(2016)과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성공으로 마동석은 하나의 장르,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압도적 힘과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 나쁜 놈 때려잡는 응징 서사, 시원한 액션과 특유의 유머로 구축된 ‘마동석 유니버스’는 관객에게 대리만족과 쾌감을 선사해 왔다. 여기에 마동석의 마블 영화 진출과 ‘범죄도시’ 시리즈를 비롯해 다수의 영화 기획, 제작에 열정을 쏟는 마동석의 행보가 인기에 안주하지 않는 ‘마동석 유니버스’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마동석의 넷플릭스 진출작 ‘황야’ 역시 ‘마동석 유니버스’에 기대하는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주인공은 대지진으로 어린 딸을 잃은 전직 복서 출신의 사냥꾼, 빌런은 죽은 딸을 살려내기 위해 십대 아이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는 의사다. 예상대로 영화는 정의로운 사냥꾼이 미치광이 의사를 응징하는 이야기다. ‘마동석 표’ 액션과 유머도 여전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에 18 이상 관람가여서 캐릭터 묘사, 고어한 연출 등 전반적으로 표현 수위를 높였다. 주로 맨주먹으로 싸우던 마동석이 장총과 마테체 등 무기를 사용하며 이전 작품들과 차별화를 꾀한다.



그런데 ‘마동석 유니버스’의 철옹성 같은 재미가 ‘황야’에선 자꾸만 흐트러진다. 아포칼립스 세계관이 얄팍하다 보니 배경만 바뀐 ‘범죄도시’를 보는 것도 같다. 전직은 다르지만, 주인공 사냥꾼 남산(마동석)은 마석도 형사의 성격을 그대로 이어간다. 그가 구사하는 말장난 같은 유머도 마찬가지다. ‘범죄도시’ 아포칼립스 버전이라 불릴 만하다. 차라리 SF 액션 성격의 ‘범죄도시’ 외전으로 대놓고 만들었다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 보일 생각이 없는 전개와 특수효과(CG)의 완성도도 아쉬움을 키운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를 떠오르게 하는 세계관은 ‘황야’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기획 단계에서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후를 다룬 후속작으로 알려졌으나, 제작발표회에서 허명행 감독은 “전혀 다른 세계관과 다른 구조를 가진 독립적인 영화”라고 일축한 바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황궁 아파트 103동과 똑같은 외형의 아파트를 ‘황야’에서 다시 마주한 관객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황야’에서도 아파트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이기 때문에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세트와 CG 재활용으로 봐야 할지 납득할 만한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배경은 같은데 연관성 없는 영화라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허명행 감독은 ‘신세계’(2013),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 ‘부산행’(2020), ‘헌트’(2022) 등 굵직한 작품에서 액션 명장면을 선보인 한국 대표 무술감독이다. ‘범죄도시’ 시리즈에선 마석도만의 타격감 넘치는 액션을 완성했다. 그가 첫 연출을 맡은 ‘황야’에서는 마동석의 맨몸 액션을 시작으로 차량 액션, 인간 능력을 뛰어넘는 특수부대 군인들과 총격전 등 다양한 액션 연출에 주력했다. ‘액션 콤비’ 허명행 감독과 마동석이 만들어낸 ‘액션 합’들은 액션 영화의 쾌감을 만족시키도록 잘 짜여졌다. 마테체를 휘두르고 각종 무기를 활용하는 마동석의 액션은 시원시원하지만,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기발한 액션 시퀀스가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쉽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마동석 유니버스’에 새롭게 얼굴을 내민 배우들의 활약도 다채롭다. '부당거래'(2010)에 이어 마동석과 두 번째 만난 이희준은 비뚤어진 부성애를 가진 과학자 양기수 역을 맡아 악랄한 연기를 유감없이 펼친다. 이준영과 노정의는 극 중에서 각각 사냥꾼 파트너와 소녀를 연기하며 주요 캐릭터를 책임진다. 특수부대 중사로 등장한 안지혜는 뛰어난 액션 연기로 두각을 나타낸다. 장영남과 정영주도 맡은 역할 이상을 해내며 연기파 배우의 내공을 보여 준다.

‘마동석 유니버스’에서도, 한국 아포칼립스 장르에서도 ‘황야’는 아쉬운 결과물이다. 영화 초반 악어가 등장할 때의 분위기나 액션 장면에 나온 ‘파충류 인간’ 랩틸리언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아예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개발을 하지 않으려던 것은 아닌 듯하다. 작품에 공을 들일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마동석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작품으로 척척 결실을 보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속전속결로 넓혀가는 영역 확장에 대해선 심사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마동석 유니버스’의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도 말이다. 마동석은 관객이 원하는 바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영리한 영화인이다. 다시금 단비 같은 작품을 들고 와 관객들의 목마름을 해소해 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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