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존윅'이 되고 싶은 이동욱의 '킬러들의 쇼핑몰'

머니투데이 정명화(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1.2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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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들의 죽고 죽이는 혈투 속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사진=디즈니+사진=디즈니+


"겁이 나는 개가 짖는거야."

'지안'이 떠올리는 삼촌과의 기억 속에는 유독 의미심장한 말들이 많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을 길러준 삼촌은 지안의 어리광을 받아주지도, 살뜰하게 보살펴 주지도 않았다. 그저 살아내는 법, 살아남는 법을 조용히 일러주고 자신도 모르게 점점 강해지도록 이끌었다.

디즈니플러스의 새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은 파격적인 오프닝으로 야심찬 시작을 알린다. 저격수의 총알이 날아드는 집 안, 표적은 세상 무해하게 보이는 소녀다. 집을 에워싸며 소녀의 생명을 노리는 사람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파악하기 위해 관객의 눈과 귀는 빠르게 화면 속으로 빠져든다.



초반부터 살인드론에 저격총이 등장하며 강력한 화력을 드러내는 '킬러들의 쇼핑몰'은 호쾌하고 긴박한 액션으로 포문을 연다. 강지영 작가의 '살인자의 쇼핑몰'을 원작으로 한 이번 작품은 한국판 '존윅'으로 불리며 공개 직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킬러들의 세계, 그들만의 룰, 킬러들의 죽고 죽이는 혈투 등이 '존윅'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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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존윅이 가공할 실력으로 데스매치를 거듭하는 것과 달리 이번 작품은 갓 대학생이 된 스무살 소녀 정지안(김혜준)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부모를 잃은 자신을 어릴때부터 길러준 삼촌 정진만(이동욱)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듣고 고향집에 내려온 지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촌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온 지안은 삼촌을 도와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린시절 친구 정민(박지빈)의 위로를 받는다. 농업용품 쇼핑몰을 운영하던 삼촌이 남긴 오래된 휴대전화에는 농업용품 구매가격이라고는 볼 수 없을 큰 돈이 입금됐다는 문자메시지가 날아들고, 삼촌의 계좌는 180억원이 넘는 거액이 들어있다. 그리고 삼촌의 중국어 과외 교사라는 낯선 여자 민혜(금해나)가 방문하고, 곧이어 집안으로 총알이 날아들어온다.

'킬러들의 쇼핑몰'은 오락물로서의 매력을 두루 갖춘 작품이다. 미스터리과 반전, 스릴과 액션이 총집합돼 오감을 사로잡는다. 일촉즉발, 살아나갈 방법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위기 속에 지안은 삼촌의 말들을 떠올린다. 살아오면서 삼촌이 했던 말들, 모두 지안의 생존을 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네가 잠자리가 아닌 이상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착각하지마, 모든 것에는 사각지대가 있다"는 삼촌의 말을 떠올린 지안은 기지를 발휘해 한차례 위기를 벗어난다. '무슨 X소리냐'며 삼촌의 말들을 비웃으며 삼촌을 별스러운 꼰대 취급하던 지안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 삼촌의 가르침을 떠올리면서 점차 자신의 능력을 각성한다.

사진=디즈니+사진=디즈니+

작품은 평범하던 소녀가 예기치 않은 순간, 자신을 둘러싼 비밀을 하나둘 파헤치며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미처 몰랐던 삼촌의 정체와 베일에 싸여있던 과거가 드러나며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장례식에 조문을 온 삼촌의 학창시절 동창들은 각각 다른 인물로 정진만을 기억한다. 그들의 기억 속에 정진만은 남몰래 친구를 돕던 의리의 사나이기도 하고, 조직폭력배 출신의 전과자이기도 하며, 국정원의 북파 공작원이기도 하다. 전혀 몰랐던 삼촌의 과거를 듣는 지안의 모습은 바로 관객의 시선이기도 하다. 곱상하지만 상처로 가득한 얼굴에 말수가 적은,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은둔자로 살다 스스로 생을 놓은 그 남자의 비밀스러운 삶을 엿들으며 한없는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한다.

작품 속에서 수없이 불리는 이름 '정진만'. 이동욱은 미스터리한 남자 정진만 역을 맡아 지안의 회상 속에만 존재하며 보는 이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현재 4화까지 공개된 '킬러들의 쇼핑몰'에서 이동욱이 후반부에 어떤 반전의 키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또 한차례 모습을 드러낸 조한선의 보여줄 캐릭터와 지안 역을 맡은 김혜준이 오랫동안 삼촌을 통해 익혀온 생존법을 서서히 발현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그러나 4화까지 과거 회상 신과 현재가 교차 편집된 방식이 반복돼 지루하게 느껴진다. 지안 캐릭터의 각성이 더딘 데다 정진만의 비밀 역시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다소 지지부진한 느낌을 준다. '킬러들의 쇼핑몰'이 속도감 있는 전개와 화끈한 액션으로 한국판 '존윅'이 될 수 있을지 남은 절반의 회차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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