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완치 없이 年 300만원씩 써야"…'태안 비극' 벌어진 이유

머니투데이 이창섭 기자, 박정렬 기자 2024.01.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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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바늘 뒤로 눈물 훔치는 1형 당뇨병(下)

편집자주 '당뇨병'이란 이름 뒤에서 두 번 우는 이들이 있다. 국내 4만4552명(2022년 기준)의 '1형 당뇨병' 환자들이다. 진단과 함께 하루 4번 이상 인슐린 주사를 꼬박 챙겨 맞고 손가락을 하루에도 여러 번 찔러야 살 수 있다. 먹는 약도, 완치법도 없어 이들의 온몸엔 바늘자국 투성이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경제적 부담이다. 바늘 뒤로 눈물 훔치는 1형 당뇨병 환자와 가족들, 그리고 이들을 괴롭히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집중 조명한다.

"당뇨가 아니라 췌도부전증"…완치도 약 개발도 어려운 1형 당뇨병
"평생 완치 없이 年 300만원씩 써야"…'태안 비극' 벌어진 이유


"소아당뇨라는 정체불명의 병명 말고 '췌도부전증'으로 불러주십시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가 1형 당뇨병의 이름을 바꿔 달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만큼 2형 당뇨병과 근본적으로 다른 질병이기 때문이다. 같은 '당뇨병'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1형은 췌장(췌도)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중증 장애에 가깝다.



1형 당뇨병은 치료법도 약도 제한적이다. 환자가 평생 고통받아야 하기에 '소아당뇨'라는 이명(異名)은 잘못됐다. 먹는 인슐린,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등 1형 당뇨병을 정복하기 위한 제약사의 노력이 치열하지만 마땅한 성과는 없다.

문선준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1형 당뇨병은 인슐린 분비가 초기부터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인슐린 투약을 초기부터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형 당뇨병은 인슐린이 분비는 되기에 일반적으로 경구(먹는) 약으로 체내 작용을 조절할 수 있다. 처음부터 인슐린이 안 나오는 1형 당뇨병에서 먹는 약의 사용이 제한적인 이유다.



문 교수는 "일반적으로 1형 당뇨병은 발병하면 인슐린 분비 기능이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며 "따라서 평생의 인슐린 투약이 필요하게 된다"고 말했다.

1형 당뇨병 환자는 하루 4회 이상 인슐린을 주사하는 다회요법으로 치료한다. 인슐린 펌프와 인공췌장은 인슐린 다회요법을 대체할 수 있다. 인공췌장은 인슐린 펌프에 연속혈당측정기를 알고리즘으로 연동해 결합한 것이다. 연속혈당측정기가 환자의 혈당을 측정하고 자동으로 인슐린을 투약해준다.

단점은 비싼 가격이다. 인공췌장 기깃값만 약 500만원, 소모성 재료까지 포함하면 약 1100만원이 넘는다. 건강보험이 적용돼도 환자 부담은 700만원에 달한다. 충남 태안에서 발생한 1형 당뇨병 환자 일가족의 비극도 생활고 비관이 원인이었다.


내달부터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돼 환자 부담은 213만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이마저도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1형 당뇨병 환자에게만 적용된다.

김수경 분당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소아 환자야 부모가 비용을 내줄 수 있지만 성인은 돈 벌어서 비싼 기기를 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비용뿐만 아니라 복잡한 의료기기 사용법도 걸림돌이다. 김 교수는 "간단한 혈당 측정기도 제대로 이용하려면 몇시간씩 교육받아야 하는데 하루 연차내서 일 비우고 그거 교육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인슐린 펌프는 굉장히 위험하고 복잡한 기기라 오랫동안 교육받아야 하는데 그래서 하다가 떼버리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췌장·췌도 이식수술을 받는 방법도 있다. 수술이 성공하면 인슐린이 다시 분비되고 완치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까지 혈당 조절이 가능해진다. 다만 공여자를 찾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뇌사 사고자 등 죽은 사람에게서만 장기를 기증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슐린 분비 기능이 다시 떨어질 수도 있고 면역억제제를 평생 사용해야 한다는 점도 단점이다.

"평생 완치 없이 年 300만원씩 써야"…'태안 비극' 벌어진 이유
이처럼 치료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1형 당뇨병 약을 개발하려는 제약사의 노력도 치열하다. 재작년 제1형 당뇨병 발병을 늦추는 약이 전 세계 최초로 탄생했다. 미국 제약사 프로벤션바이오가 개발한 '티지엘드'란 약이다. 8세 이상 1형 당뇨병 고위험군 7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티지엘드는 위약군 대비 환자의 발병 시기를 2년가량 늦췄다.

하지만 이 약도 한계가 있다. 티지엘드를 사용하려면 1형 당뇨병 선별검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보편적으로 시행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1형 당뇨병 환자가 흔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검사할 수는 없으니 이론적으론 좋지만 비용 대비 효과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제약사 오라메드는 먹는 인슐린 약을 개발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인슐린이 의약품으로 개발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주사제로만 존재했다. 인슐린이 위산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라메드의 약은 캡슐에 단백질 분해를 차단하는 물질을 넣어 위산으로부터 인슐린을 보호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1형 당뇨병 환자의 주사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오라메드는 지난해 초 3상 임상시험의 실패를 발표했다.

미국 바이오텍 버텍스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췌도세포 치료제 'VX-880'을 개발하고 있다. 췌도의 베타세포는 인슐린을 합성하고 분비한다. VX-880은 동종 유래 줄기세포 기반의 췌도세포를 환자에게 이식해 치료하는 약이다. 앞서 14명 환자에게 VX-880를 투약하자 13명이 목표했던 당화혈색소 수치를 달성했다. 더는 인슐린을 투약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러나 최근 VX-880의 임상 1/2상에서 환자 사망 사례 2건이 발생했고 이에 제약사는 지난 9일 임상시험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정부 지원도 '태안 비극' 못 막았다…"근본 대책 필요" 눈물의 호소

(세종=뉴스1) 김기남 기자 = (사)한국 1형당뇨병 환우회 회원들과 투병중인 소아·청소년 환우 2백 여명이 15일 오전 세종시 보람동 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형당뇨의 중증난치질환 지정과 연령구분 없는 의료비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환우회는 '소아당뇨'라는 이름을 1형당뇨병의 중증도와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췌도부전증'으로 병명을 변경해 달라고 제안하는 등 정부에 지원대책 마련을 요구했다.2024.1.1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세종=뉴스1) 김기남 기자 = (사)한국 1형당뇨병 환우회 회원들과 투병중인 소아·청소년 환우 2백 여명이 15일 오전 세종시 보람동 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형당뇨의 중증난치질환 지정과 연령구분 없는 의료비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환우회는 '소아당뇨'라는 이름을 1형당뇨병의 중증도와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췌도부전증'으로 병명을 변경해 달라고 제안하는 등 정부에 지원대책 마련을 요구했다.2024.1.1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제1형 당뇨병은 완치가 되지 않는다. 췌장의 베타세포 파괴로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분비 기능이 완전히 상실돼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체내 면역세포가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가족력과는 무관하다. 음식이나 생활 습관이 잘못됐다고 발병하는 것도 아니다. 환자단체는 "관리를 잘하면 소변에 당이 섞여 나오지 않는다"며 이 병을 '당뇨'가 포함되지 않은 '췌도(췌장)부전'으로 불러달라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제1형 당뇨병의 치료는 장기전이다. 완치되지 않는 병은 그 자체가 공포로 다가온다. 정신적·신체적 부담을 환자와 보호자 모두 겪는다. 혈당측정기, 인슐린 주사 등 치료·관리에 드는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이달 초 충남 태안에서 어린 딸의 1형 당뇨병을 치료하던 일가족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도 이런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 평생 가는 고통, 경제적 부담도 '족쇄'

실제 한국1형당뇨병환우회가 환자 보호자 10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이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혈당 관리가 어렵고 완치가 되지 않는 점"(79.1%)이었다. 의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58.2%)과 요양비 적용 지연 등으로 혁신적인 의료기기의 사용이 힘든 점(51.4%)처럼 비용 지출에 관한 어려움이 뒤를 따랐다.

같은 조사에서 병원·약국 등에서 쓴 의료비와 의료기기·소모품 구입비가 연간 100만원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50.2%, 74.9%로 절반이 넘었다. 저혈당 대처를 위한 음식 구입 등 치료 보조에 드는 비용을 더하면 연간 300만원이 훌쩍 넘는다는 게 환자단체의 주장이다. 이런 이유로 10명 중 7명은 1형 당뇨병 진단 후 "다른 지출을 줄어야 할 정도로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비용 지출에 대한 걱정에 의료기기나 소모품 선택을 주저한 적이 있는 비율도 93%에 달했다.

"평생 완치 없이 年 300만원씩 써야"…'태안 비극' 벌어진 이유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는 "특히 성인 중에는 지속적인 의료비 지출이 부담돼 혈당 관리에 손을 놓고, 합병증이 도져 사회생활을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악순환에 빠진 사례가 적지 않다"며 "전체적으로 봐도 제대로 혈당을 관리하는 환자는 5%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2019년 1월, 건강보험으로 연속혈당측정기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등 지속해서 '대책'을 내놓곤 있지만 모두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게 환자단체의 주장이다. 태안 일가족의 비극적인 사건 역시 보건복지부가 소아청소년 1형 당뇨병 환자에 대한 부담 완화 정책을 발표한 후 발생했는데, 이는 정부 정책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단편적으로 의료기기 비용 등을 줄인다고 '1형 당뇨인'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가 없다"며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 중증난치질환 인정, 산정 특례 적용해야

환자단체는 체계적인 제1형 당뇨병 관리를 위해 요양비 청구 간소화, 중증난치질환 등록과 산정특례 적용, 요양급여 인정이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

먼저 요양비 청구 간소화다. 제1형 당뇨병은 병원에서 진료받거나 약을 사는 비용보다 의료기기·소모품에 더 큰 비용이 든다. 인슐린 펌프 등은 의료기기 판매업체를 통해 구매하는데, 환자가 자비로 구입한 후 보험공단에 청구하면 비용 일부를 환급받는다. 병원과 같은 요양기관이 집행하지 않아 요양급여가 아닌 요양비로 구분되며 정부 지원은 대부분 이 요양비 경감에 맞춰져 있다.

(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 1형 당뇨병 환우 및 가족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2차관 주재 1형 당뇨 환자 단체 및 학회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1형 당뇨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아 혈당 조절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중증 난치병이다. 주로 청소년과 소아에서 많이 발병하는 탓에 어린 환우 및 가족에게 큰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4.1.1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 1형 당뇨병 환우 및 가족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2차관 주재 1형 당뇨 환자 단체 및 학회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1형 당뇨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아 혈당 조절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중증 난치병이다. 주로 청소년과 소아에서 많이 발병하는 탓에 어린 환우 및 가족에게 큰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4.1.1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그러나 청구 방식이 복잡하고, 혜택이 집중된 연령도 19세 미만으로 제한돼 실효성이 미비하다는 게 환자단체의 주장이다. 실제 제1형 당뇨병 요양비에 건강보험이 적용된 지 5년가량 됐지만, 국내 환자 중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10.7%, 연속혈당기와 연동되는 인슐린 펌프를 사용하는 비율은 0.4%에 그친다. 특히, 전체 환자의 90%를 차지하는 성인은 경제적 부담에 더해 시간에 쫓기고,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미영 대표는 "구매할 때마다 서류를 만들어 제출하고, 해당 기관 담당자가 순환 근무해 요양비를 모르면 일일이 설명까지 해야 한다"며 "민간 보험금 청구처럼 사진만으로 신청할 수 있게 하는 등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중증난치질환 지정이다. 환자단체는 중증도와 합병증 위험을 고려할 때 암·심장 질환처럼 1형 당뇨병을 중증난치질환으로 구분하고 산정특례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정특례는 중증난치질환을 대상으로 입원이나 외래 시 본인 부담 의료비를 각각 20%, 30~60%에서 둘 다 10%로 낮춰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다. 김 대표는 "진료비 걱정에 단순히 인슐린 주사만 맞는 환자가 너무 많다"며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혈당 조절에 필요한 의료기기 사용 등 교육과 검사를 받아야 합병증 위험을 낮출 수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의료재정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산정특례 제도는 최장 5년으로 혜택 기간이 제한된다. 다만 암이 재발하거나 장기이식, 혈우병, 일부 류마티스 질환 등은 특례기간 종료 이전에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재등록을 통해 제1형 당뇨병도 지속해서 산정특례 혜택을 받는 게 가능할 수 있다. 이후에는 요양급여 인정에 따른 혜택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게 환자단체의 판단이다. 치료비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의료기기·소모품 접근성도 높아져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정부가 아이에서 어른까지 생애주기별 통합 관리 체계를 마련해 제1형 당뇨병 환자와 보호자가 안고 가야 할 '평생의 짐'을 덜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다만, 현재로서 관련 정책의 정비·시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제1형 당뇨병을 '소아당뇨'로 부를 만큼 질환에 대한 인식이 저조한데다 중증난치질환과 요양급여 지정은 타 질환과의 형평성·경제성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부터 소아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인슐린펌프와 연속혈당측정기 등에 대해 요양비 지원을 확대하고, 인슐린 사용 교육과 상담 횟수를 늘리는 등 대책을 조기 시행한 후 추가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정책을 보완한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제1형 당뇨병 환자와 현장 의료진의 의견을 수렴해 향후 정책에 반영시켜 나갈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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