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씨엘엔컴퍼니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 김해숙. 만인의 '국민 엄마' 범주에서 이제 김미경을 빼놓으면 섭섭할 지경이다. 김미경은 드라마 '또 오해영' '고백부부' '하이바이, 마마!', 영화 '82년생 김지영' 등 출연작마다 모성애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바. 작년엔 엄정화('닥터 차정숙'), 신현빈('사랑한다고 말해줘')의 엄마로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고 최근엔 신혜선('웰컴 투 삼달리'), 서인국('이재, 곧 죽습니다') 엄마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현재는 시청률 10%를 뚫은 화제의 MBC 드라마 '밤에 피는 꽃'에서 이하늬의 시어머니로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고 있다.
/사진=티빙
이어 그는 "아들을 잃은 엄마라 드라마의 처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매번 대성통곡을 했다. 이 엄마가 나오기만 하면 우니까, 시청자 입장에선 지겹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다행히도 써주신 반응들을 보니 마무리가 잘 된 것 같다. 제가 아주 엉망으로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안도를 했다"라며 소감을 말했다.
실제 딸의 눈물도 쏙 빼놓았다. 김미경은 "딸이 밥 먹다가 제가 나온 에피소드를 보고 대성통곡을 했다더라"라는 반응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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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인기리에 종영한 '웰컴 투 삼달리'에 대해선 "힘센 애 조진달(신동미), 지랄맞은 애 조삼달(신혜선), 되바라진 애 조해달(강미나) 세 딸을 둔 엄마를 연기했다. 딸들이 각각 개성이 뚜렷하여 아주 재밌게 찍었다. 신혜선 같은 경우는 현장에서 정말 엄청나게 열심히 한다. 다른 분들도 똑같지만. 그런 호흡들을 서로 재밌게 맞춰 가면서 마쳤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매번 진한 감동과 깊은 여운을 선사하는 비결로는 다름 아닌 "엄마의 마음"을 강조했다. 김미경은 "물론, 모든 엄마 캐릭터가 다 상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모성만큼은 엄마의 마음으로 가려고 한다. 엄마의 마음은 다 똑같을 테니까. 거기서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게 내가 내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연기한다"라고 확고한 연기 철학을 이야기했다.
모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미경은 "우리 엄마가 내가 작품에서 표현하려는 엄마다. 내가 우리 아이한테 대하는 자세도 나의 엄마로부터 내려왔고. 엄마가 올해로 96세이시다. 거동은 좀 힘드시지만 잘 계신다. 제가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근데 엄마는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지 않게, 외롭거나 슬프지 않게 우리 네 자매를 키우셨다. 정말 강한 분인데 무섭지는 않으시다. 딸 들 한 명 한 명 소홀함 없이 따뜻하게 품어서 키우셨다. 다 엄마로부터 배우고 그대로 하고 있는데, 우리 엄마만큼은 못 하고 있는 거 같은 느낌이다"라고 애틋한 마음을 표했다.
'국민 엄마' 수식어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지나치게 겸손했다. 김미경은 "저한테는 참 아직까지 낯설고 '내가 무슨, 감히' 이런 마음도 든다. 요즘 가끔 드라마 '전원일기' 재방송을 보는데 김혜자 선생님의 연기가 정말 경이롭더라. 그런 분이 정말 '국민 엄마'가 아닐까 싶다"라고 쑥스러워했다.
'국민 엄마'를 둔 딸의 입장은 어떨까. 김미경은 "딸이 나름 뿌듯해하는데 그래도 '내 엄마야!' 한다"라며 웃어 보였다.
2023년 흥행작 '닥터 차정숙'에선 실제로는 불과 6세 연하인 엄정화를 딸로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김미경은 "여섯 살 차이인데 엄정화 엄마라니, 기가 차더라.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싶어서 출연을 좀 고민했다. 감독님을 만나서 '내가 아무리 변장을 한다고 해도 가능할까요' 물었는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가능하다고 하시더라.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28세에 80대 노인 연기도 했는데, 못 한다고 굳이 그런 경계선을 둬야 할까 싶더라. 그래서 그냥 '해봅시다' 했다. 주변에선 '억울하지 않냐' 별소리들이 다 있었다. 근데 저는 뭐가 억울하냐, 내가 연기자인데 연기자면 연기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다"라고 터놓았다.
내로라하는 대한민국의 톱스타들을 자식으로 품으며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배우는 누구일까. 그는 "진짜 자식 삼고 싶었던 배우는 없느냐"라는 질문에 "꼭 그렇다기보다 이런 친구들은 있다. 끝나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친구가 있는 반면, 지금까지도 연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김미경은 '고백부부' 딸 장나라, '하이바이, 마마!' 딸 김태희와의 변함없는 우애를 과시했다. 그는 "장나라와는 아직도 전화 통화를 나누곤 한다. 근데 엄마하고 딸 관계가 아니라, 사는 얘기를 나누며 친구처럼 지낸다. 장나라는 저와 나이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날 텐데 말을 하다 보면 그 차이를 못 느낀다. 몸속에 90세 먹은 노인네가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생각이 깊고 재밌는 친구다. 자주는 못 보지만 김태희도 가끔 본다. 어제는 함께 공연을 봤다. 김태희는 정말 톱스타 같지 않은 털털함, 소박함이 있고 정말 예쁜 사람이다"라고 치켜세웠다.
높은 시청률로 매 회 화제몰이 중이지만,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는 초연한 태도를 취했다. 김미경은 "저는 시청률은 관심이 없다. 0%대가 나와도 상관없고 40%가 넘더라도 '우와' 이런 게 없다. 왜 거기에다가 그렇게 목을 매는지 모르겠다"라고 솔직한 입담을 뽐냈다.
김미경은 "저는 계산도 없고 욕심도 없다"라면서 "일이 들어오면 제가 정한 기준에서 반하지 않는 한 다 하는 편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되는 인물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우러지며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얼마든지 'OK'다. 그렇지 않다면, 소모적인 건 연기하면서도 재미없을 거 같다. 그런 작품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다"라고 뚝심 강한 면모를 드러냈다.
지치지 않는 다작 행보의 원동력으로는 "작년 같은 경우는 '내가 제정신인가, 어쩌자고 내가 이걸 다 했지?' 할 정도로 바빴다. 네 작품을 한꺼번에 찍다 보니. 더군다나 하나는 제주도 올로케이션, 하나는 사극이라 전국에 있는 사극 세트장을 돌아야 했다. 정말 무슨 정신으로 일했는지 모른다. 근데 저는 또 그게 특화되어 있는 몸인 거 같다(웃음). 연극을 처음 했을 때 1인 13역으로 시작했다. 한 무대에서 딸이었다가 미군 장교, 북한군, 간호사였다가, 15초 만에 의상을 후다닥 벗었다 입었다 하면서. 1인 다역 그런 걸 많이 했다 보니 그게 몸에 익은 거 같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다른 연기자분들은 하나만 집중해야 잘 몰입할 수 있다 하는데 오히려 저는 하나만 하면 게을러진다. 게을러져서 긴장도가 떨어진다. 상반된 캐릭터를 동시에 하면 적당한 긴장이 이어지더라. 작년엔 긴장도가 높긴 했지만, 그래도 지나고 놓고 보면 '해냈다, 끝냈다' 싶다"라고 뿌듯해했다.
오죽하면 그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때가 1985년도, 연극 '한씨연대기'로 데뷔했다. 당시 '연기하면서 먹고 살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그런 얘기를 했었다. 돈을 벌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이 직업이 힘든 일이기에 오랫동안 연기를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연기를 하고 있는데 정말로 행운인 거 같다.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고, 죽기 직전까지 연기하고 싶다"라고 표현하며 천생 배우의 자질을 보였다.
이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연기의 매력은 무엇일까. 김미경은 "연기를 하면 치유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해가 갈수록 비워내는 작업이란 생각이 들고. 나를 다 비우고 놔야 새 인물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그런 작업을 끝없이 해오면서 어떤 것에도 연연해하지 않게 되더라. 그래서 스트레스를 거의 안 받는 편이다. 이 인물을 잘 해내지 못한다고 느낄 때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라고 짚었다.
그는 거듭 "연기를 한 지 40년째인데 이게 중단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일을 함으로써 되게 행복하다. 어떤 특별한 목표는 없지만 스스로 '이게 내 진심인가, 최선인가' 그런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할 거 같다"라고 열의를 불태웠다.